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화학이야기] 말처럼 쉽지 않은 ‘탄소중립’의 꿈

호르무즈해협 봉쇄의 충격이 애꿎은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단순히 원유와 나프타 공급만 어려워진 것이 아니다. 전 세계 거래량의 30%를 차지했던 중동산 비료(요소)의 공급도 끊어졌다. 당장 우리의 밥상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국민 식품인 삼겹살이 ‘금겹살’이 되었고, 쇠고기·닭고기·달걀을 비롯한 축산식품의 가격도 15%나 뛰었다. 중동 전쟁에 의한 공급망 붕괴 대응에 급급한 정부가 느닷없이 에너지 대전환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중동 전쟁의 위기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태양광·풍력 설비를 100GW로 늘이겠다고 한다. 원유의 70%와 나프타의 35%를 중동에 의존하는 비정상을 바로잡는 동시에 우리를 국제사회에서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우뚝 세우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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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소는 생명과 문명의 원소
원자력 등 대체 기술 나오지만
플라스틱 등 탄소 포기 어려워
자원 재활용 순환경제 꼭 필요
」
![한국서부발전의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인 태안화력발전소의 굴뚝에서 수증기를 포함한 배기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4/joongang/20260504001417092ouko.jpg)
탄소중립(net-zero)은 2020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처음 등장한 낯선 과제다. 맹목적인 탈원전에 매달리던 정부가 뒤늦게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둔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에서 전격적으로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과 ‘2050년 탄소중립’을 약속했다. 언론이 그런 탄소중립을 ‘탄소를 포기하자’는 ‘탈(脫)탄소’와 구분하지 않고 소개했다.
탄소의 놀라운 화학적 다양성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지구의 대기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탄소가 우리의 무분별한 소비와 낭비를 부추긴 것은 아니다. 더욱이 우리가 화석연료를 포기한다고 지구 대기가 다시 식어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 자신의 실수와 오남용을 엉뚱하게 탄소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자세는 비겁한 것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118종의 원소 중에서 여섯째로 가벼운 원소인 탄소의 화학적 다양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지금까지 미국화학회에 등록된 2억9000만 종의 화합물이 대부분 탄소 화합물이다. 탄소의 놀라운 화학적 다양성은 탄소 원자핵의 안정성과 크기, 그리고 탄소를 구성하는 6개 전자의 독특한 양자역학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탄소가 우주 공간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은 아니다. 탄소는 태양 질량의 0.29%를 차지하고, 지구에서도 탄소는 12번째로 흔한 원소일 뿐이다. 그러나 생명체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 몸의 18%가 탄소다. 우리 몸무게의 65%를 차지하는 물을 구성하는 산소를 빼고 나면 탄소가 압도적으로 많다. 사실 탄소는 생명의 원소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탄소의 화합물로 만들어진다. 우리 몸의 생리작용을 가능하게 해주는 효소(단백질)도 탄소의 화합물이고, 생리적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탄수화물이나 지방도 예외가 아니다. 생명의 연속성에 꼭 필요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와 RNA도 탄소 화합물이다. 심지어 아직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외계 생명체(ET)도 그런 탄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대 화학의 분명한 결론이다.

탄소는 문명의 원소이기도 하다. 인간은 50만 년 전에 탄소 화합물인 셀룰로오스(목질)를 이용해서 불을 피웠고, 1만2000년 전에 잡종교배를 이용해서 역시 탄소화합물인 DNA를 변형시키는 기술로 농경·목축을 시작했다. 인류가 탄소를 이용해서 스스로 빛과 열을 만들어내고, 필요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탄소는 인류 문명의 진화도 가능하게 해주었다. 청동기와 철기 제작에 사용했던 연료인 숯과 석탄도 탄소였다. 18세기 산업혁명도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기관 덕분에 시작되었고, 20세기의 인류 문명도 석유의 등장으로 가능해졌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섬유·플라스틱·염료·의약품·종이·화약도 모두 탄소 화합물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명은 탄소문명인 셈이다.
더욱 화려한 탄소문화를 만들어야
20세기 후반부터 탄소가 포함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수력·태양광·풍력 등의 대체 에너지 기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수소도 유력한 대체 연료이고, 핵융합 발전의 가능성도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모두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장거리를 운항하는 항공기에 사용하는 항공유는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열에너지를 모두 전기로 충당하는 일도 쉽지 않다. 플라스틱·생활화학용품·의약품·비료 등을 만드는 탄소소재는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오히려 2050년에는 탄소소재의 수요가 2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석탄·석유·천연가스와 같은 전통적인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탄소소재를 공급하는 새로운 대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기와 식물에 들어있는 탄소는 물론, 플라스틱과 생물·산업 폐기물에 들어있는 탄소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자원의 재활용을 극대화하는 순환경제가 꼭 필요하다. 특히 바이오매스와 목질 섬유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술과 폐플라스틱의 재활용 기술도 절실하다. 9000억t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이다. 탄소는 우리가 거부해야 할 악(惡)이 아니다. 오히려 자원의 생산·운반·소비의 전 과정에서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녹색화학’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탄소문화의 창달(暢達)이 우리에게 주어진 막중한 시대적 당위(當爲)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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