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이제는 그만 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안도현 2026. 5. 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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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AI 작업대 돌리며 깨달은 것... 더 많이 시키는 능력만큼 중요한 건 멈추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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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기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 오마이뉴스
인공지능(AI)이 내 일을 줄여줄 줄 알았다. 적어도 지난주까지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 닷새 동안 나는 Claude Max 5배 용량을 다 쓰고도 부족해 100달러를 추가 결제했다. 거의 매일 새벽 3시, 어떤 날은 5시까지 AI와 함께 원고를 쓰고 고치고, 참고문헌을 붙이고, 위키를 정리했다. 노트북 앞에서 "이번 것만 보고 자야지"라고 말한 뒤, 다시 시계를 보면 두 시간쯤 지나 있는 식이었다.

처음엔 뿌듯했다. 내가 한 번에 할 수 없는 일을 AI가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더 바빠졌다. AI가 내 일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AI에게 시킬 수 있는 일이 늘어나자 내가 더 많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AI는 챗봇 하나가 아니다. 나는 Claude Code와 GPT Codex를 두 개의 작업대처럼 열어놓았다. 한쪽에는 원고 구조를 맡기고, 다른 쪽에는 참고문헌과 문서 정리를 맡겼다. 내가 자료를 확인하는 동안 한 AI는 초안을 만들고, 내가 초안을 읽는 동안 다른 AI는 폴더를 정리했다. 그 사이 나는 결과물을 읽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다시 지시하고, 브라우저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파일을 열었다 닫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작업반장에 가까웠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가 스타크래프트가 됐다. 본진에서 일꾼을 뽑고, 정찰을 보내고, 병력을 찍고, 업그레이드를 누르듯이, 나는 여러 AI 세션을 동시에 굴리고 있었다. Claude에게 일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Codex가 만든 초안을 확인한다. 그 초안을 읽다가 다시 Claude 쪽 결과가 도착한다. 결과물이 뜨면 작은 전투가 끝난 것처럼 바로 다음 지시를 넣었다. 문서, 브라우저, 채팅창, 코드 모드 사이를 쉬지 않고 오갔다.

문제는 멈춤 신호가 흐려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새벽 2시쯤 되면 몸이 먼저 알려줬다. 졸리고, 문장이 안 들어오고, 집중력이 꺼졌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접을 수 있었다. 그런데 AI와 함께 일하는 밤에는 그 신호가 와도 쉽게 무시된다. AI와 함께 작업 과정이 나를 흥분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끝나면 또 다른 결과물이 도착해 있다. 피곤해서 멈춘다기보다, 결과물을 하나 더 확인하면 깨어나는 이상한 리듬이 생겼다.

AI와 함께 멈추는 법 배워야 할 때

더 위험한 것은 실제로 뭔가가 남는다는 점이다. 밤새 게임을 하면 피로와 리플레이 정도가 남지만, AI와 밤을 새우면 원고가 생기고, 표가 정리되고, 참고문헌이 붙고, 위키가 갱신된다. 그래서 스스로를 설득하기가 쉬워진다. "그래서 이렇게 많이 해냈잖아." 성취감이 피로를 덮어버린다. 다음 날 아침의 멍함은 밤의 성취감보다 늦게 도착한다.

AI는 일을 끝내주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일을 더 많이 벌일 수 있게 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산출물이 많아지면 선택하는 일도 많아진다. 무엇을 남기고 버릴지, 사실은 맞는지, 내 문장으로 책임질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AI의 답은 완성품이라기보다 후보군이었다.

이 자각을 다시 AI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뜻밖에도 답은 따뜻했다. 글쓰기는 문제를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몸을 쉬게 하는 일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한다는 취지였다. 새벽 2시에는 강제로 종료하는 알람을 두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했다. "이 문제를 더 잘 설명하는 것"과 "오늘 잠을 자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 말을 읽고 조금 웃었다. 일을 더 많이 하도록 한 AI가 이제는 그만 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AI를 쓰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AI를 쓸 것이다. 다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쓰고 싶다. AI가 열어주는 가능성은 매력적이지만, 가능성은 곧 할 일 목록이 된다. 피로는 데이터가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다.

AI 시대에 내게 필요한 능력은 더 많이 시키는 능력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멈출지 정하는 능력이었다. 얼마나 빨리 만들 것인가만큼, 언제 노트북을 닫을 것인가도 중요해졌다. AI에게 일을 시켰더니 내가 더 바빠졌다. 이제는 AI와 함께 일하는 법만큼, AI와 함께 멈추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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