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아래 잠긴 옛 37번 국도, 사연 한번 들어보실래요

월간 옥이네 2026. 5. 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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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간 꽁꽁 묶였던 길, 친환경 도선 개통과 함께 열리다... 그곳에 담긴 추억과 풍경

[월간 옥이네]

 대청댐 건설 이후 40여 년간 꽁꽁 묶였던 길이 3월 친환경 도선 개통과 함께 열렸다.
ⓒ 월간 옥이네
1980년 대청댐이 생기기 전, 호수 아래에는 마을이 있었다. 마을이 물에 잠겼다는 것은 이들이 살던 집도, 농사짓던 논밭도, 또 매일같이 오가던 길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졌을 일상의 풍경. 그것이 한순간에 바뀐다는 것은 큰 충격이자 상실이었을 테다.

대청댐 건설 이후 40여 년간 꽁꽁 묶였던 길이 3월 친환경 도선 개통과 함께 열렸다. 장계관광지~연주리로 이어지는 뱃길은 대청댐 건설 이전 주민들이 도보로 왕래하던 길이자, 집터, 생계를 지탱하는 논밭이 있던 땅이기도 했다. 그 풍경을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 물 밑에 잠긴 마을과 길을 복기해봤다.

수몰의 아픔 지닌 주민이 '자연환경해설사'로

조승국(64)씨는 지난 3월 9일부터 대청호생태관광협의회 자연환경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2021년 5월, 옥천 대청호 안터지구(안내면 장계리와 옥천읍 오대리, 동이면 석탄리, 안남면 연주리를 잇는 21km, 총면적 43㎢)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금강유역환경청에서 자연환경해설사를 채용·배치한 것.

그는 앞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풍성한 생태관광을 누릴 수 있도록 해설을 맡을 예정이다. 그는 현 옥천 대청호 안터지구 자연환경해설사인 동시에 동이면 동정리 출신으로 고향의 수몰을 경험한 옥천 주민이기도 하다. 수몰을 앞둔 1980년의 봄, 그때에도 그는 마을에 있었다.

"예전 고향 집이 지금의 안터선사공원 주차장 자리에 있었어요. 가구 수가 50호 정도로 꽤 큰 마을이었죠. 군동초등학교(죽향국민학교 동정분교, 1966년 개교~1980년 신축이전)도 우리 마을에 있었는데 동정리와 화계리, 수북리, 안터마을 등 가까운 마을 외에도 장계리, 오대리에서도 학생들이 모였어요. 한 학년당 120명 정도씩 있었으니 학생 수가 720명은 됐던 것이지요."

동이면 동정리는 대청댐 건설로 4가구를 제외한 전 주택이 수몰, 이주한 마을이다. 당시 32가구가 지금의 동정리 마을 위치로 이주, 나머지 가구는 지탄리, 남곡리, 평택 간척지 등지로 이주해야 했다. 동정리 윗마을로 이주한 가구는 최대부지가 100평까지만 가능했기에, 32가구가 다소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태가 됐다.
 조승국(64)씨는 지난 3월 9일부터 대청호생태관광협의회 자연환경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 월간 옥이네
"예전 고향 집은 300평 부지에 우물과 미루나무가 가까이에 있는 대문이 큰 집이었죠. 거기에서 좁은 집으로 왔으니 답답하고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에 잠긴 논밭도 2천 평 규모나 되었어요. 급하게 기존 집의 자재를 뜯어다가 집을 짓는 바람에 날림공사도 많고, 허술한 집들이 많았고요."

그는 동정리에 군동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이발소, 주막, 구판장, 방앗간, 구멍가게 등 다양한 상점도 즐비했고 가까운 수북리에서는 시내버스가 15분에 한 번씩 설 정도로 교통이 편리했다고 회상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마을 옆으로 옛 37번 국도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옛 37번 국도는 옥천읍에서 보은까지 이어지는 도로였죠. 이 도로를 따라 상인들이 많이 왕래했어요. 예전에는 오일장이 있던 시대니까 상인들이 장이 열리는 곳을 찾아서 지역마다 다닌 거예요. 보은장, 옥천장 가려면 여기를 거쳐야 했겠죠. 옥천 장날이면 인근 지양리, 남곡리, 장계리, 오대리에서 우리 마을 근처로 다들 모이곤 했어요. 마을에 구판장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마을 주민 중에는 여기서 물건을 떼어다가 다른 지역으로 판매하는 일을 부업처럼 하던 분들도 많았어요. 당시 가장 인기가 좋았던 작물은 고사리였고요."

