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분당선 소래포구역에서 시작된 소박한 하루 여행

전갑남 2026. 5. 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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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내음과 사람 냄새 가득한 포구에서 만난 대한민국 근현대사

[전갑남 기자]

수인분당선 소래포구역에 내리면 비릿한 바다 내음이 먼저 코끝에 닿습니다.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포구가 자리하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지요. 한 달에 한 번,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소박한 여행을 즐기는 우리 일행은 4월 말, 모처럼 소래를 찾았습니다. 길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활기가 실려 있습니다.
 옛 소래어시장의 풍경을 실감 나게 재현한 디오라마(Diorama). 수하물을 인 여인과 왁자지껄한 흥정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전갑남
'소래(蘇來)'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니 재미있습니다. 지형이 소라처럼 생겨서, 혹은 냇가에 숲이 많아 '솔내'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 깨어나 돌아온다'는 뜻에 유독 눈길이 머뭅니다. 모진 풍파를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오늘날 소래의 생동감이 그 이름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합니다.
갯벌 위로 흐르는 경계와 생계의 시간
 소래철길 인도교 위에서 바라본 수인선 철교와 물길. 과거의 협궤열차가 달리던 자리 옆으로 현재의 전철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 전갑남
우리는 먼저 소래철길을 걸어보았습니다. 철길 인도교는 과거 수인선 협궤열차가 실제로 달리던 옛 선로 자리로, 인천 남동구와 경기도 시흥시 월곶을 연결하던 길입니다. 폐선 뒤 레일 일부를 보존해 산책로이자 역사적인 포토존으로 활용되는 다리는 소래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소래철길에서 바라본 장도포대(왼쪽 소나무 언덕)와 그 뒤로 병풍처럼 선 현대식 아파트촌. 과거의 방어기지가 지금은 도심 속 쉼터로 변모했다.
ⓒ 전갑남
철교 위에 서자 잔잔히 흐르는 좁은 물길과 갯벌이 눈에 들어옵니다. 밀물이 들 때는 은빛 물결이 철교 아래를 채우고, 썰물이면 바닥을 드러낸 갯벌 위로 게와 작은 생명들이 분주히 움직입니다.
철길 오른쪽, 바다를 향해 낮게 엎드린 돌 성벽을 바라보던 일행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게 묻습니다.

"여보게, 저거 강화도 해안가에서 흔히 보던 돈대나 포진지 아닌가? 여기서 보니 꼭 강화 앞바다 같네."

나는 예전에 여러 번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어, 일행에게 장도포대에 대한 내력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저건 포대예요. 원래 노루를 닮았다고 해서 '노루섬(獐島)'이라 불리던 곳인데, 조선 말기 외적을 막으려고 세운 방어기지죠. 지금은 매립되어 육지처럼 보이지만, 저 자리가 옛날엔 장수가 올라앉아 주변을 살피던 눈이었던 셈이지요."

같은 바다를 두고도 한쪽에서는 그물을 던져 생계를 이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적의 침입을 경계하던 그 옛날의 시선이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삶의 현장, 어시장

쉬엄쉬엄 걷다가 보니 어느덧 점심 때가 다 되어갑니다.

"포구에 왔으니 시장 구경도 하고 싱싱한 회나 한 접시 먹자구요."

내가 건넨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조심스러운 기색입니다. 사실 소래포구 어시장을 향한 세간의 시선이 늘 곱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시장은 잊을 만하면 바가지 상혼에다 지나친 호객 행위로 뉴스에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사람들이 소래를 사랑하는 만큼 실망의 골도 깊습니다. 최근에는 상인들 스스로 오명을 벗기 위해 자정 노력에 힘쓰고 있다는 소식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빨간 파라솔 아래 활기가 넘치는 소래포구 좌판 어시장 전경. 싱싱한 해산물을 흥정하는 상인들과 관광객들의 모습에서 삶의 역동성이 느껴진다.
ⓒ 전갑남
새롭게 현대식으로 단장한 어시장 안. 우려와 달리 삶의 에너지가 파도처럼 거칠게 밀려듭니다. 탁 트인 시장 골목 사이사이로 각종 싱싱한 수산물이 쌓여 있고, 수조마다 제철을 맞은 생선들이 거품을 물며 바다에서 헤엄치듯 펄떡입니다.

