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현대전 오답노트' [박은주의 한반도 전략 시선]

데스크 2026. 5. 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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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장을 '실전 시험장'으로 활용하는 북러 밀착
대량 화력과 드론에 집착하는 김정은의 치명적 전략 착각
'오답'을 실전 데이터로 보완 중인 북한군, 대비가 시급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인민군의 뿌리로 여기는 항일 유격대(빨치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4주년을 맞아 조선인민군 서부지구 기계화보병사단관하 연합부대를 축하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고 북한 조선중앙TV가 2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뉴시스

북한은 지금 무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배우고 있다.

러시아 국방장관의 평양 방문, 고위급 인사의 잇단 방북, 친선병원 준공까지. 이 같은 흐름은 북러 관계가 이미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 '전시형 포괄 협력'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밀착 속에서 북한은 러시아를 거대한 실전 시험장(test-bed)으로 활용하며, 전쟁을 학습하고 있다.

최근 2년간의 북러 군사 밀착은 김정은에게 전쟁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포탄 공급과 병력 파견으로 경제적·군사적 실익을 챙기는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확인된 전투 양상을 북한군 교리와 훈련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그 학습이 상당 부분 '오답'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장은 대량 화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인식을 강화했다.

특히, 북한산 152㎜ 포탄과 KN-23 계열의 탄도미사일이 실전에 투입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김정은은 재래식 화력의 '대량 생산과 소모'가 지닌 전략적 가치를 재확인했을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라는 안정적 수요처를 통해 '탄약 생산-에너지·식량 확보'로 이어지는 전시경제 순환을 직접 경험한 점은 김정은에게 장기전 수행에 대한 실질적인 자신감을 심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현대전의 본질을 단순화한 위험한 해석이다.

오늘날 전쟁의 승패는 단순한 화력의 '양(quantity)'이 아니라, 정확도와 네트워크가 결합된 '지능형 타격'에 달려 있다. 아무리 많은 포탄도 목표를 정밀 타격하지 못하면 전장을 지배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오판이 한반도 맞춤형 전략으로 고착될 가능성이다. 김정은이 대량 화력의 유효성을 과신하게 될 경우, 향후 국지도발이나 전면전 상황에서 포병 전력을 활용한 고강도 장기전을 획책할 위험이 크다.

하지만 김정은의 오답 노트는 재래식 화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포병의 '물량' 위에 드론이라는 '비대칭 전력'을 덧입히는 정교한 진화를 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드론과 전자전이 전장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모습은 김정은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정은이 최근 자폭형 드론 생산 현장을 잇달아 시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저가의 FPV(일인칭 시점) 드론이 고가의 전차와 장갑차를 무력화하는 사례는 북한에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북한은 드론을 '보조 전력'이 아니라 기존 전력을 대체할 '주력 타격 수단'으로 격상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 전자전 운용까지 결합해 한국군의 방어망을 교란하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전의 조건을 절반만 이해한 불완전한 학습이다. 드론은 정교한 재밍(jamming·전파 수신 방해)과 다층 방공망 앞에서는 생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오답'에 기반한 북한의 집요한 드론 전력 증강은 더 이상 가상의 위협이 아니라, 우리가 당장 마주해야 할 현실적 과제다.

무기 공급보다 더 치명적인 위협은 북한군이 축적 중인 '데이터와 실전 경험'이다. 국정원이 추정한 약 1만 5000명 규모의 파병 인력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서방 무기체계의 취약점을 파악하고, 드론·포병·전자전이 결합된 현대 통합 전술을 체험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복귀해 북한군의 교리와 훈련 체계를 재정비할 경우, 우리가 마주할 북한군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존재일 수 있다. 북한 특유의 경직된 지휘체계가 이러한 변화를 제약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실전 데이터를 이식받은 전술의 진화를 과소평가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오답 노트'를 쥔 북한군이 그 오답을 실전 데이터로 보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김정은이 '오답 노트'를 채워가며 무모한 자신감을 쌓는 지금이 우리에게는 골든타임이다. 탄약 생산 역량과 전자전 전력을 보강하고, 실전 데이터를 통해 북한의 전술 변화를 선제적으로 무력화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결국 승패를 가르는 것은 '얼마나 많이 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먼저 알고 대응하느냐'다.

글/ 박은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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