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실패'가 남긴 교훈... 북핵 위험 줄일 모든 통로 열어둬야
[김영근 기자]
지금 뉴욕에서 열리는 회의는 바로 한반도 문제이다
2026년 4월 27일부터 5월 22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11차 핵확산금지조약 평가회의가 열리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 곧 NPT는 1970년 발효됐고 1995년 무기한 연장됐다. 유엔은 이 조약을 세계 핵확산 방지 체제의 초석이자 핵군축을 추구하는 핵심 기반으로 설명한다.
겉으로 보면 멀리 뉴욕에서 열리는 외교 회의다. 그러나 이 회의는 한국의 안보와 직접 연결된다. 북한은 NPT 체제의 혜택을 받았지만 이후 탈퇴를 선언하고 핵무기 개발을 공개적으로 이어간 유일한 사례로 지목된다. 한국 정부도 이번 평가회의 제출 문서에서 '북한 핵 문제를 국제사회가 어떻게 다루느냐가 NPT 체제의 신뢰성과 완전성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이 문장이 중요하다. 북핵은 단지 남북 군사 대치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핵을 사실상 용인하는 분위기가 굳어지면, NPT 체제 전체가 흔들린다. NPT가 흔들리면 한국도 흔들린다. 그때 한국 사회 내부의 자체 핵무장론은 더 큰 정치적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2025년 조사에서 한국인의 독자 핵무장 지지율이 76.2%로, 2010년 조사 시작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북한의 핵 능력은 이미 추정의 영역을 넘어 실질적 위협이 됐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최근 북한 핵 프로그램을 "수십 기" 수준으로 추정했고,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2025년 기준 북한이 약 50기의 핵탄두를 조립했으며 추가 생산이 가능한 핵물질도 보유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쉬운 대답처럼 들린다. 그러나 쉬운 대답이 안전한 대답은 아니다. 한국이 NPT 질서 밖으로 나가는 순간, 북한에 NPT 복귀와 비핵화를 요구할 외교적 정당성도 약해진다. 안전사회는 힘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규범, 신뢰, 검증, 협력의 제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일본의 경고, 그리고 일본 자신의 역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NPT 평가회의 개막을 계기로 "핵확산 방지 체제를 무너뜨리지 말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제목만 보아도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핵무기를 둘러싼 국제 규범이 무너지면 세계 질서는 더 불안정해진다.
이 경고는 한국에 타당하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 자신에게도 되돌아가는 질문이다. 일본은 북핵 문제를 말할 때 늘 납치자 문제를 함께 제기해 왔다. 납치자 문제는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북한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 당시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 17명의 일본인을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로 공식 확인했고, 이 가운데 5명만 일본으로 돌아왔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납치자 문제는 인권 문제이며, 주권 문제이며, 가족의 시간과 생명이 걸린 문제다. 일본 사회가 이 문제를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절박한 의제가 외교의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 모든 문을 잠그는 자물쇠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일본 외무성은 2002년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방침에서 납치자 문제를 "최고 우선순위"로 다루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핵과 미사일 문제도 일본과 국제사회가 중대한 우려를 갖는 안보 의제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균형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의 실제 접근은 점차 납치자 문제 해결을 대북 지원과 국교정상화의 선결조건으로 삼는 방향으로 굳어졌다.
미 의회조사국은 2008년 보고서에서 6자회담 당시 일본의 참여가 납치자 문제 진전에 지배됐고, 미국이 북한 핵 프로그램 해체를 대가로 에너지·경제 지원을 추진하는 동안 일본은 납치 문제에서 만족할 만한 진전 없이는 지원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일본은 다자회담 안에서 상대적으로 고립됐다는 평가도 함께 나왔다.
일본 외무장관도 2008년 기자회견에서 납치자 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에너지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진전"으로 볼 것인지는 명확히 정의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외교에서 조건은 필요하다. 그러나 조건이 불명확하고, 모든 의제를 붙잡는 문턱이 되면 협상은 움직이기 어렵다.