그렇게 편리했던 교통은 대청호 수몰 이후, 버스가 하루 다섯 번 서는 것으로 줄었다. 버스가 다니던 옛 37번 국도가 수몰되면서 노선이 바뀐 것이었다. 조승국씨는 이를 "문명 시대에서 석기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37번 국도에 관련된 기억은 조승국씨 개인에게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금강과 가까운 국도 길에 학생들이 동원되어 수업시간에 코스모스를 심곤 했던 것.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이면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은 37번 국도 비포장길 양옆으로 4~5km가량 코스모스 모종을 심곤 했다. 학생들의 수고 덕분에 매해 가을이면 이곳에는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피어 오르곤 했을 테다.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 안 하고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했지요(웃음). 수업 안 해서 좋다고 와- 하고 나가서 심었을 거예요."

학창시절, 학급 친구들 중에는 가까운 동네뿐 아니라 장계리, 오대리, 석탄리(덩기미) 출신도 있었는데 조승국씨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국도길과 여울길을 다녔던 기억을 꺼냈다.

"여울이 여러 군데 있었어요. 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도 했는데, 그때 배는 커다란 장대를 바닥에 밀어서 가는 식이었어요. 오대리와 버들개에 뱃터가 있었고 동네 분들이 돌아가며 배를 운항했죠. 강 건너편에서 '배 건너'하고 소리 지르면 뱃사공이 노를 저어 오곤 했어요. 배 타는 마을 아이들은 그렇게 소리를 질러서인지 유난히 목청이 크고 노래도 잘했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석탄교(안터교) 아래 너른 논밭에서는 정월대보름 행사가 크게 열렸다. 이날이면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등 놀이를 하고, 산봉우리 위로 뜬 둥근 달을 함께 바라보곤 했다. 농사 시작 전후로 하던 행사도 빼놓을 수 없는 정겨운 추억이다. 모내기를 하기 전, 솥을 들고 금강에서 '천렵'을 해 생선국밥을 끓여 먹던 기억, 추수 후 집마다 시루떡을 만들어 돌리던 문화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던 문화가 급격히 사라진 것은 역시 수몰 이후. 조승국씨는 1980년의 봄을 또렷이 기억해냈다.

"1980년은 제가 대학 1학년 입학했을 때예요. 5·18 민주화 운동으로 전국이 떠들석하고 대학은 강제휴교령이 내려졌죠. 저도 달리 갈 곳이 없어서 고향으로 내려와 있었는데, 그때가 딱 수몰을 앞둔 시기였어요. 이주를 재촉하는 사람들이 마을에 있었고, 주민들도 급하게 이주를 준비하고 있었지요. 같이 항아리 나르고, 이것저것 짐을 옮기러 다녔어요."

옥천대청호생태관광협의회 회장이자 석탄2리 이장인 황기백(73)씨는 동이면 지양리 고향으로, 군 제대 후 고향에 와 보니 옛길이 사라졌던 기억을 떠올렸다. 수북리에서 지양리로 통하던 길이 사라지고, 대청호 물을 피해 빙 돌아서 통해야 했다.

"그 불편이 좀 해소된 것은 1990년대에 석탄교(안터교)가 놓이면서였지요. 옥천 출신 박준병 국회의원이 다리 건설에 힘을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최고의 피서지였던 옛 기억 너머, 주민에게 더 친숙한 대청호되길
 대청호
ⓒ 월간 옥이네
친환경 도선 운항 시 이용객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계관광지, 이곳의 옛 풍경은 어땠을까. 장계관광지 내 위치한 옥천향토전시관 이안재 명예관장과 장계리 주민 이시창(71)씨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계리는 진모래 마을, 가경주, 주막말, 욱계 이렇게 네 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어요. 진모래 마을이 지금의 장계관광지 자리예요. 여기에는 이전부터 놀이시설인 대청비치랜드(1992~2010)가 있었죠. 가경주 마을에는 현 '뿌리깊은나무'가 있고요."

