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공지능의 두 번째 대결이 임박했다

채희태 2026. 5. 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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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페이커가 말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다움에 대하여

[채희태 기자]

▲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이세돌과 페이커, 이상혁 손석희가 이세돌과 페이커와 인공지능과의 대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MBC
작년 말, 뒤늦게 그록(Grok)으로 인공지능 사업에 뛰어든 일론 머스크가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 그록5로 인간 롤 게임 최강자 페이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2026년 Grok5가 LoL 최고의 인간팀을 이길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다.

e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 페이커(이상혁)는 일론 머스크의 도전에 다음과 같이 쿨하게 응수했다.
We are ready, are you?

알파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인공지능과의 이번 대결은 2016년 3월 9일,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 이후 두 번째로 성사되는 대결이라 벌써부터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알파고와 대결하기 전 이세돌 9단을 인터뷰했던 손석희는 지난 4월 8일 방영된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인공지능에 유일하게 승리했던 이세돌과 인공지능과의 대결을 앞두고 있는 페이커를 나란히 불러 세웠다.

손석희와 더불어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 보면 인간이 가진 편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지 느낄 수 있게 된다. 지금도 게임에 빠져 사는 자식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는 어른들은 사실 경험이라는 가장 강력한 편견으로 무장한 채, 불확실한 미래에 감을 놓을지 배를 놓을지 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필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맥을 잘 짚는 인터뷰어 손석희와 바둑과 롤 게임 최강자가 나눈 대화를 통해 느꼈던 점 세 가지와 마지막 소감을 소개할까 한다.

첫째, 바둑과 게임, 인공지능은 어떤 걸 더 어려워할까?

바둑은 그 경우의 수가 10의 172제곱으로, 우주의 원자 수인 10의 80제곱을 압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둑을 반상 위의 우주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2016년 이세돌의 패배는 더 충격적이었다. 인공지능과의 대결을 앞두고 "게임은 바둑과 다르다"라며 자신감을 뿜어내는 페이커에게 손석희는 "이세돌도 알파고와의 대결을 앞두고 다르지 않았다"라며 바둑팬들이 들으면 섭섭해 할 이야기라고 우려의 말을 건넸다.

그러자 이세돌은 바둑은 인간에겐 그 경우의 수가 무한대지만 인공지능엔 계산 가능한 영역이라며, 오히려 게임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이 더 크다고 페이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세돌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전문성인 바둑 안에서만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단순히 종교처럼 바둑을 떠받들고 있는 팬이 아닌, 인간 최고수의 반열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는 이세돌이 그렇다는데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둘째, 공부와 연구의 차이는?

이세돌은 자신이 알파고에 패한 이후 많은 바둑 기사들이 인공지능을 통해 바둑을 공부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프로가 되는 순간부터 바둑을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연구한다고 했죠. 그런데 이제는 (바둑은) 공부하는 겁니다. 보통 예술을 이야기할 때, 정답이 있는 것을 예술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원래 바둑은 스포츠가 아니라 문화나 예술 쪽이었죠. 저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던 사실상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공부와 연구의 차이는 뭘까? 이세돌이 말했듯이 공부가 정해진 지식에 다가가는 것이라면, 연구는 정해지지 않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세돌의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 이유는, 인공지능이 비단 바둑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서 유사하게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잡아먹힐까 봐 두렵다면,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닌 '연구'를 해야 하는데, 이 시대의 질서를 움직이는 인간들은 스스로 발등을 찍어가며 인간을 경쟁적으로 공부만 하도록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프랑스는 이미 2006년 당시 문화통신부 장관이었던 르노 도네디외 드 바브르(Renaud Donnedieu de Vabres)가 국민의회에서 비디오게임을 공식적인 예술 형식으로 인정했다.* 정답이 없는 예술의 영역에 게임을 포함한 것이다. 바둑이 예술이었듯, 게임도 예술이다. 그렇다면 정답 없는 연구의 자리는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 외에도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결 후 있었던 다양한 일화를 털어놓았는데, 의미심장하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아마 이세돌은 바둑을 통해 우주를 보았던 것 같다.

