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축구·네옴 줄줄이 손절…그 돈 많던 사우디가 인색해졌다
중동의 ‘큰손’ 사우디아라비아가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의 이른바 ‘스포츠 굴기’를 상징하던 프로골프리그 LIV 골프에 대한 후원 중단을 선언했고, 탈석유 미래도시를 표방하는 네옴 건설 사업도 일부 멈춰 세웠다. 중동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 원유 판매 수익성 악화, 누적된 재정 부담 등이 이유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체계가 아랍에미리트(UAE)의 탈퇴 선언으로 균열이 나기 시작한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3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국부펀드(PIF)는 프로골프리그 LIV 골프에 대한 자금 지원을 2026년 시즌 종료와 함께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사우디의 경제 전략 집행 기관인 PIF의 이사회 의장은 빈 살만 왕세자다. LIV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독점 체제를 깨기 위해 2022년 출범했다. 이후 약 50억 달러(약 7조4000억원) 넘는 돈이 여기에 투입됐다. LIV는 스포츠로 사우디의 부정적 이미지를 덮으려는 이른바 ‘스포츠 워싱’을 대표하는 사업 중 하나다.
빈 살만 왕세자의 다른 야심작도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탈석유ㆍ다변화 국가 전략인 ‘비전 2030’의 핵심 사업 네옴의 ‘더 라인’은 지난해 9월 이후 공사가 멈췄다. 170㎞ 계획 중 완료 구간이 2.4㎞에 불과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PIF 내부 감사 자료를 인용해 완공 시점이 당초 2030년에서 2080년으로 밀렸다고 추산했다.
사우디가 지갑을 닫는 배경에는 복합적인 악재가 깔렸다. 우선 경제 사정이 안 좋다. 사우디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22년 사우디의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8.7%를 기록했다. 재정도 9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이때 ‘잭팟’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동력이 됐다. 하지만 2023년 성장률은 -0.8%대로 마이너스 전환했고, 재정도 2023년 이후 내리 적자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비석유 부문의 선전으로 4.4%의 성장률을 회복했지만, 세수의 핵심인 석유 수익은 오히려 줄었다.
PIF의 투자 구조조정도 한몫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PIF 운용 자산은 2024년 말 기준 9400억 달러로(약 1400조원), 세계 5위 규모의 국부펀드다. 하지만 현금 보유고는 약 150억 달러(약 22조원)로 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네옴 등 대규모 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80억 달러(약 11조8000억원)의 자산 가치 하락(손상차손)을 반영했다. 핵심 자금줄인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배당도 3분의 1가량이 축소된 상황이다.

PIF는 사우디 프로축구리그(SPL) 소속 명문 알힐랄 구단 지분 70%를 민간회사 킹덤홀딩스에 매각하기도 했다. 알힐랄을 포함한 사우디의 4대 구단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포함한 축구 스타를 대규모 이적료를 써가며 영입했지만, 지금은 지출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대신 PIF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같이 돈이 되는 사업이나 국가적 행사인 2030 엑스포, 2034년 FIFA 월드컵을 우선순위에 올려뒀다.
야시르 알루마이얀 PIF 총재는 “시기와 규모에 맞춰 자본을 배치하겠다”고 말했다. 수익성이 뚜렷하게 없는 사업은 재정 누수를 막는 차원에서 정리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올해 미국ㆍ이란 전쟁이 불안정성을 키웠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사우디 성장률을 3.1%로 제시했다. 기존 전망(4.5%) 대비 1.4%포인트 낮췄다. 블룸버그는 “사우디가 이란 전쟁의 여파로 타격을 입자 스포츠 투자를 수익이 나는 다른 분야로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페티아 코에바 브룩스 IMF 부국장은 “하향 조정의 가장 큰 요인은 전쟁에 따른 석유 부문 위축으로, 석유 GDP만 3%포인트 이상 하락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닐 퀼리엄(전 영국 외무부 중동에너지 선임자문관)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사우디의 ‘비전 2030’에 중대한 위협”이라며 “대규모 프로젝트의 재평가는 이미 진행 중이었고, 전쟁을 위기라는 구실로 삼아 지출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최근 UAE의 OPEC 탈퇴로 인해 “사우디가 실질적으로 주도해 온 OPEC의 유가 통제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워싱턴포스트)는 진단도 나온다.
다만 팀 캘런 아랍걸프국가연구소(AGSI) 연구원은 “사우디의 충분한 금융 자산, 발달된 채권시장을 감안하면 재정적자를 감당할 여력은 아직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박유미 기자 park.yu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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