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으로 만든 호랑이 모양 허리띠 장식구가 상징하는 것

정재학 2026. 5. 4. 08:3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해아리의 거룩한 장도] 신대리 호형대구와 오송 모자 호형대구

천안시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여행작가입니다. '거룩한 장도, 한국 호랑이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룹니다. <기자말>

[정재학 기자]

문화란 무엇인가. 통상 인간이 사회적 맥락에서 습득·전달하며 공유하는 지식·신앙·예술·법·관습 등으로 구성된 총체라고 말한다. 우선 혈연적, 지연적 유대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촉발된 공감 의식이 일정 기간 공유할 때 비로소 문화가 싹트기 시작한다.

그 한 출발점이 원시시대 토테미즘이지 않을까 싶다. 토테미즘은 특정 동·식물이나 자연물을 집단의 조상·수호신으로 믿고 숭배하는 원시종교의 형태로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곰, 호랑이의 등장은 이를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 인류는 이러한 믿음과 생각들을 표현하고 기록하기 위해 돌과 흙 등에 끊임없이 흔적을 남겼는지 모른다. 특히 금속을 발견하고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형상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북방 스키타이 동물문이 그 대표적이다.

스키타이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 흑해 북안 초원에서 활동한 유목민족으로, 신분·기호 등을 표현하기 위해 맹수와 초식동물이 서로 물고 물리는 역동적인 장면, 과장된 근육과 눈빛 등 동물 조형과 문양으로 장신구를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힘의 전이를 시각화한 것이었다. 이 문화는 당시 유라시아 초원길을 가로지르며 동북아를 비롯하여 한반도까지 물밀듯이 전해지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호랑이 모양 허리띠 장식의 루트를 찾아 지난 4월 5일, 4월 28일 두 번에 걸쳐 경북 경산 탐방길에 올랐다.

주위 사방은 벚꽃엔딩을 방불케 하는 꽃잎 불꽃놀이로 시야를 사로잡았고 날씨는 춥고 덥고 냉·온탕을 넘나드는 환절기로 마치 역사와 현실의 경계를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경북 경산으로 향하는 길, 도시의 외곽을 벗어나자 들판과 낮은 구릉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윽고 도착한 현장, 경북 경산시 압량읍 신대리. 이젠 모두 건물들로 메워져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 이곳에 삼한 시대 소국 중 하나였던 압독국이 있었다. 한동안 삼국사기 등 기록으로만 전해져 오다가 1982년부터 임당동·조영동, 압량읍 부적리·신대리 등에서 1,700여 기의 고분과 마을유적, 토성, 소택지 등이 발굴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신대리 유적을 영남문화유산연구원에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발굴 조사해 수습한 유물이 바로 이 호형대구다.
▲ 경산 신대부적 공원 전경 신대리 호형대구가 출토된 유적지인데, 아무 표식이 없어 허탈감이 든다.
ⓒ 정재학
하지만 현재 현장에는 아무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신대부적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었지만, 어느 곳에도 이렇다 할 표식조차 보이질 않았다.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 사이에는 늘 간극이 존재했지만, 몰려오는 허탈감은 감출 수가 없었다. 기억되어야 할 장소가 기억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랄까.
▲ 국립대구박물관 전경 영남지역 유물의 보고
ⓒ 정재학
자료를 살펴보니 유물은 유적의 주능선 서쪽 경사면 중간 지점에 있는 목관묘 1호에서 출토되었다. 이 무덤은 말각장방형의 묘광과 길이 179cm, 폭 46cm의 목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호형대구는 목관 중간 지점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허리띠 장식이니 그도 그럴 법했다. 170 중반의 키에 호랑이 모양 허리띠 장식을 두른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 분명 압독국의 중요 보직을 겸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었을 텐데, 온갖 궁금증을 뒤로하고 실물을 보기 위해 서둘러 국립대구박물관으로 향했다.
▲ 박물관 디지털 액자 신대리 호형대구가 반갑게 맞아준다.
ⓒ 정재학
▲ 신대리 호형대구 비교적 완형으로 출토된 유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정재학
▲ 호형대구 착용 예시도 이 호형대구는 전장 18.2cm로 가로로 긴 형태를 하고 있다.
ⓒ 정재학
박물관 고대문화실 입구, 디지털 화면 속에서 이 호랑이 문양이 먼저 반갑게 맞아주었다. 역시 박물관에서는 유물의 품격에 맞게 제대로 대접을 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그리고 곧이어 실제 유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호랑이 모양 허리띠 장식구. 그 안에는 강렬한 생명감이 응축되어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자세를 낮춰 앉아 있는 호랑이를 형상화 하고 있었고, 눈은 크게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려 포효하며 상대를 압도하고 날카로운 이빨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랑이 목 주변과 허리 부위에 가로, 세로로 구획하고 교차하게 한 문양은 다분히 양식화되어 호랑이의 상징성을 더해 준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 권력과 신분의 힘을 부여하는 상징에 가까웠다.

