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동해 (16) 한 명이라도 더 혜택을… ‘한쪽 눈 수술’ 가슴 아픈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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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아이캠프 현장은 늘 빛을 간절히 원하는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두 눈이 모두 안 보이는 사람을 먼저 수술하되 한정된 자원 속에서 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한쪽 눈부터 수술을 해주는 것이다.
인상이 참 반듯하고 성실했던 그 청년에게 우리는 원칙대로 한쪽 눈만 수술을 진행했다.
한쪽 눈만 수술한다는 원칙은 아프리카의 열악한 현실 앞에서 더 많은 이들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세운 냉정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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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못 가고 농사 짓던 청년
백내장 아버지 잘 모신 딸 위해
원칙 깨고 양쪽 눈 수술 예외도

아프리카의 아이캠프 현장은 늘 빛을 간절히 원하는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우리가 현장에 가져갈 수 있는 수술 장비와 시간은 철저히 제한돼 있다. 특히 수술에 필수적인 인공수정체와 안약 등 소모품은 한쪽 눈 기준으로만 해도 비용이 100달러에 달했다.
비전케어엔 수술 현장에서 눈물을 머금고 지켜야만 하는 원칙이 있다. ‘한쪽 눈 수술’이다. 두 눈이 모두 안 보이는 사람을 먼저 수술하되 한정된 자원 속에서 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한쪽 눈부터 수술을 해주는 것이다. 비록 한쪽 눈일지라도 수술을 받으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 안타깝지만 노인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고 한창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수술 우선권을 준다.
합리적인 원칙을 세웠다곤 하지만 며칠을 걸어온 환자의 반대쪽 먼눈을 그대로 남겨둔 채 돌려보내야 하는 의사의 마음은 늘 천근만근 무겁다. 때로는 이 차가운 원칙을 무너뜨린 자리에서 평생 잊지 못할 기적 같은 예외가 생기기도 한다.
우간다에서 만났던 23살의 청년 요셉이 그랬다. 선천성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그는 학교조차 가지 못한 채 밭에서 농사만 지으며 살아왔다. 인상이 참 반듯하고 성실했던 그 청년에게 우리는 원칙대로 한쪽 눈만 수술을 진행했다. 하지만 수술이 끝난 뒤에도 요셉의 얼굴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시력을 잃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쳤을 텐데….’ 남은 한쪽 눈이, 아니 남은 그의 인생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결국 모든 캠프 일정을 마치고 짐을 싸서 떠날 준비를 하던 마지막 날, 나는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원칙을 깨고 요셉을 다시 불렀다. 그리고 그의 남은 반대쪽 눈까지 수술했다. 수술이 끝난 뒤 그는 내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며 다음번에 다시 오면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카사바와 고구마를 꼭 가져다주겠노라 약속했다. 내가 되찾아 준 것은 단순한 시력이 아니라 한 청년의 남은 삶 전체였다.
원칙을 잠시 내려놓았던 또 하나의 따뜻한 기억은 스와질란드(현 에스와티니)에 있다. 두 눈 모두 백내장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딸이 모시고 왔다. 그는 아버지가 수술을 기다리는 아이캠프 기간 내내 병원에서 지내며 다른 환자들의 통역을 돕고 배식까지 거들었다. 마침 캠프 마지막 날 여러 사정으로 수술 자리 하나가 비게 되자 우리 팀은 만장일치로 그 착한 딸을 둔 아버지의 반대쪽 눈까지 수술해 드리는 선물을 안겨드렸다. 수술을 마친 아버지는 딸의 부축을 받지 않고 혼자 걸어서 퇴원하셨다.
한쪽 눈만 수술한다는 원칙은 아프리카의 열악한 현실 앞에서 더 많은 이들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세운 냉정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무거운 원칙 속에서도 하나님은 요셉과 스와질란드의 아버지 같은 예외를 허락하시며 의료 봉사가 차가운 제도가 아니라 뜨거운 긍휼임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셨다.
정리=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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