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대표자·매뉴얼 없으니 연합… 10대들 기도에 불 지펴”

김용현,김연우 2026. 5. 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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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 신목회열전] <115> 학교기도불씨운동 시작 홍정수 목사
홍정수 목사가 최근 서울 용산구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학교기도불씨운동 사역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부산의 한 고등학교 음악실 문이 열렸다.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직접 사 온 피자 상자를 풀고, 휴대용 스피커로 찬양을 틀며 친구들에게 “오늘 급식 말고 피자 먹으러 와”라며 손짓했다. 사회를 보는 학생도, 간증을 나누는 학생도 모두 같은 학년 또래였다. 2007년 사학법 개정 이후 종교 동아리가 사라진 학교 현장에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일군 ‘전도 축제’의 풍경이다.

한 사역자의 작은 고민에서 출발한 ‘학교기도불씨운동’이 10년 만에 전국 1200여개 중·고교(자체 집계)로 번져나갔다. 학교기도불씨운동을 함께 시작한 홍정수(46) 목사가 최근 서울 용산구 서울역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단체를 만들지 않았고 매뉴얼을 주지 않았으며 누구도 대표자로 나서지 않았던 구조”라고 이 부흥의 비결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누군가 주도권을 쥐는 대신 힘을 빼고 공백을 두자 비로소 지역 교회들이 이를 ‘남의 일’이 아닌 ‘내 사역’으로 품었고 학생들이 주체가 돼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표를 지우고 연합을 살리다

시작은 2016년 부산의 한 교회였다. 2006년부터 이 교회 중·고등부를 맡아온 홍 목사는 출석 학생이 다른 교회 교인 자녀에게 학교 폭력을 당하는 걸 지켜봤다. 홍 목사는 “주일 하루 예배당 안에서만 작동하는 신앙으로는 아이들의 일상인 학교를 지켜낼 수 없음을 절감했다”고 했다.

그는 곧바로 학교에 모임을 꾸리고 인근 대형 교회와 뜻을 모아 연합 집회를 열었다. 초반엔 2500명까지 모였으나 주도권이 한 교회로 쏠리자 다른 교회들이 조용히 발을 빼며 인원이 700명대로 급감했다. 특정 교회가 깃발을 드는 순간 연합은 무너진다는 깨달음이었다.

6차 집회부터 교회 간 회의체를 세우고 통장을 외부로 분리했다. 2010년대 1만명이 모였던 청소년 집회 ‘라이즈업 코리아’가 핵심 리더의 일탈로 한순간에 무너진 교훈 때문이었다.

홍 목사는 “사람이 깃발이 되면 그가 무너질 때 사역도 함께 죽는다는 걸 한국 교회가 학습했다”며 “사람 대신 목적을 보고 모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기도불씨운동’이라는 이름은 일종의 큰 우산일 뿐, 부산은 ‘더웨이브’, 서울은 ‘더라이트’, 다른 지역은 ‘더브리지’ 등 각 지역 연합체가 자율적으로 이름을 정해 활동한다.

집회서 학교로, 학생들이 이어간 불씨

울산 지역 학교기도불씨운동 집회 현장에 10대들이 모여있는 모습. 홍 목사 제공

이름을 지우고 무대에서 내려왔다고 사역자가 방관자가 된 것은 아니다. 무대 뒤 홍 목사가 도맡은 역할은 감독이다. 1년 중 100일 이상 전국을 돌며 핵심 멤버를 엮어내고 청소년에게 영향력이 큰 정상급 예배팀을 섭외한다. 연합 집회에서 사역자는 무대에 오르지 않고 사회·간증·기도 인도까지 모든 순서를 학생들이 책임진다. 다만 그 자리에서 QR코드로 결신한 학생의 데이터를 모아 학교별 자율 기도모임으로 이어지도록 다리를 놓는 것은 사역자들의 몫이다.

기도모임이 자리 잡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한 발 더 나간다. 빈 교실을 빌려 직접 비용을 마련하고 간식을 나누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 축제’를 여는 식이다. 매뉴얼을 달라는 요청도 거절하자 오히려 지역 사역자들과 아이들이 며칠씩 고민해 수십 가지 자체 운영안을 만들어냈다. 학생들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말씀 양육과 신앙 지도는 각자 출석하는 소속 교회에 일임하고 사역자들은 이단과 사이비가 모임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는 안전망 역할에 머문다.

남해 소도시까지 번진 열기

교회를 향한 젊은 세대의 인식은 과거와 다르다. 홍 목사는 “7~8년 전만 해도 교회에 대한 비판이 컸지만 지금 10대들은 거부감 없이 오히려 호감을 보이며 열린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매주 40명이 모이는 부산의 한 여자고등학교 모임은 절반이 비신자다. “기도 소리가 좋고 위로가 된다”며 아이들이 제 발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자발성은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 3월 부산 연합 집회에는 4000명의 10대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웠다. 홍 목사는 부산 지역 내 조직된 중·고등부 기독 청소년을 5000여명 안팎으로 추정했는데, 지역 내 기독 청소년 대다수가 한자리에 자발적으로 모인 셈이다.

열기는 사역의 불모지로 여겨지던 소도시로도 번지고 있다. 지난 3월 18일 열린 경남 남해 연합 집회가 대표적이다. 남해 지역 전체 교회의 중·고등부 학생을 모두 합쳐도 100여명 남짓. 집회 예산도 지역에서 십시일반 모은 150만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사역의 본질에 공감한 홍 목사와 아이자야씩스티원 등 예배팀은 대형 버스를 대절해 기꺼이 남해로 향했다. 그렇게 학생 100명, 어른 50명이 모인 작지만 뜨거운 집회가 치러졌다.

홍 목사를 이 자리로 밀어 넣은 건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학 2:9)는 말씀이었다. 홍 목사는 “솔직히 지금 현실에서 이 말씀이 믿어지느냐”고 자문하며 “저 역시 처음엔 이 약속이 믿어지지 않아 마음이 아팠지만, 이전 세대보다 다음세대가 더 영광스러울 것이라는 말씀을 온전히 믿기로 결단했다”고 했다. 그는 청소년에게 신앙의 광장이 열리고 북한 땅의 학교에까지 기도모임이 세워지길 기도하며 오랫동안 준비하던 교회 개척마저 내려놓고 이 사역에 뛰어들었다. “어른들이 나서서 사역자가 메인이 되는 순간, 아이들의 자발성은 단번에 사라집니다. 학교 현장의 진짜 주체는 학생들입니다.”

김용현 김연우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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