이 허리띠 장식은 같은 용도의 마형대구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먼저 말이 이동과 실용을 상징한다면, 호랑이는 위압과 수호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영천 어은동, 경주 사라리, 김해 대성동 등 영남지역에서 15점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는데, 이는 삼한의 진·변한 지역으로 특정되어서다. 물론 최근 중서부 지역에서 3점이 확인되고 있지만, 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이 반영된 선택이었을 것이다.
▲ 오송 생명과학산업단지 전경 중앙문화유산연구원이 2014년도 이곳에서 모자 호형대구를 발굴 수습했다.
ⓒ 정재학
다음 여정은 충북 청주 오송 제2생명과학산업단지다. 단지 조성사업을 위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중앙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했는데 모자 호형대구는 2014년에 4 지점 47호 토광묘에서 발견되었다. 기형 자체도 특이하고 출토된 위치도 기존과는 달라 세간의 이목을 받았던 곳이다.
이곳 또한 발굴 이후 보호조치나 발굴 현장임을 알려주는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현대 산업단지의 정돈된 풍경 속에서 과거의 흔적은 쉽게 밀려난다. 발굴은 기록으로 남고, 현장은 새로운 기능을 얻는다. 과거는 단지 과거일 뿐인가. 그렇다면 기억은 어디에서 남는가.
▲ 국립청주박물관 전경 계단식 조경과 지붕선을 강조한 건물 등 자연과 조화된 아름다운 박물관
ⓒ 정재학
▲ 전시실 전경 유물과 자료를 병행 전시한 것이 신선하다.
ⓒ 정재학
▲ 중서부 출토 호형대구 최근 중서부 지역에 호형대구 3점이 출토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정재학
무거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국립청주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청주박물관은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로 계단식 조경과 지붕선을 강조한 건물 등 자연과 조화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 중 하나다. 이곳에 오송 유적에서 발굴된 모자 호형대구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에서 마주한 이 장신구는 경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두 마리의 호랑이, 어미와 새끼로 보이는 형상. 이는 단순한 장식의 차원을 넘어선다.
▲ 오송 모자호형대구 암컷 어미호랑이와 새끼가 중심인 파격적인 조형으로 특이하다.
ⓒ 정재학
▲ 모자 호형대구 세부 어미 꼬리 부위에 새끼가 올라 타고 있는 특이한 조형
ⓒ 정재학
먼저 조형 중심이 암컷 어미호랑이와 새끼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매장된 주인공은 누구였단 말인가. 혹시 여장부이었을까. 물론 같이 출토된 유물들로 미루어볼 때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런 파격을 선택했을까. 또한 출토 지역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 왜 뜬금없이 중서부에 발견된 것일까. 단지 두 지역 간의 교류 관계를 시사하는 증거로만 볼 것인가. 의문은 꼬리를 물고 묻고 또 물었다. 아직 모든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고 계속 기억의 파편과 장소의 실마리가 축적되는 상황이니 계속 지켜볼 일이다.

그럼, 이 호랑이들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생태적으로 보면 시베리아호랑이는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한반도 북부까지 널리 분포한다. 이 분포는 자연 지리적 축인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따라 쭉 이어지고, 인간의 이동 경로 또한 그 궤를 같이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화 역시 이 길을 따라 이동했을 것이다. 중국 산동지역 무씨사당 화상석에는 단군신화와 유사한 장면들이 새겨져 있고,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동예 사람들이 호랑이를 신으로 숭배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러한 기록과 유물들을 종합적으로 유추해 보면, 호형대구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호랑이 숭배 문화의 물질적 표현으로 읽힌다. 스키타이 동물 문양의 기술적 형식적 영향이 일부 반영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 본질은 만주와 동예, 그리고 한반도 북부에서 이어지는 호랑이 숭배 문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왜 이 작은 금속장식에 이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가. 그것은 이 유물이 단순한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경산의 들판과 오성의 산업단지에서 느꼈던 공허함은 어쩌면 우리가 기억을 장소에만 기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은 이동한 박물관으로 기록으로 그리고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호랑이는 무엇인가. 두려움인가, 힘인가, 아니면 지켜야 할 기억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