"석유는 반칙 원료...6월 이후엔 아무도 몰라, 대체제 필요"
[유창재 기자]
|
|
| ▲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겸 연구 부총장이 4월 30일 대전 대덕구 KAIST 본관 부총장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
| ⓒ KAIST 전형준 |
4월의 마지막 날 오전, 대전 대덕구 KAIST 캠퍼스는 초록으로 물들어 눈부셨다.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라 한산했던 오전, 본관 부총장실에서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겸 연구 부총장을 만날 수 있었다.
30여 년간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세계 3대 과학 아카데미에 모두 선임된 유일한 한국인이자 대사공학 분야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까지 국가바이오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자마자, 중동발 공급망 위기 석 달째를 맞는 상황을 짧게 언급한 뒤 질문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6월 이후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죠?"라고 반문했다. 앞서 기자가 주사기 공장과 식품 업체 현장에서 들었던 대답과 같았다.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되물으면서, 질문을 시작했다.
|
|
| ▲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겸 연구 부총장이 4월 30일 대전 대덕구 KAIST 본관 부총장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
| ⓒ KAIST 전형준 |
이 부총장은 "에너지·화학 원료의 '절대적 수입 의존 구조'는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 문제"라고 규정했다. 이번 전쟁이 산업 구조의 문제를 다시 끌어 올렸다는 것.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일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원이 없는 나라는 다 같습니다. 다만 중국은 석탄이 있고, 러시아와의 연결도 있죠. 우리는 대체 수단도, 완충 장치도 부족한 상태입니다."
결국 이번 위기는 '처음 겪는 재난'이 아니라, 이미 겪었지만 잊어버린 역사라고 했다. 과거 오일쇼크 이후 세계적으로 바이오 화학이 대체제로 큰 관심을 받았다가 사라진 경험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원유를 두고 "사기성 원료"란 표현까지 썼다. "이 정도 에너지 밀도(성능)에 이렇게 싼 원료는 없다. 경쟁 자체가 안 된다"면서 "인류 산업화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이다. 그래서 모두가 여기에 의존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다, 근데 사람이 소유하고 다니는 것은 70%가 플라스틱이라는 농담도 한다"면서 옷·스마트폰·반도체 공정 재료 등을 예로 들었다. 듣고 보니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것들이 석유 기반 제품이었다.
그래서 문제는 더 복잡하다. 원유가 가진 그 '효율성'이 오히려 리스크를 키운다. 이 부총장은 "대체가 불가능한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대체가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바이오 플라스틱도 이미 기술은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석유 기반 대비 2~5배는 비싸다. 소비자는 결국 싼 제품을 선택한다.
"환경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지갑을 여는 순간 생각이 바꿉니다. 이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면서도 바이오 플라스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만약 공급망이 붕괴가 된다면? 그때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은 10배, 아니 50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 가격 비교를 넘어 판단해야 하는 점을 명확히 했다.
"포장재가 없으면 식품 유통이 멈춥니다. 사재기가 시작되고, 사회 갈등이 생깁니다. 그 비용은 제품 가격 차이의 수십 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서 이 부총장은 "지금의 글로벌 공급망이 '효율 최적화'에 맞춰져 있는데, '위기 대응'에는 취약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가장 싸고 효율적인 석유 기반 시스템이 위기 상황에서는 가장 취약한 구조가 되는 역설이다.
|
|
| ▲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겸 연구 부총장이 4월 30일 대전 대덕구 KAIST 본관 부총장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
| ⓒ KAIST 전형준 |
"바이오 플라스틱은 대체가 아니라 '전략적 완충제(buffer'), 즉 '보험'입니다. 전부를 바꾸자는 게 아닙니다. 일부라도 확보하자는 겁니다. 없을 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비싸도 쓸 수 있는 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평상시에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위기 상황에서는 시스템 전체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가격은 여전히 문제다. 그는 계산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공급망 붕괴 비용은 제품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 비용"이라며 "전부를 바꾸자는 게 아니다. 5%든 10%든 일부라도 준비하자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해법은 급진적이지 않다. 오히려 현실적이다. 정부의 역할도 명확히 제시했다. 핵심은 '상용화'다. 현실은? 바이오 화학 기술은 있지만, 시장이 없다. 기업이 생산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돈이 안 되니까요."
