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선포로 서울의 봄축제가 시작됐다

이규승 2026. 5. 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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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양천에서 열린 어린이·가족 예술축제 <톡톡>

[이규승 기자]

 봄축제 '봄봄'의 개막식에는 4명의 어린이들과 서울문화재단 송형종 대표이사가 함께 만들었다
ⓒ 이현아
"우린 누구나 한때 어린이였습니다."

지난 2일, 서남권을 대표하는 예술교육 거점인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양천에서 열린 봄축제 <봄봄> 개막 선포식에서 서울문화재단 송형종 대표이사는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그날 양천의 공기와 이상하게 맞아떨어졌다. 어린이날은 분명 지금 아이들만의 날이 아니다. 그가 말한 취지를 살펴보자면, 한때 어린이였으나 이제는 부모가 되고, 교사가 되고, 직장인이 되고, 관객이 된 어른들이 잠시 자기 안의 오래된 아이를 다시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날 개막의 주인공은 대표의 말보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더 가까이 있었다. 무대 위에는 어린이 네 명이 중심에 섰다. 그리고 그 곁에 송형종 대표가 무릎을 낮추고 앉았다. 어른이 앞에서 선언하고 아이들이 뒤에서 박수치는 풍경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직접 봄축제의 시작을 알리고, 어른은 그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곁을 지키는 장면이었다.

서울의 봄축제는 그렇게 아이들의 선포로 시작됐다

지난 5월 2일부터 3일까지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양천과 서서울호수공원 일대에서 어린이·가족 예술축제 <톡톡>이 열렸다. 하늘은 맑게 열리지 않았지만, 공기에는 축축한 봄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러나 축제장은 흐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행사장 곳곳을 뛰었고, 부모들은 유모차를 밀며 공연장과 체험장을 오갔다. 센터 외벽에는 "어린이·가족 예술축제 톡톡"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아래로 풍선을 든 아이들, 돗자리를 든 가족들, 손을 맞잡은 부모와 아이들이 천천히 흘러갔다.

축제의 타이틀은 <톡톡>이다.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이가 처음 낯선 세계를 만질 때의 소리, 손끝으로 확인하고 눈으로 따라가고 몸으로 반응하는 소리였다. 이날 양천의 축제장은 그런 작은 접촉들이 모여 하나의 큰 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개막선포식은 그 자체로 축제의 방향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무대 위에 오른 어린이 네 명은 흰 티셔츠를 맞춰 입고 손에 종이를 들고 있었다. 마이크 앞에 선 아이들의 표정에는 설렘과 긴장이 함께 묻어났다. 한 아이는 종이를 두 손으로 꼭 쥐었고, 다른 아이는 객석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기 문장으로 시선을 내렸다. 어른들의 인사말보다 먼저 들린 것은 아이들의 호흡이었다.

그 곁에 송형종 대표가 있었다. 그는 아이들 앞에 서지 않았다. 마이크를 독점하지도 않았다. 아이들 옆에서 몸을 낮췄다. 그 자세 하나가 많은 말을 했다. 공공기관의 대표가 축제를 대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로 봄을 열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리는 자리. 그것이 이날 개막선포식의 가장 아름다운 표정이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은 더 조용해졌다. 무대 앞에 앉아 있던 가족들은 고개를 들었고, 난간에 기대어 있던 관객들도 몸을 기울였다. 아이들이 한 문장씩 읽을 때마다 객석의 공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그곳에는 매끄러운 연설보다 더 생생한 떨림이 있었다. 발음이 조금 흔들려도 괜찮았다. 잠시 멈춰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축제의 장식이 아니라, 축제를 여는 주체로 서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장면은 문득 오래전 어린이날의 첫 마음을 떠올리게 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를 어른의 부속물이 아니라 하나의 존엄한 인격으로 세우고자 했던 마음 말이다. 어린이날은 본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기 전에, 아이들이 이 사회의 당당한 존재임을 선언하는 날이었다. 이날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양천의 무대 위에서 네 명의 어린이가 봄축제의 시작을 알리고, 기관장이 그 곁에서 몸을 낮춘 장면은 그 오래된 정신을 오늘의 공공예술축제 안에서 다시 불러낸 듯했다.

