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시골 마을에서 "손주들 유학 보내라"는 선생님을 만났다
[문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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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순초등학교 이서분교장 무지갯빛으로 단장한 화순초 이서분교장 전경. 푸른 운동장 너머로 무등산이 어우러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
| ⓒ 문운주 |
아스팔트 무동길을 따라 걷는다. 길가에는 영산홍이 붉게 피어 계절을 알린다. 무동제를 지나 송계마을로 이어지는 길목에서는 제법 넓은 논들이 시야를 채운다. 마을은 유난히 말끔하게 정돈돼 있다. 사람의 기척이 적어서일까, 고요함이 더 또렷하다.
화순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마을들은 크지 않지만, 각기 다른 결의 풍경과 시간을 품고 있다. 송계마을은 넓은 들판을 품은 마을이다. 무동제에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해 시야가 트이고, 정돈된 논과 밭이 차분한 인상을 남긴다.
서동마을로 접어들면 길은 한층 아늑해진다. 마을을 감싸는 낮은 산과 들이 어우러져 포근한 분위기를 만든다. 크지 않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오래된 담장과 골목에서는 생활의 흔적이 잔잔하게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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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마을 봄을 맞아 논갈이가 한창인 화순 들녘. 고요한 산자락 아래,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촌의 시간이 차분히 흐른다. |
| ⓒ 문운주 |
서동마을에는 한때 70여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17가구만 남았다고 한다. 주민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마을이 텅 비게 될 것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농촌 공동화의 흐름은 이곳 역시 비켜가지 못하는 듯하다. 사람이 사라지고, 집이 사라지고, 마을이 사라진다.
용강마을은 물과 가까운 지형 덕분인지 한층 부드러운 풍경을 보인다. 마을 주변으로 흐르는 물길과 논이 어우러져 전형적인 농촌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들녘이 이 마을의 가장 큰 표정이다.
영평마을에 이르면 길은 다시 한 번 여유를 되찾는다. 넉넉한 들판과 한적한 주택들이 어우러진 이곳은 걷는 이의 호흡을 자연스레 늦춘다. 화려함은 없지만, 오래도록 이어져 온 삶의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무돌길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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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서농장 이서분교장 텃밭 옆 닭장. 아이들과 마을이 함께 가꾸는 작은 생태 공간이 농촌 학교의 일상을 보여준다. |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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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순초등학교 이서분교장 이서분교장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판매하는 ‘건강한 무인 야채가게’.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만든 작은 나눔의 공간이다. |
| ⓒ 문운주 |
학교 옆 텃밭에서는 한 사람이 분주히 농작물을 돌보고 있다. "꼬꼬댁, 꼬꼬댁" 닭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그는 온몸에 흙을 묻힌 채 묵묵히 일을 이어간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니, 뜻밖에도 이곳 학교의 선생님이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텃밭입니다. 여기서 키운 농산물은 '건강한 무인 야채가게'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마을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물론, 귀농·귀촌이 가능한 살기 좋은 마을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시도는 아닐까. 그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학교의 현황을 차분히 설명했다. 이서분교장의 학생 수는 모두 18명. 초등학생 9명, 중학생 8명, 고등학생 1명이다. 교사가 11명이다.
이곳은 초·중·고 과정을 함께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농촌 유학(도시 학생의 농촌 전학 프로그램)과 마을학교 운영 등 정책적 지원으로 간신히 폐교를 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손주들, 이곳으로 유학 보내세요."
농촌 유학은 도시의 아이들이 일정 기간 농촌에 머물며 학교를 다니고, 마을 속에서 생활을 경험하는 교육 방식이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사는' 시간을 통해 자연과 공동체, 그리고 삶의 속도를 배우는 데 의미가 있다.
최근 농촌 인구 감소와 맞물려 일부 지역에서는 농촌 유학을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학생이 늘어나면 학교가 유지되고, 마을에는 다시 사람의 기척이 돈다. 비어가던 집에 불이 켜지고, 끊겼던 일상이 조금씩 이어진다.
그러나 농촌 유학이 모든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정주 여건과 교육 환경, 생활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을 떠나보낸 자리를 다시 사람으로 채워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사람이 사라지고, 집이 사라지고, 마을이 사라지는" 흐름 속에서, 농촌 유학은 그 반대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늘도 무돌길 위에서 천천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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