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차 촬영감독 울컥하게 한 그 장면 "염혜란의 눈물, 훅 빨려 들어갔다"

이선필 2026. 5. 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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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 이 사람 - 영화 '내 이름은'②] 김형구 감독이 B캠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이유

영화의 모든 장면은 협업의 결과물입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감독의 얘기를 듣고, 그 장면 뒤 숨은 주인공을 만나봅니다. <기자말>

[이선필 기자]

* '그 장면, 이 사람 - 영화 '내 이름은'①'에서 이어집니다.
 영화 <내 이름은>의 촬영현장. 김형구 촬영감독의 모습.
ⓒ 랫츠필름
제주 4·3을 다룬 영화 <내 이름은>의 정지영 감독과 김형구 촬영감독의 인연은 남다르다. 영화 <부러진 화살>(2011)로 두 사람이 첫 호흡을 맞췄으니 햇수로 15년째다. '2007년 법정 석궁 사건'을 소재로 한 <부러진 화살>은 <까>(1998) 이후 이렇다 할 작품활동이 없던 정 감독의 영화계 복귀작이었다. 당시 김 촬영감독은 김성수 감독의 <비트>(1997),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등을 통해 한창 이름값을 높이고 있었다.

순제작비 5억 원의 <부러진 화살>은 개봉 5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최종 관객은 346만 명. 성공적인 복귀였다. 정 감독은 이후 <남영동1985>(2012), <블랙머니>(2019) 등으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정 감독은 "김 감독이 학교 강의를 하는 바람에 전작에선 시간이 맞지 않았다"며 "14년 만에 겨우 작품을 같이 했다. 이 영화의 핵심 스태프라면 의심의 여지 없이 그 분"이라고 앞서 인터뷰 과정에서 귀띔했었다.

4월 23일, 서울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김 촬영감독을 만났다. "<내 이름은>이 초반에 투자가 되지 않아 접나 싶었는데, 정 감독의 의지가 아주 강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운을 뗐다. 처음 카메라를 잡은 것이 1993년 영화 <우연한 여행>부터였다고 하니, 그는 올해로 33년 차 영화 촬영감독이다.

[관객의 장면] 염혜란 배우의 보리밭 춤... 참회의 진혼제
 영화 <내 이름은>의 한 장면,
ⓒ 렛츠필름
<내 이름은>은 개봉한지 19일이 지났다. 5월 3일 현재 약 19만 명이 극장을 찾았다. 제주 4·3의 비극을 단순 전시하지 않는다는 평과 배우 연기에 감탄했다는 평이 다수였다. 봄이면 공황장애 증상을 겪는 정순(염혜란)이 아들 영옥(신우빈)과 의사(김규리)의 도움으로 일부 기억을 찾게 되며 자신과 아들 이름에 얽힌 비밀을 깨닫는 과정이 영화에서 극적으로 묘사됐다.

특히 영화의 처음과 후반부에 나오는 염혜란의 보리밭 춤을 언급하는 후기가 많았다. 자기 때문에 사망한 옛 친구에 대한 죄책감, 그날 총칼에 억울하게 쓰러진 이들의 원혼을 실은 듯 보리밭에 부는 바람을 타고 정순이 몸을 흔드는 장면이다.

"마지막 염혜란님 춤이 너무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진혼곡 같은 느낌..." (john***, CGV 실 관람객), "보리밭에서의 살풀이춤이 주는 용서와 화해가 감동적이었다"(지혜로운***, CGV 실 관람객), "청보리밭의 아픔을 춤으로 날려 보내고, 아들 세대의 폭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하며, 아픈 제주는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났다" (Ilyk***, 네이버 실 관람객) 등이 눈에 띈다.

영화의 첫 촬영일은 2025년 4월 3일. 김형구 촬영감독은 "초반에 영옥의 학교 장면을 경기도 양평에서 몰아 찍고, 중반 때부터 제주에 갔는데 염혜란씨가 그 장면에서 아주 고생했다"고 기억했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으로 추가 촬영이 미지수였기에, 날씨와 빛이 적당할 때마다 배우를 데리고 가서 틈틈이 찍었다"며 김 촬영감독은 "염 배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때 울컥하며 훅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보통은 A카메라를 촬영감독이 잡고, B카메라를 촬영기사에게 주는데 이번만큼은 제가 B캠에 망원렌즈를 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겠다고 했다. A캠으론 넓게 현장을 찍어두면 되니까. 정 감독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가 잘 아는 만큼 그때그때 줌을 당겨 촬영하기로 했다. 날씨와 햇빛이 변수였지. 서너 시간 준비해서 단 10초를 찍더라도 집중이 중요했다. 약속된 춤이 아니었거든. 배우가 어떤 표정, 몸짓을 보일지 모르니 그때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염 배우가 출 때 컷마다 날씨랑 햇빛이 조금씩 다르다. 여러 번 찍은 걸 편집해 붙여서 그렇다. 소위 톤이 튀는 건데, 일관성이 중요한 장면이 아니라 넘어갈 수 있었다. 일종의 몽타주(짧은 장면들을 여럿 붙여 새로운 의미나 시간의 흐름을 보이는 기법)로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정순의 처절한 감정이 담기냐였다. 그 춤을 카메라로 보는데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한, 뭐랄까 일종의 진혼제처럼 느껴졌다."
 영화 <내 이름은>의 촬영현장.
ⓒ 랫츠필름
관객 사이에서 또 하나 언급되는 장면이 바로 청보리밭 학살 장면이다. 우익 청년 집단의 소탕 작전을 피하려던 어린 정순이 부모와 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이다. 한 블로거는 이를 두고 "석양으로 붉게 타는 듯한 보리밭과 무참히 학살당한 사람들의 피얼룩이 오버랩되는 장면은 뜨겁게 아프면서도 가슴 시리고, 동시에 부서지는 노을빛처럼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다"(네이버 블로그 '괴테의 누님')고 표현했다.