셋째, 만약 인공지능에 진다면?

앞에서 이세돌을 말했으니, 이번엔 페이커, 이상혁의 말을 소개해 보겠다.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에 패한 후 은퇴했는데, 만약 지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손석희의 짓궂은 질문에 페이커는 이렇게 답했다.

사실 기계가 인간을 이기는 게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리고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고도 생각을 해서 만약 진다면 저는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쿨하다. 필자는 이상혁의 대답에서 드라마 〈라켓소년단〉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승리한 뒤 "너희들도 일본이 싫지?"라고 묻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이렇게 답한다.
샘들, 그게요. 저희는 일본 애들이 싫진 않아요. 저희 일본 애들이랑 되게 친하거든요. 연락도 자주 하고, 국제 대회 가면 같이 놀러도 다니고요. 말씀하신 대로 중요한 국가 대항전이고, 또 스포츠잖아요. 민턴은 그냥 민턴이니까... (라켓 소년단 9화 중에서)

경기는 경기일 뿐이다. 페이커도 같은 맥락의 대답을 했다. 우리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혹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인공지능이 빼앗아 갈 것이라는 공포 때문 아닐까?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선 조만간 기계가 인간 일자리를 대체할 거라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아니, 기계가 인간이 해 왔던 수고로운 노동을 대신해 주겠다는 게 그렇게 걱정할 일일까? 다보스 포럼은 세상을 오로지 경제라는 렌즈로 보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필자가 졸저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에서도 주장했듯, 더 큰 문제는 기계가 만든 생산물을 누군가 독차지 하면서 발생할 양극화다. 코로나 시기 리프킨이 했던 말처럼 세계 500대 글로벌 기업이 전 세계 35억 명의 노동자 중 약 0.15%인 550만 명만을 고용하고도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면,** 인류의 목표는 더 이상 생산량의 증대가 아닌 그 어마어마한 생산물들을 어떻게 분배할지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마치며 — 인공지능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

바둑과 게임을 통해 우주에 접속했던 이세돌과 페이커의 인터뷰는 인공지능 시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이세돌이 먼저 말했다.

사실 예술적인 관점으로 들어가 보면, 승패라는 것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 딸려오는 부산물 같은 겁니다. (승패 자체는) 비중이 크지 않아요. 어찌됐든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 결국은 승패에서도 좋은 승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이세돌의 이 통찰에 페이커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감탄사를 뱉어냈다.
아! 저는 물론 잃는 것도 분명히 있을 거고, 완전히 100% 사람이 만든 게임 경기가 아니게 될 수는 있지만, 근데 일부분이 인공지능을 통해 학습된 경기일지라도 결국엔 사람과 사람이 하는 거기 때문에 예술성은 여전히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따라하려고 해도 사람이 플레이하는 순간 사람의 플레이가 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손석희는 두 사람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것은 도구다. 비록 인공지능이 승리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다시 인간이 가져와서 우리의 발전에 쓸 수 있는... 이게 사실 선순환인데, 사실은 그렇지 못할 거라는 공포심이 누구에게나 있거든요. 그런데 상혁 선수의 말에 의해서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해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분야의 정점에 올라가 본 사람은 철학적 깊이가 다르다. 이세돌이 바둑으로 우주를 보았고, 페이커가 게임으로 인공지능의 본질을 말했듯이. 인공지능을 두려워하기 전에, 우리는 지금 자신의 바둑판 위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 Wilmer, James. "French Minister Wants Games Classified as Art." Bit-tech. November 9, 2006. https://bit-tech.net/news/gaming/French_Minister_wants_games_classified_as_art/1/.

** 안희경(2020.6.2).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 ②제러미 리프킨 "코로나는 기후변화가 낳은 팬데믹…함께 해결 안 하면 같이 무너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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