거창한 선언문보다 강한 것은 때로 자세 하나다. 아이들 옆에 앉은 어른, 마이크를 쥔 어린이, 그 앞에서 박수를 보내는 가족들. 그 순간 <톡톡>은 단순한 어린이날 행사가 아니었다. 백 년 전 어린이를 앞으로 세우려 했던 마음이 오늘의 축제 안에서 다시 호명되는 작은 역사적 장면이었다.
 서울을 대표하는 어린이가족 예술축제 <봄봄>의 현장
ⓒ 이규승
거대한 피노키오가 걸어오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개막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축제장은 곧 동화 속으로 들어갔다. 서서울호수공원 광장에는 대형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결을 닮은 몸, 커다란 손, 길게 뻗은 팔다리, 머리 위 작은 장식. 피노키오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인형이 천천히 움직이자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놀라운 것은 크기보다 움직임이었다. 대형 인형은 위압적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천천히 손을 흔들고, 아이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아이들은 처음엔 부모 뒤에 살짝 숨었다가 이내 앞으로 나왔다. 어떤 아이는 손을 흔들었고, 어떤 아이는 입을 벌린 채 바라봤다. 어른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지만, 아이들의 눈은 화면보다 먼저 인형의 손끝을 따라갔다.

하얀 물고기 모양의 오브제와 공연자들이 함께 움직이는 퍼레이드는 공원의 풍경을 순식간에 다른 세계로 바꿔놓았다. 도로와 공원, 건물과 나무 사이로 커다란 인형이 지나가자 일상은 잠시 균열을 냈다. 아이들은 그 틈으로 들어갔다. 예술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왜"라고 묻기 전에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거대한 인형의 걸음, 공연자들의 몸짓, 흔들리는 오브제, 그 모든 것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깨웠다. 예술축제에서 어린이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어려운 해설이 아닐 때가 많다. 먼저 놀라야 한다. 먼저 바라봐야 한다. 먼저 따라가고 싶어야 한다. <톡톡>의 대형 인형 퍼레이드는 바로 그 첫 감각을 정확히 건드렸다. 아이들은 무대 밖에서도 관객이 될 수 있고, 때로는 행렬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센터 안쪽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검은 무대 위에는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무대 앞에는 알록달록한 풍선이 낮게 묶여 있었다. 객석은 의자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가족들은 바닥에 앉았고, 아이들은 부모 무릎에 기대었다. 2층 난간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섰다. 계단과 통로, 벽과 난간까지 모두 객석이 되었다.

그 장면이 좋았다. 무대가 객석을 밀어내지 않고, 객석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공연장은 닫힌 상자가 아니라 열린 마당처럼 작동했다. 아이들은 얌전히만 앉아 있지 않았다.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 부모에게 무언가를 물었고, 어느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반응은 방해가 아니라 공연의 일부가 되었다. 무대 위 공연자들도 아이들의 호흡을 알고 있었다. 작은 소품 하나가 등장할 때마다 기다림이 생겼고, 아이들의 시선은 그 소품을 따라 움직였다. 어린이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조용히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 방식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감각이다. 이날 무대는 그 감각을 알고 있었다.

"곰돌이를 그려서 같이 던지면서 놀았어요."

축제의 진짜 평가는 어른의 말보다 아이의 말에 더 가까이 있었다. 무대와 체험장을 오가던 아이들은 자신이 방금 무엇을 했는지 길게 설명하지 못하는 듯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감각만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연합뉴스TV 보도 영상에서 한 어린이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말에 따라서 바람을 넣어서 비닐봉지에다가 곰돌이를 그려서 같이 던지면서 놀이했어요."

