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외국인 누구, 왜 만났나” 정부, 연구기관 27곳 전수조사
정부가 국무총리실 소관 정부출연 연구기관 27곳의 직원 전원을 상대로 외국인 접촉 현황 조사에 나섰다. 이는 국가정보원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2024~2025년 동안 해당 기관 연구자들이 외국인을 접촉한 목적과 횟수, 만난 장소까지 모두 들여다본다. 국책연구기관 직원이 외국인을 접촉하는 건 보고 사안이기는 하지만, 조사 대상과 시기를 이처럼 광범위하게 설정한 전수 조사는 사실상 처음이다.

4일 복수의 관련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국정원 방첩정보공유센터(NCIC)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국조실)에 국책 연구 기관의 외국인 접촉 현황을 사실상 전수 조사해 달라는 업무 협조 공문을 보냈다. 조사 대상은 국조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NRC) 소관의 27개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전원이라고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통일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교육개발원, 육아정책연구소 등이 이에 속한다.
조사의 골자는 해당 기관들의 직원들이 지난 2024년~2025년 외국인을 접촉한 유형(방식), 유형별 총 접촉 횟수, 일시·장소, 외국인의 국적과 소속, 접촉 목적 등 파악이다. 조사를 위한 기관 별 통보는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현행 국정원법과 대통령령인 방첩업무 규정 등에 따르면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들은 주한 외국 공관 관계자나 외국 언론인, 외국 수사·정보기관 의심자를 접촉할 때 소속 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사전에 서면으로 신고하는 게 원칙이지만, 부득이한 경우 지체 없이 사후에 신고하도록 한다. 신고가 성실하게 이뤄졌는지 여부는 주기적으로 소관 부처가 감사를 통해 관리·감독한다.
다만 이는 기관 자체적으로 이뤄지는 내부 보고의 성격이 강하다. 각 기관이 아닌 국조실 차원에서 국책 연구 기관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외국인 접촉 현황을 전수 조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 국조실 관계자는 “유관 기관의 협조 요청이 있었고, 관계 법령과 규정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시는 국조실이 내렸지만, 실질적인 주관 부처는 국정원이라는 설명이다.
국정원은 방첩 목적으로 이뤄지는 통상적인 업무의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국정원은 중앙일보의 질의에 “방첩정보공유센터는 국정원법과 방첩업무 규정에 근거해 방첩 및 관계 기관 구성원의 외국인 접촉 특이 사항에 대한 신고 처리와 분석 업무를 담당한다”며 “이번 요청은 관련 법 및 규정에 의거한 것으로, 방첩 관련 신고·제보 등의 분석 처리를 위한 방첩정보공유센터의 주요 업무”라고 답했다.
이번 조사가 국책 연구 기관의 연구자들에게 접근하는 잠재적 외국 요원이나 산업 스파이 등을 추적하기 위한 사전 파악 차원일 수도 있는 셈이다. 방첩업무 규정에 따르면 국정원장은 외국 등의 정보활동을 사전에 탐지·차단하기 위한 정보에 대해 방첩정보공유센터를 통해 정부 부처에 협조 요청을 할 수 있다.
국정원 방첩정보공유센터는 정부가 2017년 말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폐지하며 신설한 기구다. 방첩·대테러 분야에 한정해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2020년 12월 출범했다.
이와 관련,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은 새 지휘부 출범 이후 국가 핵심 기술 보호와 유출 차단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제반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동시에 법과 규정에 의거해 국익 수호를 위한 다각도의 대응 방안을 강구·시행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 대상자와 내용, 기간이 전례 없이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학계는 술렁이는 분위기다. 국조실은 조사 대상자를 27개 기관 소속의 상근·비상근 및 연구직 여부 등 고용 형태에 관계 없이 ‘전 직원’이라고 밝혔다. 원칙적으로는 조사 대상만 1만 명 가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KDI만 하더라도 총 직원 수가 올해 1분기 기준 473명이다.
국정원이 통보한 조사 대상 기간이 2024년 1월부터 2025년 12월 말까지 2년에 이르는 것을 두고도 여러 뒷말이 나온다. 이는 이재명 정부 출범(지난해 6월 4일) 이전까지 포함한 기간으로, 12·3 비상계엄을 전후로 각 1년이다.
이에 조사 대상자들 사이에선 ‘사상 검증’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만나는 외국인을 통해 연구자의 성향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사가 연구에 필요한 외국인 접촉을 자제하도록 연구자들을 위축시키거나 궁극적으로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또 외국인을 접촉한 동선까지 세세하게 물을 수 있도록 한 건 개인 정보 침해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방첩업무 규정도 14조에서 방첩기관 등의 구성원에 대해 안보·국익 보호 목적 외에 외국인 접촉의 부당한 제한은 금지하고 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통상의 보안 수사나 방첩 정보 수집의 경우에는 대상 기관과 대상자를 특정하는데, 이번 조사는 그렇지 않은 데다 기간도 지나치게 방대하다”며 “국책 기관 연구자들은 이 자료가 인사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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