이 부총장은 "이건 시장에 맡기면 절대 안 된다"면서 "구조적으로 '시장 실패' 영역"이라고 했다. 그래서 필요한 건 정부의 역할이다. 정책 개입이다. ▲공공 의무 구매 ▲세제 혜택 ▲보조금 지원 ▲탄소 정책 연계 ▲전략 물자 지정 등을 제시했다. 그는 "경제성을 만들어주면 기업은 움직인다. 생산이 시작되면 가격은 떨어진다"면서 종량제봉투와 식품 포장재, 의료용 소모품을 '우선 전환 대상'으로 꼽았다. 특히 종량제봉투의 바이오화를 현실적인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생분해되는 플라스틱 봉투라면, 통째로 버리고 자연스럽게 처리됩니다. 지금처럼 봉투 따로, 음식물 따로 버릴 필요가 없죠."
|
|
| ▲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겸 연구 부총장이 4월 30일 대전 대덕구 KAIST 본관 부총장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
| ⓒ KAIST 전형준 |
"석유화학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없애면 안 됩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전부 수입에 의존하게 됩니다. 산업이 멈춥니다. 우리는 완전히 종속됩니다."
이 부총장은 "국내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국가 전략"이라며 "적자가 나더라도 최소한의 생산 능력은 유지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협상력도 사라진다"고 했다. 이 말은 단순한 산업 논리가 아니다. 국가 생존 전략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만큼은 반드시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인터뷰 후반, 그는 더 큰 문제를 꺼냈다. 플라스틱이 아니라 '식량'이다. 바로 '비료' 문제.
"비료를 만들려면 황산이 필요합니다. 황이 끊기면 황산을 못 만들고, 황산이 없으면 인산 비료를 못 만듭니다. 황은 중동에서 옵니다. 공급이 끊기면 농업이 흔들립니다."
그는 최근 기고에서도 "에너지-화학-식량 공급망은 하나로 연결된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연쇄적 붕괴를 우려했다. 요소수 사태는 그 전조였다. 요소수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생산을 해외에 맡긴 결과란 것.
"결국 다 돈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생존 문제는 시장에 맡기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국가 전략'을 다시 말했다. 공급망 문제를 외교와 산업 전략으로 확장했다. 그는 "기술 주권은 곧 협상력"이라고 강조했다.
"(대외) 협상력은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방산, 반도체처럼 다른 나라가 필요로 하는 제2, 제3의 반도체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대체 불가능한 기술 하나가 (우리에게) 있으면, 상황도 에너지 협상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짧은 시간, 그가 전한 말은 단순한 기술 이야기를 넘어섰다. 석유에 의존해 성장해온 산업구조, 위기마다 반복되는 망각, 그리고 '경제성'이란 이름으로 미뤄온 대비의 공백. 이번 위기는 단순한 자원 문제가 아니라 '준비하지 않은 시스템의 결과'라는 것까지.
건물 밖으로 나서자 점심시간을 맞은 학생들이 하나둘씩 보였다. 그들이 살아갈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지금의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 이상엽 부총장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전부 바꾸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위기 때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은 만들어야 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휠체어 탄 장애인이 주차장에서 쫓겨나는 이유
- "서울 거리가 똥 천지"... 어느 대통령 지지자들의 시위
- OECD 보고서 봤더니, '도쿄일극'엔 있고 '서울공화국'엔 없다
- 자궁경부암 백신, 이번엔 아들 차례... 그런데 왜 4가일까?
- 왜 나는 청약 당첨이 안 될까? 이 방송 보면 알게 됩니다
- 봄과 여름 사이 입하, 이 계절에 어울리는 육보차 한 잔
- 호르무즈 해협 한국 선박 화재 이틀째…사고 원인에 촉각
- 종합특검, 한동훈 출국금지…대통령실 수원지검 수사개입 관련
- 정원오에 '1대 1 토론' 제안한 오세훈... 이번에도 다자 토론회는 불참?
- 전한길 인천 계양을 출마 검토에, 박찬대 측 "민주주의 꺾으려는 음험한 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