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류 난제 푸는 구원투수 될까, 불평등 증폭기 될까?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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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겸 CEO를 청와대에서 접견(2026년 4월 27일)하고 있다. |
| ⓒ 청와대 미디어 |
한 방송은 하사비스라는 인물을 통해 AI의 다음 10년을 물었고, 다른 방송은 배터리와 인재 경쟁을 통해 AI 시대의 산업 기반을 짚었다. 방향은 달랐지만 질문은 비슷했다. AI는 이제 연구실과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 산업 구조, 교육, 에너지, 삶의 방식 전체를 흔드는 문제라는 것.
지능을 해결하면 인류의 난제도 풀리는가
며칠 앞선 4월 27일, 그 질문의 중심에 선 인물이 서울에 있었다. 데미스 하사비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총괄했던 그는 2024년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가 되어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는 바둑판 앞이 아니라 청와대 접견장과 정부 업무협약 현장에 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4월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하사비스 CEO를 접견했다. 같은 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구글 딥마인드는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업무협약을 맺었다. 포시즌스호텔은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열렸던 장소다. 10년 전 바둑판 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제는 국가 전략과 과학기술 협력의 문서 위로 옮겨온 셈이다.
4월 29일에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구글 포 코리아 2026' 행사에서 하사비스와 이세돌이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바둑판에 서명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지만, AI가 지나온 속도를 생각하면 한 세기가 압축된 것처럼 느껴진다. 알파고가 "기계도 직관을 흉내 낼 수 있다"는 충격을 줬다면, 지금의 AI는 "기계가 과학적 발견의 동료가 될 수 있다"는 더 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엔이 내놓은 숫자들
2015년, 193개 유엔 회원국은 지속가능발전목표, 즉 SDGs를 채택했다. 빈곤 종식, 기아 해소, 건강과 복지, 양질의 교육, 성평등, 깨끗한 물, 청정에너지, 기후변화 대응 등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목표를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약속의 시계는 기대만큼 빨리 가지 않았다. 유엔의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Report 2025'는 추세 데이터가 있는 SDGs 세부목표 가운데 정상 궤도에 있거나 중간 정도 진전을 보이는 목표가 35%에 그친다고 밝혔다. 거의 절반은 너무 느리게 움직이거나 미미한 진전에 머물고, 18%는 2015년 기준선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2024년 보고서의 경고도 이미 냉혹했다. 당시 유엔은 2030년까지 정상 궤도에 오른 세부목표가 17%뿐이라고 진단했다. 숫자의 산정 방식은 보고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계는 2030년 목표를 향해 충분히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빈곤 종식, 기아 해소, 기후위기 대응, 청정에너지 보급은 선언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2030년까지 4년여가 남은 지금, 인류의 약속은 곳곳에서 흔들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AI는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구원투수인가, 또 다른 불평등의 증폭기인가.
2020년 < Nature Communications >에 실린 비누에사(Vinuesa) 등 연구진의 논문은 이 질문에 낙관과 경고를 함께 제시했다. 연구진은 AI가 169개 SDGs 세부목표 가운데 134개의 달성을 도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59개 세부목표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두 숫자는 단순히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찬반표가 아니다. 같은 기술이 어떤 목표에는 도움이 되고, 다른 목표에는 위험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AI는 가속기다. 그러나 무엇을 향해 가속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빈곤층을 더 빠르게 발견해 지원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감시와 배제의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도 있지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폭발시킬 수도 있다. 의료 접근성을 넓힐 수도 있지만, 보험·채용·대출 같은 민감한 영역에서 차별을 자동화할 수도 있다.
알파폴드가 연 문
하사비스가 2024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단백질 구조 예측 AI인 알파폴드 계열 연구의 공로였다. 정확히 말하면 2024년 노벨화학상은 데이비드 베이커의 계산 단백질 설계 연구와, 하사비스·존 점퍼의 단백질 구조 예측 연구에 돌아갔다.
단백질은 생명의 작동 단위다. 단백질의 구조를 아는 것은 질병을 이해하고 약물을 설계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아미노산 서열이 어떤 3차원 구조로 접히는지를 예측하는 문제는 수십 년 동안 생물학의 난제였다. 알파폴드2는 이 병목을 크게 줄였다. 노벨위원회는 하사비스와 점퍼가 2020년 알파폴드2를 제시한 뒤 연구자들이 약 2억 개에 달하는 단백질 구조 예측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신약 개발 전체가 곧바로 몇 달 안에 끝난다는 뜻은 아니다. 표적 탐색, 후보물질 발굴, 구조 분석의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임상시험, 안전성 검증, 허가, 생산, 가격 결정, 접근성 보장은 여전히 긴 과정이다. AI가 실험실의 시간을 줄여도 병원과 환자의 시간까지 자동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4월 27일 한국 정부와 구글 딥마인드의 협약은 의미가 있다. 과기정통부는 구글 딥마인드와 과학기술 혁신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고, 국가과학AI연구센터를 중심으로 AI 연구와 협력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브리핑도 바이오, 기상·기후, 미래 에너지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 구글 딥마인드와 협력하겠다는 방향을 설명했다.
이 협력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데이터와 인재, 연구 인프라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연구실의 모델만으로는 부족하다. 병원 데이터, 기상 데이터, 재난 데이터, 에너지 데이터가 공익적 목적 아래 안전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동시에 개인정보, 생명윤리, 알고리즘 책임, 연구 접근성에 대한 기준도 따라와야 한다.
