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차 촬영감독 울컥하게 한 그 장면 "염혜란의 눈물, 훅 빨려 들어갔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협업의 결과물입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감독의 얘기를 듣고, 그 장면 뒤 숨은 주인공을 만나봅니다. <기자말>
[이선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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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내 이름은>의 촬영현장. 김형구 촬영감독의 모습. |
| ⓒ 랫츠필름 |
순제작비 5억 원의 <부러진 화살>은 개봉 5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최종 관객은 346만 명. 성공적인 복귀였다. 정 감독은 이후 <남영동1985>(2012), <블랙머니>(2019) 등으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정 감독은 "김 감독이 학교 강의를 하는 바람에 전작에선 시간이 맞지 않았다"며 "14년 만에 겨우 작품을 같이 했다. 이 영화의 핵심 스태프라면 의심의 여지 없이 그 분"이라고 앞서 인터뷰 과정에서 귀띔했었다.
4월 23일, 서울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김 촬영감독을 만났다. "<내 이름은>이 초반에 투자가 되지 않아 접나 싶었는데, 정 감독의 의지가 아주 강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운을 뗐다. 처음 카메라를 잡은 것이 1993년 영화 <우연한 여행>부터였다고 하니, 그는 올해로 33년 차 영화 촬영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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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내 이름은>의 한 장면, |
| ⓒ 렛츠필름 |
특히 영화의 처음과 후반부에 나오는 염혜란의 보리밭 춤을 언급하는 후기가 많았다. 자기 때문에 사망한 옛 친구에 대한 죄책감, 그날 총칼에 억울하게 쓰러진 이들의 원혼을 실은 듯 보리밭에 부는 바람을 타고 정순이 몸을 흔드는 장면이다.
"마지막 염혜란님 춤이 너무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진혼곡 같은 느낌..." (john***, CGV 실 관람객), "보리밭에서의 살풀이춤이 주는 용서와 화해가 감동적이었다"(지혜로운***, CGV 실 관람객), "청보리밭의 아픔을 춤으로 날려 보내고, 아들 세대의 폭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하며, 아픈 제주는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났다" (Ilyk***, 네이버 실 관람객) 등이 눈에 띈다.
영화의 첫 촬영일은 2025년 4월 3일. 김형구 촬영감독은 "초반에 영옥의 학교 장면을 경기도 양평에서 몰아 찍고, 중반 때부터 제주에 갔는데 염혜란씨가 그 장면에서 아주 고생했다"고 기억했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으로 추가 촬영이 미지수였기에, 날씨와 빛이 적당할 때마다 배우를 데리고 가서 틈틈이 찍었다"며 김 촬영감독은 "염 배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때 울컥하며 훅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보통은 A카메라를 촬영감독이 잡고, B카메라를 촬영기사에게 주는데 이번만큼은 제가 B캠에 망원렌즈를 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겠다고 했다. A캠으론 넓게 현장을 찍어두면 되니까. 정 감독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가 잘 아는 만큼 그때그때 줌을 당겨 촬영하기로 했다. 날씨와 햇빛이 변수였지. 서너 시간 준비해서 단 10초를 찍더라도 집중이 중요했다. 약속된 춤이 아니었거든. 배우가 어떤 표정, 몸짓을 보일지 모르니 그때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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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내 이름은>의 촬영현장. |
| ⓒ 랫츠필름 |
"영화가 시간 축이 두 개지 않나. 잘 보시면 과거가 희미한 정순의 이야기에선 색감이 흐릿했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진해지고, 학교 폭력에 얽히는 영옥 부분은 선명한 색감에서 점차 흐려진다. 그 보리밭 장면 주제가 바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처참한 학살이 벌어진다'였거든.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순간이기에 불명확했던 색이 확 드러나도록 한 것이다. 정 감독님과도 사전에 그런 얘길 나눴다.
제가 이야기에 따라 색감을 많이 만지는 스타일이다. <괴물> 땐 정말 쨍한 색감에 사람들이 평화롭게 있다가 사건이 시작되잖나. 영화 마지막에 송강호 배우가 죽은 딸을 안고 가는 장면을 보면 색감이 많이 빠져 있다. <비트> 땐 푸른색과 호박색을 계속 대비시켰다. <내 이름은>도 두 시간대에 따라 색감을 만진 것이다. 카메라도 직립이 아닌 좀 기울이거나 떨면서 찍다가 서서히 바로 세우는 식으로 장면마다 점진적으로 변화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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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내 이름은>의 김형구 촬영감독. |
| ⓒ 이선필 |
"1999년에 박광수 감독과 제주에서 <이재수의 난>이란 영화를 찍었다. 밤 촬영이었는데 아무리 조명을 줘도 시커멓게 나오더라. 제주의 돌도 까맣고, 집도 까맣고, 겨울의 침엽수림도 까맣게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번에 보니 마찬가지더라. 다행히 낮 촬영이었는데 바로 다음 촬영이 아름다운 보리밭 장면이라 단순하게 연결할 순 없겠더라. 그래서 오히려 자연광을 그대로 썼다. 제주도민들이 공포에 떠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했다.
이 작품에서 극적 장면이 많지 않잖나. 특히 마을과 청보리밭 장면은 삼일 만에 찍어야 했기에 긴장을 많이 했다. 예산이 적다고 소규모처럼 찍으면 영화적 힘이 떨어질 것 같았다. 이 부분을 정 감독님과 사전에 얘길 했다. 어차피 예산 한계가 있으니 제가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숨은 채 여러 컷을 찍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래도 어렵게 생각했던 그 촬영을 완수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좀 있었다."
이 대목에서 김 촬영감독은 "결국 답은 시나리오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지영 감독이 2년여간 <내 이름은>의 집필과 각색 작업을 거친 과정을 전하며 "현장 여건이 어려워도 결국 여러 번 시나리오를 파다 보면 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과거 봉준호 감독은 <씨네21> 인터뷰에서 그를 두고 "화려한 테크닉에 앞서 드라마 흐름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신다. 인물에 대해 카메라가 어떤 태도와 자세를 취하는가에 있어 그의 감각은 압도적"이라 말한 바 있다.
"감독이나 작가가 시나리오를 최소 1년은 잡고 있잖나. 우린 받으면 쓱 읽고 말겠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정보가 담겨 있다. 그래서 곱씹다 보면 감독이 그 신을 어떻게 찍고 싶은지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내 이름은>도 뒷주머니에 꽂고 수십 번 읽었다. 오늘 찍을 장면이 있다면, 아침 일찍부터 읽고 또 읽는다."
김형구 촬영감독은 그간 강단과 현장에서 여러 후배 영화인들을 배출해 왔다. <아수라> <파묘> 등으로 알려진 이모개 촬영감독도 그의 제자다. 1993년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유학 후 귀국한 그는 1995년 <닥터봉>으로 상업영화계에 입문했다.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조수로 일한 뒤 불과 세 작품 만에 촬영감독이 된, 당시로선 이례적인 경우였다.
그는 여전히 "'시네마틱'이라는 말 앞에서 고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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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내 이름은>의 김형구 촬영감독. |
| ⓒ 이선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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