"자, 지금 바다에서 바로 건져온 팔팔한 것 여기 있어요. 여기! 오늘 광어 물건이 아주 좋아요! 싸게들 가져가세요!"

고무장화를 신은 상인들이 깊숙한 대야에서 물고기를 건져 올릴 때마다 사방으로 물보라가 튑니다. 걸찬 외침과 어상자를 끄는 마찰음, 투박한 농담 섞인 흥정 소리가 뒤섞인 시장 안은 그야말로 파도처럼 일렁이는 생생한 삶의 현장입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상인들의 젖은 손등과 도마 위를 가르는 숙련된 칼날에서는 삶의 절실함과 정직한 노동의 리듬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우리는 걸쭉한 상인이 권한 자연산 광어 한 마리를 골라 2층 식당으로 올라갔습니다. 창밖 포구 풍경을 곁들인 회 한 점에 오늘의 바다를 담아 보았습니다. 싱싱한 회의 달큰함과 매운탕의 칼칼함이 어우러진 바다의 맛이 일품입니다.

협궤열차와 염전, 켜켜이 쌓인 기억의 조각들
 소래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소래역사관 외관. 벽면에 걸린 대형 협궤열차 사진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예고한다.
ⓒ 전갑남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소래역사관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었던 '협궤열차'와 소래의 근간인 '염전'이라는 두 개의 테마가 하나의 실타래처럼 엮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시장 안의 실제 협궤열차 차량에 직접 올라타 보았습니다. 마주 보는 좌석 사이, 좁은 간격이 주는 생경함이 오히려 정겨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소래역사관 내부에 전시된 실제 협궤열차의 객차 내부. 무릎이 닿을 듯 좁게 마주 보는 좌석에서 옛 수인선의 덜컹거리던 정취가 느껴진다.
ⓒ 전갑남
"와, 지금 열차보다 폭이 좁기는 진짜 좁네."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막상 앉아보니 생각보다 아늑한데?"
"자기는 예전 수인선 실제로 타봤어?"
"그럼요. 이게 1995년까지 운행했으니까, 그때 그 덜컹거리던 느낌이 아직도 선해요."
이어지는 염전 전시에서는 햇빛과 바람으로 소금을 만들던 고된 노동의 시간이 전해졌습니다. 사실 수인선 열차는 일제강점기 시절, 국내 최대의 천일염 생산지였던 소래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인천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태어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소래 역사관 내부에 재현된 옛 소금창고와 염전 도구들. 소금가마니와 소금을 나르던 무자위가 고된 염부의 삶을 증언한다.
ⓒ 전갑남
철길은 소금을 실어 나르는 통로였고, 염전은 소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젖줄이었습니다. 이제 소금기 가득했던 그 소란스러운 풍경은 역사관 안의 모형으로 남았지만, 덜컹거리던 협궤열차의 소리는 소래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싣고 여전히 기억 속을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풍경들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숨 가쁜 시간이 켜켜이 쌓인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다시 소래를 떠나며, 바람에 실어 보낸 염원

역사관 밖으로 나오니 다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조금 전과 같은 바람인데도, 전시를 통해 소래의 깊은 속살을 들여다본 뒤 마주하는 바람은 어딘지 다르게 느껴집니다. 보고, 먹고, 걸었을 뿐인데 그 안에 여러 겹의 시간이 묵직하게 스며든 듯했습니다.

소래는 지금의 풍경 위에 지난 시간을 조용히 겹쳐 놓고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밀려드는 비릿한 바다 내음과 왁자지껄 사람 냄새가 나는 포구를 뒤로하고, 우리는 소래포구역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잔잔한 물결 위로 평화로움이 감도는 소래포구 전경. 현대식으로 단장한 어시장 건물 앞으로 고기잡이배들이 정박해 있어 포구 특유의 정취를 더한다.
ⓒ 전갑남
우리 소시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있는 소래포구가 옛 정취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뜨내기손님이 아닌 단골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 상거래의 기본이 되어, 누구에게나 다시 찾고 싶은 사랑받는 명소로 거듭나길 기대해 봅니다.

다시 깨어나 돌아온다는 '소래' 그 이름의 의미처럼, 더 맑고 활기찬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물러 주길 바라는 마음. 그 간절한 염원 하나를 소래의 바람에 실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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