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경제학은 길을 잃었는가?

2026. 5. 5. 00:3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요즘 경제학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에는 묘한 불신이 깔려 있다.

현실은 요동치는데 경제학은 여전히 균형 방정식만 고집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정말 길을 잃은 것인가.

경제학은 길을 잃은 것인가.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재준
인하대 교수
파이낸스경영학과


요즘 경제학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에는 묘한 불신이 깔려 있다. 현실은 요동치는데 경제학은 여전히 균형 방정식만 고집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데 경제학은 과거의 틀에 안주한다는 인상도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경제학은 정말 길을 잃은 것인가.

경제학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해 그 안에 담긴 핵심 메커니즘을 찾아내는 학문이다. 수요와 공급, 가격과 인센티브, 효율성과 균형은 만능 해결사가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를 식별하는 ‘렌즈’였다. 현미경의 렌즈가 미세한 세포와 그 안의 세균을 찾아내는 데 쓰였던 것처럼 경제학의 힘은 엉킨 실타래 속에 보이지 않는 작동원리를 규명해내는 데서 나왔다. 문제는 그 렌즈가 비춰야 할 대상이 확대된 데 있다. 오늘날 현미경 렌즈가 반도체 회로를 검사하고, 나노 소자처럼 극미세 부품을 비추는 데 쓰이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세상의 변화는 크게 네 갈래에서 밀려오고 있다. 첫째, 국제 질서의 변화다. 1991년 구소련 붕괴,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세계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을 축으로 돌아갔다. 기업들은 효율성을 좇아 지구 곳곳에 생산과 물류를 배치했고, 경제학은 그것이 합리적 선택임을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안보가 전면에 등장했다.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전략산업에서 각국은 동맹과 안보를 기준으로 공급망을 다시 짜고 있다. 자유무역과 효율성만으로 설명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경제학이 틀린 것이 아니라 풀어야 할 목적함수에 안보라는 제약조건이 추가된 것이다. 둘째, 기술 환경의 변화다. 인공지능(AI)은 연구와 분석의 방식 자체를 흔들고 있다. 누가 더 자료를 잘 다루고 수리적 기법에 뛰어난지가 관건이 아니다.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그리고 그 해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분석의 대상도 늘어났다. 생산함수를 다룰 때 노동과 자본만이 아니라 이제는 AI라는 생산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AI가 계산은 빠르겠지만 어떤 모형을 선택하고 어떻게 해석할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셋째, 국제통화 질서의 변화다.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은 통화·금융정책과 재정정책 간 경계를 흔들고 있다.화폐란 어떻게 신뢰를 얻는지, 법정화폐와의 공존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통화주권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이 모두는 화폐의 근본을 묻는 질문이다. 넷째, 공정과 같은 사회적 가치의 부상이다. 소득 격차와 자산 불평등, 지역과 세대 간 격차 문제를 효율성의 잣대와 무관하다는 이유로 더는 외면하기 어렵다. 물론 경제학이 이 문제를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불평등과 재분배는 경제학계의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다만 연구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있었는데, 이제는 순위의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다시 묻는다. 경제학은 길을 잃은 것인가.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 금리와 자산가격, 세금과 규제가 개인과 기업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데 여전히 강력한 도구다. 문제는 도구의 성능이 아니라 풀어야 할 과제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세상이 새로운 지도를 들고 나왔는데 과거의 지도만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효율성의 잣대뿐 아니라 안보, 기술, 공정의 잣대도 들고 새 지도를 읽어야 한다.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라는 진화론의 통찰은 경제학에도 유효하다. 경제학이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방향을 다시 설정할 용기다.

한재준
인하대 교수
파이낸스경영학과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