이안재 관장은 가경주와 진모래 마을 사이에 있던 잠수교(장계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수몰 전에는 37번 국도가 잠수교로 이어져 있었고, 이 길을 통해 가경주 마을과 진모래 마을 아이들은 강을 건너 안내초등학교, 안내중학교로 향하곤 했다는 것. 현 장계교 위치와는 다소 차이가 있던 다리다. 이곳이 잠수교로 불린 것은, 비가 와 강물이 불면 다리가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여름에 비가 오면 홍수가 나곤 했다지요. 이 다리는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있던 다리인데, 대청댐 건설 이전까지 유일하게 차가 건널 수 있는 다리였다고 합니다. 비가 많이 오면 학생들이 등·하교길도 꼼짝없이 막히는 거였어요. 그래서 학교에서도 여름날 비가 쏟아지면 강 건너 마을 아이들은 먼저 가라고 선생님들이 보내주었다고 하지요."

잠수교까지 걸어가기가 멀었던 일부 진모래 마을 학생들은 잠수교 대신 여울길을 이용해 강을 건너기도 했다. 하지만 홍수가 나면 두 가지 경로 모두 막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시창씨는 가경주 마을에 태어나 16년 전, 타지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를 통해 좀 더 실감 나는 마을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 잠수교 건너서 안내초등학교 다니곤 했죠. 고등학교는 옥천상고를 다녔는데, 그때는 마을 앞까지 버스가 들어왔어요. 옥천읍까지 나가려면 좀 멀긴 했어도 버스는 자주 왔으니까, 그거 타고 갈 만했고요. 진모래 마을 아이들은 여울 건너 산길을 지나 신촌마을 통해서 등·하교 했어요."

가경주 마을에는 과거 옥천군 유일한 물놀이 시설인 장계수영장(1960년대 설치)이 있었다. 백사장이 아름답고 물이 깨끗해 많은 사람들이 찾던 피서지로, 그린여관이라는 숙박 시설도 함께 있었다고.

"인기가 정말 많던 곳이지요. 수몰 전에는 여기 37가구가량이 살았어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 우물에서 물을 마셨는데, 참 깨끗하고 좋은 물이었어요. 지금의 뿌리깊은나무 아래쪽으로는 묘지가 있었는데, 거기 잔디가 좋아서 아이들은 거기서 어울려 놀기도 했고요. 뿌리깊은나무에 있는 오래된 굴참나무는 아이들이 그네를 매어 타던 나무예요."

수몰 이후로는 이곳도 동정리와 마찬가지로 3~4가구를 제외한 모든 주민이 옥천읍, 평택 간척지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마을이 해체됐다. 37번 국도가 물에 잠기면서 버스 노선도 끊겨, 2015년 11월 옥천군 다람쥐택시가 처음 운행되기 이전까지 가경주 마을 주민들은 자가용 이외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는 상황이었다.

"부모님 건강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죠. 저는 1977년부터 경기도 수원에서 공군 생활을 했기에 수몰 이후 자주 찾아오진 못했어요. 나중에 찾아왔을 때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전에는 북적북적 살기 좋던 마을에 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교통 오지가 됐으니까요. 남아 있는 주민들의 경제생활이 원만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걸 보며 더 속상했던 것 같습니다."

아름답던 옛 추억을 뒤로 하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다. 주민들은 대청호가 보호해야 할 자연자원인 동시에 마을에도 도움이 되는 좋은 친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청호 친환경 도선 운행은 앞으로 과연 여기에 힘을 실을 수 있을까?

한편, 대청호생태관광협의회 황기백 회장은 "대청호가 마을에 피해를 주는 존재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삶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자연보호와 동시에 마을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 활동이 가능하도록 합리적인 규제 법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대청호생태관광협의회 조승국 자연환경해설사는 운항을 앞둔 친환경 도선에 대한 견해와 함께 앞으로 활동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친환경 도선도 좋지만, 그보단 정지용호가 '생태교육선'으로 불렸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요. 하루 2차례 운행이고, 노선 상황을 고려하면 교통수단보다는 생태교육 목적으로 탑승하는 분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죠. 과거 이곳을 살았던 마을 주민으로서 탑승객에게 생태 관련 내용과 더불어 수몰 전 마을 이야기도 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대청호 안터 지구가 넓은 만큼 자연환경해설사도 각 권역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인력이 저를 포함해 세 명 정도는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앞으로 자연환경해설사로 일하며 자료조사와 지역 체험 코스, 대청호 안터 지구에 대한 해설서 제작도 해보고자 해요."
 1980년 대청댐이 생기기 전, 호수 아래에는 마을이 있었다.
ⓒ 월간 옥이네
월간옥이네 통권 106호
글 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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