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 중앙선 타고 운길산역 내려 수종사에 가다

김병모 2026. 5. 4. 09:4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병모 기자]

 수종사에서 바라 본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 김병모
5월 첫날 이른 아침,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이라 설렘도 두 배. 서울역 1호선을 타고 회기역에서 경의 중앙선으로 갈아탔다. 배낭을 멘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들 역시 설렘의 눈빛이다.

운길산역에서 내려 수종사(水鍾寺)로 서둘러 갔다. 수종사에 올라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강물을 한눈에 보고 싶은 마음에 지체할 수 없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든가. 아침밥을 놓친 바람에 출출하다. 하는 수 없이 역 주변 김밥집에 들러 김밥과 컵라면으로 시장기를 때운다. 예상과 달리 김밥의 맛이 절묘하다. 허기진 배도 채웠겠다. 수종사가 더욱 궁금해진다.

운길산 수종사로 가는 등산로 푯말이 바람에 치어, 반쯤 넘어져 있다. 첫 여행자들에겐 그나마 반가운 이정표일 수밖에. 수종사로 가는 길목마다 필자를 반기듯, 바람 따라 애기똥풀이 미소 짓는다. 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워 사람의 향기가 나지만, 들풀은 하늘이 내준 햇살과 바람이 키운다. 들꽃은 하늘의 향기가 날 수밖에. 수종사로 가는 길목마다 애기똥풀이 만발하여 하늘의 향기가 가득하다.

구름도 잠시 멈춰 쉬어간다는 운길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수종사. 일주문에 지나자, 거대한 미륵보살이 먼저 반긴다. 마침 여승이 시주를 들고 내려와 봉양한다. 우연찮고 색다른 광경이다. 중생의 탐진치와 생로병사를 굽어살펴달라는 염원을 담았을까. 아침 햇살에 핀, 주변 산 앵두나무꽃과 애기똥풀은 그 뜻을 아는 듯 미소만 지을 뿐이다. 과연 염화시중이로다.

불이문을 지나 수종사 문턱을 넘자, 앙증맞게 바위틈에서 흘러내리는 샘물이 목이라도 축이라고 부추긴다. 우물터 주변으로 색색들이 꽃이 널려있다. 청초한 난초꽃도 실바람에 파르르 떤다. 무엇보다 삼정헌(三鼎軒)에서 차(茶)를 마시며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의 두물머리를 바라보는 경치의 맛이 일품이다.

그윽한 골짜기에서 자란 야생차를 손수 다구(茶具)에 넣고 우려낸 차향이 두물머리로 펴진다. 한강의 경치와 더불어 오감을 자극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을 다 마시는 느낌이다. 한때 다산 정약용이 18년간 강진 유배를 마치고 인근 마제마을로 돌아와 은둔한다. 바로 그때, 인근 수종사에 들러 차를 마시며 하늘의 기운이 흘러내리는 두물머리 한강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했다고 했다.

그 무렵, 다산이 강진 유배 중 우정으로 다져진 해남 초의선사와 한양 추사 김정희를 맞이하여 다선일미(茶禪一味)로 차담 했다는 수종사 일화는 문인과 차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다. 그때도 북한강과 남한강이 휘돌아 만난 한강 수가 운길산을 업고 구름을 띄우고 있었을까.

필자 역시 그들의 마음을 쫓아 흉내라도 내보려 하지만, 다선일체(茶禪一體)는커녕 차향의 맛도 느끼지 못할 지경이다. 수종사 삼정헌의 차 마시기는 올바른 차 문화를 계승한다는 취지로 무료로 시음하고 있어 여행의 맛을 더해준다.

입안의 차향이 가시지 않은 채, 수종사 담장 너머로 이어진 두물머리 한강의 풍경은 산사에서 본 제 일경이로다. 수종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 중턱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사찰이다. 한강 수와 운길산이 어우러진 수종사는 조선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서거정(1420~1488)이 수종사에서 바라본 풍경은 '동방의 제 일경'이라 했을까. 겸재 정선(1676~1759)도 <경교명승첩> 중 '독백탄(獨栢灘)' 화폭에 양수리 풍경을 담아낸다.

수종사는 왕실과 인연이 많은 산사이다. 1457년, 어느 날 부스럼을 앓던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문수보살 동자승을 친견한 후 한강을 따라 환궁을 하는 길이었다. 양수리 두물머리에 이르자, 밤이 이슥하여 쉬어가는데 인근 운길산 기슭에서 종소리가 들어온다. 신하를 시켜 알아보니 옛 절터 주변 동굴 속에서 물방울이 공명 소리를 낸 것이다. 세조의 귀엔 그 물방울 소리가 범종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범상치 않게 여긴 세조는 절을 복원 중창하니 수종사(水鍾寺)라 한다.

세조는 수종사를 중창하고 기념식수로 은행나무를 하사한다. 500년이 넘는 수령이 되었다. 요즘 들어 뭇사람들이 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두물머리 한강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든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세조는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몰염치한 군주였다. 다른 한편으론 후손들에게 수종사에 은행나무를 선사해 뜻하지 않은 은혜를 베푸는구나. 역사의 아이러니랄까.

수종사의 범종은 세조와 또 하나의 인연을 맺고 있다. 1469년 세조의 며느리이자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 수빈 한 씨는 시아버지 세조의 등창 쾌유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범종을 시주한다. 현재 그 범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수종사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옆으로 오를 때 보지 못했던 돌탑들이 앙증맞게 쌓여있다. 누군가의 염원이 담아있겠다. 한참을 내려오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그늘에 앉아 미나리를 다듬고 있다. 건너편 들판에선 아낙네들이 수건으로 햇빛을 가린 채, 뭔가 채취하고 있다. 망초 순을 채취하는 중이란다. 연한 순을 살짝 대처 망초 나물로 먹으면 그만이라고 한다.

돌이켜보건대 망초는 일제 강점기 시절 북미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다. 구한말 시기에 금수강산에 속절없이 번졌다고 하여 망초(亡草)라고 한다. 그러함에도 망초는 화려한 장미와 다르게 소박하면서 하얀 꽃이 피기 전 나물로도 선사하고, 정서적인 친근감을 주는 야생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