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아이는 행복할까?”…시스템이 지키는 아역배우의 꿈
아역의 꿈이 ‘희생’이 아닌 ‘성장’이 되도록
공연계가 구축한 지속가능한 인프라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극장가는 또래 배우들의 공연을 보며 꿈을 키우는 아이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학부모들로 붐비고 있다. 최근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처럼 아역 배우가 극의 중심을 이끄는 작품이 늘어나면서 아동 배우의 연기 환경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과거 아역이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잠시 연기하거나 귀여운 마스코트 역할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현재는 성인 배우 못지않은 고난도 퍼포먼스와 깊은 감정 연기를 수행하는 추세다. 연극 무대의 화제작인 ‘그의 어머니’처럼 정서적 수위가 높은 작품까지 아역의 비중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는 개막 전 1년 이상의 고난도 전문 훈련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려지고, 연극 ‘그의 어머니’의 아역은 사회적 폭력과 지탄을 연기하면서 극심한 정서적 소모를 겪어야 하는 캐릭터다. 현재 공연 중이거나, 공연을 앞둔 ‘렘피카’ ‘베토벤’ ‘스윙 데이즈 암호명 A’ 등에서도 아역은 전쟁, 방임, 가족 간의 갈등 등 무거운 시대적·사회적 서사를 완성하는 축으로 작동한다.
이에 따라 아이를 무대에 세우고자 하는 학부모의 열망이 높아질수록, 현장의 안전망에 대한 불안감 역시 공존한다.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고 아동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공연계에 안착한 장치가 바로 전담 보호 인력인 샤프롱(Chaperone) 제도다.
샤프롱은 무대 뒤편에서 아동 배우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학습권과 정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전문가를 의미한다. 국내 공연계에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2015년 뮤지컬 ‘원스’ 초연 당시였다. 해외 스태프들이 아동 배우의 인권 보호를 위해 샤프롱 배치를 필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계기가 됐다.
이전엔 아동 배우들이 성인 배우들과 대기실을 함께 쓰며 현장 스태프들이 필요에 따라 개별적으로 챙기는 방식이었으나, 샤프롱 도입 이후 전문적인 케어가 가능해졌다. 당시 ‘빌리 엘리어트’의 제작사인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작품을 구성하는 한 인격체로서 어린이가 존중받는 것은 당연하고, 예술 무대에서 성인과 동일한 수준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조력자가 필요하다”면서 “샤프롱 제도를 도입하면 그 장점이 뚜렷해 지속적으로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필수적인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빌리 엘리어트’를 비롯해 ‘미세스 다웃파이어’ ‘마틸다’ ‘킹키부츠’ 등 아역이 출연하는 대형 뮤지컬 작품에서 샤프롱을 뒀던 것과 달리, 연극에서 샤프롱 제도를 도입한 건 드문 경우다. ‘그의 어머니’ 측은 “보호자와 아역 배우 전담 매니저가 함께해 아역 배우가 부적절한 장면과 대사에 노출되지 않도록 연습 환경을 조성해 제작했다”고 전했다. 특히 신체적 안전사고 방지와 인솔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아동의 정서적 케어와 전문적인 심리 방어선 구축에 역점을 뒀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공연계와 달리 방송가에서의 아동, 청소년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는 정도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아동·청소년의 기본권 보장과 노동시간 제한을 규정하고 있지만, ‘합의에 따라’ 등의 조항이 첨가되어 있고 처벌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학습권·건강권 등에 관한 세부 규정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연령별 시간 제한을 세분화하고, 보호자가 동의하더라도 다음날 수업이 있는 경우 등엔 야간 활동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연령을 세분화해 청소년 연예인의 용역제공 시간을 제한하는 개정안은 현실을 외면한 ‘대중문화산업 발전 저해 법안’”이라는 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폐기됐다.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동, 청소년의 보호를 단순히 ‘연령’과 ‘시간’ 등으로만 재단한 결과값이다.
다만 한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 A씨는 “사회적 인식 때문인지 현장의 분위기가 과거와 달라진 부분은 있다”면서 “아역 배우의 경우 학습권 보장이나 야간 활동에 있어서는 눈에 보이는 부분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 지켜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해묵은 관행이 완전히 뿌리뽑혔다고 보긴 힘들다”며 “또 현장에서 아이들의 컨디션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공유하는 식의 체계적인 정서 관리 시스템 역시 여전히 미비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샤프롱 시스템은 대형 제작사를 중심으로 민간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아역 배우의 역할이 커지고, 그 무대에 서고자 하는 꿈을 키우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시대다. 이미 시스템의 긍정적 역할이 입증된 만큼, 영국이나 미국 등 공연 선진국과 같이 샤프롱의 자격 요건을 법적으로 명시하거나 고용을 의무화하는 강제 조항도 필요해 보인다. 한 공연 관계자는 “무대 위에 선 아이들의 꿈은 이제 개인의 인내나 부모의 희생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며 “체계적인 시스템이 보장하는 안심 위에서 아동 예술가들의 꿈은 비로소 상처 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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