"영화가 시간 축이 두 개지 않나. 잘 보시면 과거가 희미한 정순의 이야기에선 색감이 흐릿했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진해지고, 학교 폭력에 얽히는 영옥 부분은 선명한 색감에서 점차 흐려진다. 그 보리밭 장면 주제가 바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처참한 학살이 벌어진다'였거든.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순간이기에 불명확했던 색이 확 드러나도록 한 것이다. 정 감독님과도 사전에 그런 얘길 나눴다.

제가 이야기에 따라 색감을 많이 만지는 스타일이다. <괴물> 땐 정말 쨍한 색감에 사람들이 평화롭게 있다가 사건이 시작되잖나. 영화 마지막에 송강호 배우가 죽은 딸을 안고 가는 장면을 보면 색감이 많이 빠져 있다. <비트> 땐 푸른색과 호박색을 계속 대비시켰다. <내 이름은>도 두 시간대에 따라 색감을 만진 것이다. 카메라도 직립이 아닌 좀 기울이거나 떨면서 찍다가 서서히 바로 세우는 식으로 장면마다 점진적으로 변화를 줬다."

[김형구 촬영감독의 장면] 우익 청년 집단의 마을 수색... 영화적 힘을 더하다
 영화 <내 이름은>의 김형구 촬영감독.
ⓒ 이선필
보리밭 학살 직전 등장하는 우익 청년 집단의 수색 장면은 영화에서 어쩌면 지나치기 쉬울지 모른다. 김 촬영감독은 이 장면을 콕 짚었다. 서북청년단들이 북과 내통한 자를 탐문하며 마을 사람들을 한곳에 집결시키는 장면은 제주 표선면에 위치한 민속촌을 빌려 촬영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그는 직접 B캠을 들었다.

"1999년에 박광수 감독과 제주에서 <이재수의 난>이란 영화를 찍었다. 밤 촬영이었는데 아무리 조명을 줘도 시커멓게 나오더라. 제주의 돌도 까맣고, 집도 까맣고, 겨울의 침엽수림도 까맣게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번에 보니 마찬가지더라. 다행히 낮 촬영이었는데 바로 다음 촬영이 아름다운 보리밭 장면이라 단순하게 연결할 순 없겠더라. 그래서 오히려 자연광을 그대로 썼다. 제주도민들이 공포에 떠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했다.

이 작품에서 극적 장면이 많지 않잖나. 특히 마을과 청보리밭 장면은 삼일 만에 찍어야 했기에 긴장을 많이 했다. 예산이 적다고 소규모처럼 찍으면 영화적 힘이 떨어질 것 같았다. 이 부분을 정 감독님과 사전에 얘길 했다. 어차피 예산 한계가 있으니 제가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숨은 채 여러 컷을 찍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래도 어렵게 생각했던 그 촬영을 완수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좀 있었다."

이 대목에서 김 촬영감독은 "결국 답은 시나리오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지영 감독이 2년여간 <내 이름은>의 집필과 각색 작업을 거친 과정을 전하며 "현장 여건이 어려워도 결국 여러 번 시나리오를 파다 보면 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과거 봉준호 감독은 <씨네21> 인터뷰에서 그를 두고 "화려한 테크닉에 앞서 드라마 흐름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신다. 인물에 대해 카메라가 어떤 태도와 자세를 취하는가에 있어 그의 감각은 압도적"이라 말한 바 있다.

"감독이나 작가가 시나리오를 최소 1년은 잡고 있잖나. 우린 받으면 쓱 읽고 말겠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정보가 담겨 있다. 그래서 곱씹다 보면 감독이 그 신을 어떻게 찍고 싶은지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내 이름은>도 뒷주머니에 꽂고 수십 번 읽었다. 오늘 찍을 장면이 있다면, 아침 일찍부터 읽고 또 읽는다."

김형구 촬영감독은 그간 강단과 현장에서 여러 후배 영화인들을 배출해 왔다. <아수라> <파묘> 등으로 알려진 이모개 촬영감독도 그의 제자다. 1993년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유학 후 귀국한 그는 1995년 <닥터봉>으로 상업영화계에 입문했다.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조수로 일한 뒤 불과 세 작품 만에 촬영감독이 된, 당시로선 이례적인 경우였다.

그는 여전히 "'시네마틱'이라는 말 앞에서 고민한다"고 했다.

"아무리 상업성이 중요해도 영화는 예술과 분명 접점이 있다. 우리는 작가라는 얘기다. 영화산업이 어렵지만 후배들도 이런 데서 위안을 얻었으면 한다. 저도 이제 다 놓고 떠나야 하나 싶다가도 시네마틱에 대한 갈망 또한 있다. 딜레마다. 뛰어난 후배들은 주류 시장에서 하면 되고, 저는 저를 필요로 하는 독립영화인, 신인 감독과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웃음)."
 영화 <내 이름은>의 김형구 촬영감독.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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