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따뜻한 돌봄 동행… ‘노숙인 선생님’이 영적 가족으로

김수연 2026. 5.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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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의 보살핌이 일으킨 변화
‘용산역 노숙인 사역팀’ 청년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역 1번 출구 근처 계단에서 기도하고 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달 27일 오후 8시 서울 용산역 1번 출구 앞. 퇴근길 인파 사이로 청년 다섯 명이 계단에 둘러앉았다. 각자 챙겨온 빵과 음료, 라면 봉지를 내려놓고 찬양을 부른 뒤 기도로 사역을 시작했다.

“주님, 자격 없고 소망 없는 우리를 사역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받은 사랑과 은혜를 흘려보내게 해주세요.”

기도가 끝나자 모자를 눌러쓴 노인이 이들에게 먼저 다가왔다. 청년들은 “선생님, 오늘 제일 먼저 오셨네요”라며 빵과 음료를 내밀었다. 이들은 노숙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선생님’이라 부른다. 역 안에 들어서자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화답했다. 이날은 한 노숙인이 가방에서 작은 키링 인형을 꺼내 건네는 장면도 펼쳐졌다. 청년들은 감사 인사를 건네며 곧장 가방에 키링을 달았다.

이 사역은 2021년 1월 폭설 속에서 시작됐다. ‘용산역 노숙인 사역팀’ 리더 김예닮(25)씨는 “뉴스에서 길거리 노숙인이 추위에 얼어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바로 그 옆에는 수천 명이 살 수 있는 아파트가 텅 비어 있었다”며 “추운 날 누군가는 집이 없어 죽어야 하는 현실에 분노가 올라왔다”고 회상했다. 다음 날 친구 최명철(25)씨와 함께 핫팩 수십 개를 들고 서울역과 영등포역, 용산역 인근을 돌았다.

용산역을 거점으로 삼은 건 이유가 있었다. 김씨는 “다른 역에 비해 노숙인 수는 적지만 길거리 생활 비율이 80% 이상으로 높고 복지의 손길이 덜 닿는 사각지대”라며 “소수 인원으로도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사역팀 최명철(오른쪽)씨가 용산역 안에서 노숙인과 기도하는 장면, 오른쪽 사진은 사역팀 청년들이 지난해 10월 인근 굴다리에 상주하는 노숙인들을 찾아가 교제하는 모습. 사역팀 제공


그날 이후 모임은 매주 이어졌고 올해로 6년 차를 맞았다. 출석하는 교회도 , 이 사역에 합류하게 된 인연도 제각각인 20대 초중반 청년 3~8명은 매주 월요일 밤 11시까지 함께한다. 사역팀은 매주 간단한 식사 거리를 준비하는 한편 구체적인 돌봄도 이어간다. 뇌병변 질환을 앓는 할머니의 발이 차갑다는 말을 듣고 수면양말을 전했고, 알코올 의존증으로 위생 문제가 심각한 60대 노숙인에게는 피부약과 속옷, 갈아입을 바지를 준비했다. 락앤락 통, 바람막이, 신발, 틀니 세척용 칫솔까지 시설 복지가 채우지 못하는 ‘생활의 빈틈’을 이들이 메운다.

시간이 흐르며 정서적 교류도 깊어졌다. 한 할머니는 청년들이 과도한 요구를 받을 때 대신 나서 “애들 집에 가게 놔두라”고 혼내준다. 5년 넘게 만나온 한 남성은 매번 아버지처럼 “밥은 먹었냐, 학교는 잘 다니냐”며 안부를 묻는다. 시설에서 받은 간식을 챙겨주거나 수급비를 쪼개 용돈을 건네는 이도 있다.

사역팀은 처음부터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관계와 신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기도와 찬양으로 축복한다. 그 방식은 느리지만 변화는 분명했다.

6년 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만큼 삶의 의욕을 잃었던 한 할머니는 축복 기도를 받은 후 시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한 할아버지는 “한 달 안에 돈이 채워지면 예수님을 믿겠다”고 했다. 김씨가 그의 이야기를 SNS에 공유하자 백내장 수술비 60만원과 틀니 제작비 200만원이 실제로 모였고 그는 치료 후 영접 기도를 드렸다.

처음부터 함께했던 최씨에게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중학생 시절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를 겪었다”는 그는 “사역 1년 차 때 비슷한 병을 앓는 할머니와 손잡고 기도했는데, 우리를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됐다”고 했다.

이 모든 돌봄은 자비량으로 시작됐다. 김씨가 아르바이트로 번 50만원으로 시작해 약 10개월간 후원 없이 이어갔다. 현재 SNS를 통해 간헐적인 후원을 받지만 사역비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사역은 멈추지 않았다.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그는 “학비 부담 없이 사역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도했더니 대학원 장학금도 받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거리의 많은 이가 술로 세월을 보낸다. 알코올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매주 월요일 밤, 청년들이 용산역으로 향하는 이유다.

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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