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수업의 목표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호갑 2026. 5. 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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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켜나니 보이네 13] 인공지능 시대 교육의 방향을 고민하다

[정호갑 기자]

 사회 변화의 속도는 20여 년 전보다 더 빨라졌다. 학교도 여기에 맞춰 속도가 빨라졌을까? 겉모습은 많이 변화했지만,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는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기업은 100마일 속도로 달리는데, 학교는 10마일로 달리고 있다."

20여 년 전,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읽었다. 나의 수업은 몇 마일로 달리고 있을까? 당시 학교에 있는 사람으로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당시 내 수업은 수능과 대학에 갇혀 있었다. 아이들에게 점수를 1점이라도 더 받게 하는 것이 나의 교육 목표였다. 그때는 그것이 아이들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나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세뇌하였지만, 교실 문을 나설 때, 뒤통수의 따가움은 피할 수 없었다.

사회 변화의 속도는 20여 년 전보다 더 빨라졌다. 학교도 여기에 맞춰 속도가 빨라졌을까? 겉모습은 많이 변화했지만,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는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인간은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고, 그 기계를 이용하여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인간과 기계가 역전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기계에 조종당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인간은 기계에 묻고 기계의 지시에 따른다. 인간의 뇌는 'AI 아첨에 중독된 뇌'(MBC 스트레이트, 2026.05.03.)가 되어 가고 있다.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것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뇌를 되살려 놓아야 하지 않나? 인공지능에 아첨 되어 있는 뇌를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 방향을 여기서 찾아야 하지 않겠나?

뜻하지 않게 퇴임 후, 프놈펜한국국제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운을 얻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개인의 삶에, 사회에 이어져야 한다. 만약 학교에서 배운 것이 개인에게, 사회에 쓸모가 없다면 학교는 죽은 것이다.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던 교육을 해보고 싶었다. 아이들 머릿속에 지식을 어떻게 저장시켜 줄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머릿속을 어떻게 어지럽히고,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것을 어떻게 끄집어낼까 고민하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선행학습이 필요 없는 수업이 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 시간마다 학습지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오늘 수업 시간에 어떤 내용을 수업할지 전혀 모른다. 학습지는 교과서 내용을 확인하고, 자기 생각을 덧붙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이들 삶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아이들은 학습지에 제공된 물음에 참고서를, 선생님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고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보태어야 한다. 자기 삶도 드러내어야 한다. 내 수업 목표는 아이들의 머리를 괴롭히는 데 두었다.

어쩌면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기에 이런 수업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아니다.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수업을 하면 오히려 수능에, 대학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퇴임 전에도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수업을 종종 시도 했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이를 증명하는 과정이 그리 쉽지가 않았다. 현실과 부화뇌동하며 교직 생활을 끝냈다.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수업을 하면 아이들에게 관점의 다양성, 올바른 판단력을 길러 줄 수 있다. 또한 남과 달라 주눅이 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을 길러 줄 수 있다.

수업 시간에 나는 여유롭지만, 아이들은 늘 바쁘다. 학습지 물음에 답하기 위해 아이들은 머리를 괴롭혀만 한다. 이를 보는 것이 꽤 즐겁다. 아이들의 학습지를 확인하고, 그 가운데 몇 편을 골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그 글은 학교누리마당 '교육활동' 란에 올린다.

이렇게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이다. 다른 학생의 생각을 통해 생각 넓히기를 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관점을 바라보는 다양성과 배려를 기를 수 있다. 또한 글 쓴 아이에게는 자기 글에 대한 뿌듯함을 잠시나마 맛볼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이로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왜 동물원이 문제일까'라는 글이 있다. 글쓴이는 동물원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를 먼저 제시하고, 동물원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반박하면서 설득력 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글이다.

"동물원이 멸종 위기종을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동물원에서 보호한다던 멸종 위기종이 오히려 동물원에서 폐사하고 있다.

멸종 위기종을 동물원에서 번식시켜 야생으로 보내면 생물 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원이라는 인공적인 환경에서 관리된 동물은 야생으로 돌아가더라도 적응하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글쓴이의 주장에 공감하는가? 글쓴이가 제시한 근거는 타당한가? 이렇게 말하는 아이도 있다.

"동물원 폐지는 공감하지만, 이유는 공감하기 힘들다. 동물원에서 폐사를 줄이고, 적응할 수 있는 훈련을 충분히 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동물원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만약 글쓴이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동물원에서 멸종 위기종의 폐사와 부적응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여야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듣기 영역이 있다. 이 단원을 학습하고 난 뒤 '나의 말을 누군가 잘못 이해하여 또는 내가 누군가의 말을 잘못 이해해 일어난 경험'을 말하도록 하였다.

"분식점에서 짜장면을 시켰는데 사장님이 잘못 들어서 짬뽕을 줬다. 근데 나는 소심해서 사장님한테 음식이 잘못 나왔다고 말을 못 하고 그냥 먹었다. 근데 맛은 괜찮았다."

이 학생의 글은 수업에 시간에 아직 공유된 적이 없었다. 이 글을 칠판에 띄우고 설명했다.

"이 친구는 스스로 소심하다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배려라는 말로 들린다. 분명히 분식점 사장님이 잘못한 것이다. 그런데 짬뽕을 보니 맛있게 보였다. 그러면 굳이 짜장면으로 바꿔 달라는 것보다는 내가 먹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배려라고 생각한다."

글 쓴 학생을 슬쩍 보았다. 그 학생은 내 말이 맞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먹어보니 맛도 있다. 그러면 되지 않나? 굳이 상대에게 잘못을 따져 묻는 사람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모른척하고 덮어줄 수 있는 넉넉한 인품을 지닌 이런 사람을 내 곁에 두고 싶다."

설명을 마치고 나니 아이들은 글 쓴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다. 누가 다 봐도 괜찮은 글은 이름을 밝히지만, 글쓴이에게 혹시 조금이라도 피해가 될 수 있다면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그것은 비밀인데, 잠깐, 글쓴이에게 물어볼까 하면서 그 아이에게 살짝 시선을 주었다. 그 아이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괜찮다는 미소를 보낸다. 이름을 밝혔다.

그리고 얼마 후 놀랐다. 이 아이는 다문화 학생이라 국어 수업이 조금 어려운 학생이다. 그런데 이번 중간고사에서 자기 나름대로 애쓴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너무 대견하다. 중간고사 점수를 확인하면서 마음껏 칭찬하였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기다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자기 삶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고, 아이들의 다양한 사고력과 관점을 끌어내는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설 때는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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