실패학의 핵심은 "누가 옳았나"보다 "무엇을 잃었나"다
일본이 틀렸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납치자 문제를 외면하라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대화 채널이 살아 있어야 했다. 일본국제문제연구소의 구라타 히데야는 이미 2008년 논평에서 일본 사회가 납치자 문제에 분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와중에 북한 핵무기라는 더 큰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그는 납치 문제와 핵 문제를 모두 다뤄야 하지만 반드시 같은 외교 채널에서 동시에 해결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실패학의 출발점이다. 실패학은 누구를 비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어떤 선택이 어떤 가능성을 닫았는지 묻는다. 일본은 납치자 문제라는 정당한 의제를 북핵 교섭의 사실상 전제조건으로 만들면서, 북한 핵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다자 외교의 폭을 좁혔다. 그 결과 일본은 피해자 가족의 절박함을 등에 업고 강경한 명분을 유지했지만, 북핵 리스크 관리에서는 충분한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북핵이 일본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말은 아니다. 북한의 핵 개발 책임은 북한 정권에 있다. 6자회담의 좌절에는 미국의 정책 변화, 중국과 러시아의 계산, 남북관계의 부침, 검증 방식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국내 정치적으로 절실한 의제가 국제 안보 리스크 관리 전체를 압도할 때, 국가는 외교적 손발을 스스로 묶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일본의 실패학은 한국에도 가깝다. 한국 역시 북핵 문제를 국내 정치의 언어로만 소비할 위험이 있다. 강경하냐 온건하냐, 제재냐 대화냐, 동맹이냐 자주냐의 구호 속에서 정작 중요한 질문이 사라진다. 북한 핵 위험을 실제로 낮출 수 있는 제도는 무엇인가. 군사적 억제와 외교적 대화는 어떻게 병행할 것인가. NPT 체제 안에서 한국은 어떤 신뢰를 축적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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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이 단거리 지대지 탄도미사일 집속탄두 위력을 평가하는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4월 20일 "미사일총국은 19일 개량된 지상 대 지상 전술탄도미사일 '화성포-11라'형 전투부(탄두) 위력 평가를 위한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고 보도했다.2026.4.20 |
|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그럼에도 NPT는 여전히 붙잡아야 할 제도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체제가 무너지면 북한 핵 문제를 다룰 최소한의 공통 언어도 약해진다. 지금 국제사회가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핵을 가진 현실을 인정하자"가 아니다. 핵무기와 관련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NPT와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조치 체제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이번 NPT 제출 문서도 바로 이 점을 명시했다.
만약 국제사회가 북한 핵 보유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의 핵무장론은 더 커질 것이다. 일본과 대만의 안보 논의도 달라질 수 있다. 중국은 이를 빌미로 군비 확장을 정당화할 수 있고, 러시아는 동북아 전략을 더 거칠게 운용할 수 있다. 한반도의 위기는 동북아 핵 연쇄의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북핵 해법은 NPT의 유지와 직결된다. 이것은 이상주의가 아니다. 매우 현실적인 미래리스크 관리다. 핵확산을 막는 규범이 무너지면, 위험은 더 빨리 확산되고 비용은 더 커진다. 안전혁명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필요하다. 사고가 난 뒤 수습하는 방식이 아니라, 위험이 커지기 전에 제도와 협력의 통로를 만들어 두는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의 선택은 굴로벌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 외교가 아니라 선제적인 병행 외교다
한국이 일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북핵 문제를 하나의 조건으로만 가두지 말아야 한다. 북한 인권, 국군포로, 납북자, 이산가족, 사이버 위협, 미사일, 핵물질 생산, 군사적 충돌 방지, 제재 이행, 평화체제 논의는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고 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병행 외교다. 억제는 억제대로 강화해야 한다. 한미 확장억제와 한미일 안보 협력은 북한의 오판을 막는 현실적 장치다. 동시에 대화의 문도 닫아서는 안 된다. 군사통신선, 우발 충돌 방지, 핵·미사일 동결 논의, 검증 가능한 감축 단계, 인도적 교류, 국제원자력기구 복귀 문제를 각각의 채널에서 다뤄야 한다. 제재와 대화는 서로를 지우는 선택지가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두 개의 수단이다.
안전사회는 "강한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위험을 줄이는 제도, 검증 가능한 약속, 반복되는 대화, 실패했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도전환이다. 북핵을 둘러싼 안전혁명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외교의 폭을 넓히고 위험을 쪼개어 관리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일본은 납치자 문제를 버리지 않았지만, 그 문제를 전제조건으로 굳히는 과정에서 북핵 리스크 관리의 공간을 잃었다. 한국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 핵을 용인하지 않되, 핵 위험을 줄이는 모든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자체 핵무장론의 유혹에 끌려가기보다, NPT 체제 안에서 한국의 신뢰와 발언권을 키워야 한다.
규범이 무너지면 안전사회도 없다. NPT가 무너지면 북핵 문제는 더 이상 예외적 위반이 아니라, 새로운 핵질서의 한 사례로 취급될 수 있다. 그 순간 한국의 안보는 더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불안해진다.
북핵 문제 해결은 국제 핵확산 방지 체제의 유지와 직결된다. 일본의 실패학이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것이다. 정당한 의제도 외교 전체를 가두는 전제조건이 되면 더 큰 위험을 키울 수 있다. 한국은 문을 걸어 잠그는 외교가 아니라, 위험을 낮추는 외교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미래리스크 관리를 위한 안전혁명이고, 한반도가 안전사회로 가는 최소한의 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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