일본이 알려주는 몇 가지
기술 낙관론이 커질 때일수록, 제도의 속도를 봐야 한다. 기술이 먼저 달리고 제도가 뒤따라가면 현장은 혼란을 겪는다.
일본의 AI 의료기기 사례는 이 점을 보여준다.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는 AI를 활용한 프로그램 의료기기, 즉 SaMD와 관련해 국내외 규제, 안전규격, 머신러닝 편향, 시판 후 학습, 평가 데이터 재사용 같은 쟁점을 전문부회에서 검토해왔다. 이는 일본이 뒤처졌다는 단순한 낙인이 아니다. 오히려 AI가 의료 현장에 들어가려면 기술 성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의료 AI가 진단을 보조할 때 오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알고리즘이 새 데이터를 학습하며 성능이 달라질 때, 허가는 한 번으로 충분한가. 특정 인종, 성별, 연령대의 데이터가 부족해 편향이 생기면 누가 발견하고 고쳐야 하는가. 환자는 자신이 AI 판단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이 정리되지 않으면 기술은 현장 문턱에서 멈춘다. 병원은 위험을 떠안기 어렵고, 기업은 책임 범위를 예측하기 어렵고, 환자는 신뢰하기 어렵다. 기술 우위만으로 사회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다.
한국도 이 교훈을 결코 흘려들을 수 없다. 한국은 2026년 1월 22일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을 시행했다. 세계적으로 이른 시기에 포괄적 AI 법제를 마련한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그러나 법이 있다고 제도가 곧바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법 조문이 현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부처 간 책임 경계가 모호하거나, 피해 구제 절차가 느리면 같은 지연은 한국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AI가 인류를 위한 가속기가 되려면, 안전혁명이 먼저다
AI가 SDGs를 앞당기는 진짜 가속기가 되려면 전제가 있다. 기술 도입과 동시에 제도 전환, 안전 설계, 공정한 분배의 원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속도를 늦추자는 말이 아니다. 어디로 달릴지 먼저 정하자는 말이다.
AI가 전력망을 최적화해 청정에너지 보급을 돕더라도, 그 과정에서 에너지 빈곤층이 배제된다면 SDGs 7번 목표(모두를 위한 적정가격의 신뢰할 수 있고 지속가능하며 현대적인 에너지에 대한 접근 보장)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 AI로 신약 후보물질을 빠르게 찾더라도, 그 약이 고소득 국가와 고소득층 환자에게만 닿는다면 SDGs 3번 목표(모두를 위한 건강한 삶 보장과 웰빙 증진)는 공염불이 된다. AI가 농업 생산성을 높여도 소농의 데이터가 플랫폼 기업에 종속된다면 기아 해소와 농촌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은 함께 흔들릴 수 있다.
기술의 열매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위험은 누가 부담하는가.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사람은 없는가. 이 질문들이 AI 시대 안전혁명의 핵심이다.
하사비스 자신도 위험을 모르는 낙관론자가 아니다. 4월 27일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그는 AI가 큰 기회를 가져오지만 악의적 사용 가능성과 독자적 의사결정을 하는 AI의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최소한의 가드레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대통령의 AGI 시점 질문에는 이르면 2030년 무렵 범용인공지능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30년은 SDGs의 목표 시점이기도 하다. 인류가 빈곤, 기아, 기후위기, 불평등을 줄이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시점에, AI는 인간의 거의 모든 인지 능력을 모방하거나 넘어서는 기술 단계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두 시계가 같은 해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하나는 너무 느리고, 다른 하나는 너무 빠르다.
이 간극을 메우는 일은 기술 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정부, 의회, 법원, 연구기관, 시민사회, 언론, 학교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공적 과제다. AI 안전은 전문가 회의실의 의제가 아니라, 복지·노동·교육·보건·에너지·기후 정책의 기본 조건이 되어야 한다.
한국이 서야 할 자리, 그리고 가야 할 길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열린 지 10년여가 지났다. 당시 한국 사회는 AI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기계가 인간의 직관을 이겼다는 놀라움,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 그래도 새로운 산업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2026년의 한국은 그때와 다르다. 이제 AI는 놀라움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대상이다.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원칙으로 쓸 것인가의 문제다.
하사비스는 한국을 특별한 장소로 기억한다. 알파고 대국이 열린 서울에서 현대 AI의 상징적 장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한 장소라는 말에는 책임도 따른다. 한국은 AI를 빠르게 도입하는 나라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안전하고 공정한 활용의 기준을 세우는 나라가 될 것인가.
전자는 단기 성과를 낳을 수 있다. 후자는 신뢰를 쌓는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연산량과 모델 성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민이 믿을 수 있는 제도, 피해가 발생했을 때 작동하는 구제 절차, 공공 데이터의 투명한 활용, 소외계층을 배제하지 않는 설계가 함께 있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목표가 흔들리는 세계에서 AI가 진정한 해법이 되려면 기술 혁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안전혁명, 제도 전환, 미래 리스크 관리가 함께 달려야 한다. 딥마인드가 오래 붙들어온 질문은 지능을 만들고 그것으로 과학적 난제를 푸는 일이었다. 이제 더 어려운 질문이 남았다.
그 지능을 누구를 위해, 어떤 규칙이나 규범 아래, 어디까지 쓰게 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 한국도 서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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