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까지 물리친 할머니, 은퇴 후 10년째 여행 중이랍니다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기자말>
[이안수 기자]
최근 프랑스에서 멕시코 오악사카로 온 한 여성, 샹탈(Chantal)을 대면하는 즐거움으로 충만하다. <빨강머리 앤>의 앤 셜리처럼 낙천적이며 밝은 에너지로 가득한 이다. 이 여성은 75세의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홀로 각 나라를 여행하는 자유의 화신이다. 은퇴 직후부터 1년에 6개월을 외국에서 보내는 이런 생활이 10년째라고 했다.
브런치를 위해 호스텔의 4층으로 올라갔다가 다이닝 룸에서 샹탈을 만났다. 식사를 마친 그녀는 태블릿으로 그간의 일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샹탈! 6년 뒤 한국에서 꼭 뵈어요!"
한국을 아직 방문해 보지 않았다는 지난 밤의 대화를 떠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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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75세로 시니어로 접어들었지만 10년째 홀로 여행 중인 샹탈(Chantal). 그녀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배운다. |
| ⓒ 이안수 |
샹탈은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말했다.
"그럼요. 한국은 진심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하지만 '꼭'이라고 약속은 할 수 없어요."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일 죽을 수도 있잖아요. 우리의 내일을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아시아에 있을 때, 당신을 생각할 거예요."
"맞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우리가 언제까지 살지 결정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고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그 선택의 범위는 무궁하죠. 우주는 항상 도울 준비가 돼 있어요. 그 선택이 이루어지도록 도움의 방식을 정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죠. 모든 것은 '마음가짐'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우주는 언제나 나의 편이다. 하지만 그 힘을 쓸 수 있느냐는 나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샹탈은 그 마음가짐의 주체에 대해서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소유하고 있어요.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에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이 삶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삶의 주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샹탈은 예리하게 꿰뚫고 있다.
"당신은 어찌 이렇게 현명할 수 있나요?"
혼잣말 같은 나의 탄성에 샹탈이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나는 매일 배우고 있어요. 은퇴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울 시간이 생겼어요."
나의 찬탄에 샹탈은 겸손해 했지만 살아낸 시간에서 우러난 그녀의 앎은 나를 다시 그녀 앞으로 당겨 앉게 만들 것 같다.
샹탈(Chantal) 할머니와 함께 대화하다 보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잊곤 한다.
"이번 여행에서 한 청년의 간곡한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었어요. (웃음)"
에콰도르에서 멕시코시티로 갈 때 파나마시티에서 경유하게 되었을 때였다고 했다.
"파나마시티에서 코파 항공(Copa Airlines)에 올랐는데 내 옆 좌석에는 젊은 여성이 앉아있더군요. 잠시 뒤 한 청년이 나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좌석을 바꿔줄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옆 좌석의 여성이 자신의 여자친구인데 혼자만 가기로 했던 여행에 갑자기 여자친구가 합류하게 되어 뒤늦게 추가 티켓 구매를 하는 바람에 함께 앉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정을 얘기해 주었어요. 난 홀로 여행하므로 머리 위 수납함의 내 캐리어만 옮겨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죠.
그 청년이 거듭 고마워하며 기꺼이 내 캐리어를 내려 들고 앞장서서 갔습니다.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비즈니스 클래스였어요. 두 사람이 함께 앉아도 될 만큼 넓었어요. 기내식 메뉴판을 주어서 비프를 골랐더니 다시 와인, 위스키, 보드카 등 마실 술을 고르라고 하더군요. 잔만 비우면 또다시 채워주겠다고 하고 사양하면 다시 음료를 고르래요. 청년 부탁을 들어주고 비행기에서 따뜻한 식사를 하면서 목적지까지 가기는 처음이었어요."
그녀의 이야기에 너무 빠지는 듯싶으면 나는 다이닝룸에 온 목적을 상기시킨다.
"음식이 준비된 것 같아요. 식기 전에 드셔야 하니까요."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그녀의 대답은 예측을 빗나가는 경우가 잦다. 그녀와의 대화에서 얻은 '마음가짐'의 중요성에 대해 쓴 글을 번역해서 그녀에게 보내주면서 요청했다.
"이 글에 대해 제가 당신의 뜻을 잘못 이해했거나 당신에 대해 오해될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몇 시간 뒤 그녀가 내게 왔다.
"잘 읽었습니다. 두 가지가 사실과 달라요. 하나는 나이에요. 74세가 아니라 75세에요."
그것은 내 기억의 오류라 즉시 바로잡을 수 있지만 나이가 표기되는 것에 대해 불편하지 않을지 물었다.
"괜찮습니다. 제 나이를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떤 이는 원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제 독일인 친구는 늘 세련되게 차려 입고 화장도 잘해요. 만약 누가 나이를 물으면 항상 39살이라고 말했어요. 그 나이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은 훨씬 나이가 많아져서 39살이라고는 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낯선 사람에게는 절대 진짜 나이를 말하지 않아요."
"(웃음) 그래서 저도 그 점에 대해 본인의 의사를 확인한답니다. 당신처럼 자신의 나이를 더 올려 사실대로 알려 달라는 분은 드문 경우입니다. 속마음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하나의 오류는 무엇인가요?"
"저를 '자유와 용기의 화신'이라고 언급하셨는데 '자유'는 맞아요. 하지만 '용기'는 아니에요."
75세의 나이에 홀로 10년간 세계를 여행하고 계신 것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것이 '용기'가 아닌 이유가 궁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용감하다고 말해요. 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여겨요. 왜냐하면 저는 두려움이 없거든요."
두려움이 없으니 별도로 용기를 낼 일도 없다는 것이다.
해변에서 만난 강도를 물리치다
그녀는 한 예로 스페인 안달루시아 해변 휴양지에서 만났던 강도 얘기를 했다.
"말라가(Málaga) 토레 델 마르(Torre del Mar)의 소위 '태양의 해안'를 걷곤 했죠. 그날은 점심 무렵 차로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캠프장과 건물 사이, 축구장 뒤편의 길을 지나고 있었어요. 그곳은 아주 한적했는데 갑자기 한 젊은 남자가 제 앞에 나타났어요. 그는 불쑥 칼을 꺼내 들고 돈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그때 제 목걸이 가방에는 돈 뿐 아니라 여권과 문서들이 다 들어 있었어요. 여행자로서의 제 삶 전체가 들어 있었던 셈이죠. 그걸 빼앗기고 싶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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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칼로를 함께 걷다가 독립적인 여성으로 노년을 아름답게 통과하자는 서로의 다짐을 담아 치자꽃다발 하나씩을 사서 서로를 격려한 샹탈 어르신과 아내. 두려움이 없으면 용기를 증명할 필요도 없다고 여기는 샹탈은 오늘도 여행 중이다. |
| ⓒ 이안수 |
샹탈도 직접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함께 조리도 한다. 나는 오늘 도미찜을 먹었다. 그동안은 주로 구이로 먹었었다. 부드럽고 촉촉하게 익힌 찜은 샹탈이 좋아하는 조리법을 전수해 준 덕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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