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퇴직연금 드디어…쥐꼬리 수익률 끝?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6. 5. 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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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조 시장 흔들 기금형 퇴직연금

최근 금융권에는 전담 조직 신설, 태스크포스 가동 등 새로운 시장 선점을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근로복지공단이 주도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푸른씨앗 전담 운용기관 선정 절차에도 대형 금융사들이 연이어 참여 의사를 밝히며 치열한 물밑 경쟁을 예고한다. 500조원 규모에 육박하는 퇴직연금 시장에 어떤 변화가 임박했기에 금융권이 이토록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일까. 그 중심에는 기존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 뭐길래

사업장 적립금을 전문금융사가 운용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내 퇴직연금 총 적립금은 496조8021억원 규모다.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으나, 최근 10년 평균 수익률은 2.31%에 머물고 있다. 이는 물가 상승률이나 정기예금 금리보다 낮다. 국민연금의 장기 연평균 수익률이나 미국의 대표적 퇴직연금인 401k의 연평균 수익률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벌어진다.

수익률 저조의 근본 원인은 현재의 계약형 구조에 있다. 계약형 구조는 개별 기업이나 근로자가 직접 금융상품을 선택·운용하는 방식이다. 전문 금융 지식이 부족한 가입자들은 원금 손실을 우려해 자산의 대부분을 단기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방치하는 경향이 짙다. 실제 전체 적립금의 약 85%가 원리금 보장형에 묶여 장기 복리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이 논의되는 것이 기금형 퇴직연금이다. 기금형은 개별 사업장의 적립금을 하나의 대형 기금으로 모아 외부의 독립적인 전문 수탁법인에 맡겨 운용하는 제도다. 자산 규모가 커지면 다양한 대체투자가 가능해지고 운용 수수료율은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올해 2월 노·사·정 공동선언으로 퇴직연금 의무화와 기금형 제도 도입이 예고되면서 이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도 시행하면 뭐가 달라지나

근로복지공단 시범운영 수익률 8%

기금형 제도가 안착할 경우, 직장인 관점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노후 자금의 실질적인 증식이다. 전문가들이 자산을 분산 투자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한다. 개인이 직접 운용할 때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일례로 근로복지공단이 3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기금형 퇴직연금 푸른씨앗은 지난해 기준 8.6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연봉 4000만원인 근로자가 30년간 근속할 경우, 평균 수익률이 2.31%일 때의 퇴직 수령액은 약 1억3700만원이지만, 전문가 운용을 통해 수익률이 6%로 상승하면 수령액은 약 2억7900만원으로 2배가량 증가한다. 퇴직연금이 실질적인 소득대체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태스크포스 꾸리는 금융권

푸른씨앗 운용사 선정에 각축

업계에서는 기금형 제도가 도입될 경우, 금융사의 핵심 역할이 뒤바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금융사들은 주로 가입자(근로자)가 직접 예금이나 펀드를 고를 수 있도록 가판대에 상품을 진열해놓는 단순 상품 판매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기금형 제도가 도입되면 금융사는 가입자의 나이, 소득, 은퇴 시점, 투자 성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최적의 투자 포트폴리오(식단)를 알아서 짜준다. 나아가 시장 상황이 변할 때마다 전산 시스템(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비중을 조절하고 지속적으로 수익률을 점검해준다. 이것이 바로 플랫폼 관리와 종합 자산 운용 체계로의 전환이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스스로 금융 상품을 공부하고 선택해야 하는 부담을 덜고, 전문가의 관리를 통해 노후 자산을 안정적으로 불려나갈 수 있게 된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법적 의무 강화가 자리한다. 기금형 구조에서는 고객의 자산을 넘겨받아 굴리는 수탁법인(자산운용을 전담하는 독립 기관)이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수탁자 책임(고객의 이익을 금융사의 이익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엄격한 법적, 윤리적 의무)이 한층 엄격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단순히 자사나 계열사에서 만든 이윤이 높은 상품을 추천하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오직 고객의 노후 자산 증식만을 목표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해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주요 금융지주들은 앞다퉈 전담 조직을 꾸리며 시장 선점 채비에 나섰다. 신한금융은 기금형 전환을 올해 주요 전략 과제로 설정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최근 주주서한을 통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중심으로 장기적인 자금 운용 체계를 마련하고 기금형 퇴직연금 확대에 대비한 다양한 전략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KB금융 역시 기금형 솔루션 제공자를 목표로 워킹그룹을 구성해 그룹 차원의 역량을 결집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NH농협금융은 지주 차원의 태스크포스를 가동해 제도 도입에 대응 중이다. 특히 농업인 퇴직연금 제도와 연계해 자산이 농지에 집중된 농업인을 위한 맞춤형 모델도 살펴보고 있다.

최근 푸른씨앗 전담 운용기관 입찰에도 기존 운용사인 미래에셋증권 외에 NH투자증권, 삼성자산운용 등 대형사들이 대거 뛰어들면서 향후 11조원 규모로 커질 시장을 향한 쟁탈전이 가열되고 있다.

남겨진 과제는

특수고용직 등 사각지대 놓여

기금형 제도의 도입 취지에는 노사정 모두 공감대가 있으나,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가장 시급한 문제로는 퇴직연금 사각지대 해소가 꼽힌다. 현행 법망에서는 근속 기간 1년 미만의 단기 근로자나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들이 연금 혜택을 받기 어렵다.

더불어 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불러올 영세 중소기업의 자금난 우려도 넘어야 할 산이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퇴직연금 정책 방향 토론회에서 “갑작스러운 사외적립 의무화로 소규모 사업장이 인건비와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해 인원 감축, 사업 축소, 심지어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영세 사업장을 배려한 단계적 도입과 정책 지원을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변화 자체보다 수익률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는 투자 문화의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영주닐슨 성균관대 교수는 국회 토론회 기조발제를 통해 “현행 퇴직연금의 문제는 자산이 아닌 행동에 있다”고 꼬집으며 “단순히 수익률 결과로만 책임을 묻기보다는 의사결정 과정의 적정성을 따지는 과정 책임으로 전환해야 담당자들이 가입자를 위해 소신 있는 운용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8호(2026.05.06~05.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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