짧은 소감이었지만, 그 안에 이날 <톡톡>의 성격이 거의 다 들어 있었다.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바람을 넣고, 비닐봉지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함께 던지며 노는 시간. 아이들에게 예술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기 전에 몸을 움직이고, 손으로 그리고, 친구와 함께 웃는 일이었다. '만들기'와 '놀이'와 '공연'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바람을 넣는 행위는 조형이 되고, 곰돌이를 그리는 순간은 미술이 되고, 함께 던지는 몸짓은 작은 퍼포먼스가 되었다.

어른들은 흔히 예술을 장르로 나누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나누지 않는다. 아이에게 이날의 경험은 "그림을 그렸다"거나 "공연을 봤다"는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같이 놀았다"는 감각으로 남았다. <톡톡>이 어린이·가족 예술축제로 설득력을 얻은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이들이 예술을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술 안에서 놀았다. 그리고 그 놀이는 아이들의 말 속에서 가장 맑고 구체적인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어린이가족예술축제 <봄봄>의 현장
ⓒ 이규승
가족축제라는 이름의 도시 예술교육

<톡톡>은 어린이날을 앞둔 가족축제였지만, 단순한 하루짜리 이벤트로만 보기는 어려웠다. 이 축제에는 서울문화재단이 권역별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를 통해 만들어가고 있는 방향이 담겨 있었다. 예술교육을 교실 안 프로그램으로만 두지 않고, 시민의 일상 공간으로 꺼내는 일. 어린이와 가족을 관객이자 참여자로 동시에 세우는 일. 지역의 공원과 문화공간을 연결해 하나의 열린 예술 동선으로 만드는 일.

서서울호수공원과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양천은 그런 점에서 좋은 무대였다. 공원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공간이고, 센터는 예술이 머무는 공간이다. 이날 <톡톡>은 그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아이들은 공연을 보다가 체험 공간으로 이동했고, 체험을 하다가 다시 무대 앞으로 돌아왔다. 축제는 한 장소에 고정되지 않고 계속 순환했다. 가족들은 그 흐름을 따라 걸었다. 어쩌면 이날 가장 많이 움직인 것은 아이들의 발이 아니라 감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인형을 보고 놀라고, 무대 위 피아노와 공연을 바라보며 귀를 열고, 벽에 붓을 대며 손끝을 믿고, 작은 놀이 장치 앞에서 몸을 기울이는 시간. 그 모든 순간이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예술 경험이었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내 몸으로 따라갈 수 있으며, 내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감각. <톡톡>은 그 감각을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감각을 어른들이 다시 발견하게 해주었다. 축제장을 빠져나오는 길,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은 가벼웠다. 아이들은 손에 풍선이나 작은 만들기 결과물을 들고 있었고, 부모들은 휴대전화 속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어떤 사진은 선명했을 것이고, 어떤 사진은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의 기억은 조금 흔들린 사진처럼 남는 편이 더 어울린다. 아이들은 뛰었고, 멈췄고, 웃었고, 다시 붓을 들었다. 예술은 완성된 결과보다 살아 있는 순간에 가까웠다.

서울문화재단의 봄축제 <봄봄>은 양천에서 멈추지 않는다. 5월 9일까지 서울 곳곳에서 이어지는 이번 축제는 어린이날 연휴를 지나 노들섬과 서울의 여러 무대로 확장된다. 5월 4일과 5일에는 노들섬에서 서울서커스페스티벌이 열려 봄의 몸짓을 이어가고, 이 밖에도 서울스테이지와 노들노을스테이지가 시민들을 만난다. 양천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작된 봄은 이제 서울 곳곳으로 번져간다. 누군가에게는 대형 피노키오의 손짓으로, 누군가에게는 하늘색 벽에 남긴 노란 물감으로, 누군가에게는 아이들이 직접 읽어낸 개막선언의 작은 떨림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래전 어린이날이 그랬듯, 이날의 봄도 아이들을 앞으로 세우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어른들이 말하고 아이들이 듣는 축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말하고 어른들이 귀 기울이는 축제. 그것이 지난 5월,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양천에서 열린 <톡톡>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양천에서 펼쳐진 어린이가족 예술축제 <봄봄> 현장 사진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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