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모를 최고가격제…정부·정유사, 보상 기준 샅바싸움

버티면 재정 부담이 커지고, 풀면 가격이 뛴다. 정부가 3월 13일 도입한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 50일을 맞으며 ‘출구 딜레마’에 빠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지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8%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추정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최고가격제에 대해 “전쟁이 종료되거나 안정되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종료하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지만, 종료 시점을 잡기 쉽지 않다. 브렌트유가 지난달 30일 장중 배럴당 126달러를 돌파하며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국제유가도 출렁이고 있다. 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에너지애스펙츠의 암리타 센 창업자는 “전쟁이 6월 말까지 이어질 경우 재고가 고갈될 수 있다”며 “브렌트유가 배럴당 150~2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동사태가 일단락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산업부에 따르면 누적된 인상 억제분은 L당 휘발유 125원, 경유 628원, 등유 573원 수준이다. 제도 종료 시 억눌린 가격이 한꺼번에 반영되며 단기간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선 2022년 2~5월 휘발유 가격 등을 정부 고시가격으로 동결했는데, 정책 종료 후 휘발유 가격이 66% 급등하기도 했다.
제도 운용이 길어질수록 재정 부담은 커진다. 정부는 정유사 손실 보전을 위해 6개월 기준 4조2000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편성했지만,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 실제 손실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손실 보상 기준을 놓고 정부와 정유사 간의 ‘샅바싸움’도 본격화됐다.
정유업계 3조원 보상 주장, 정부는 “원가 기준” 반박
정부는 생산 원가 기준 보전을 원칙으로 하는 반면, 정유업계는 제품 가격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원유를 정제하면 액화석유가스(LPG)·휘발유·등유·경유 등이 단일 공정에서 동시에 생산되는 이른바 ‘연산품’ 구조여서, 특정 제품만의 원가를 따로 떼어내는 것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정유사의 논리대로 휘발유와 경유 등을 공급할 때 사용하는 기준 가격인 싱가포르 국제석유제품가격(MOPS)과 최고가격제로 낮아진 국내 공급가 간의 차이를 토대로 산정할 경우, 손실 규모는 이미 3조원(국내 주요 4개 정유사 합산)에 육박한다는 추산도 나오고 있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최고가격제 시작 전 원가 기준 보전 원칙을 고시한 데다, 정유사의 중동 전쟁으로 3배씩 뛴 MOPS를 반영해 손실을 산정하는 것은 합당한 기준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박동흠 회계사는 “정유사마다 재고자산 원가 결정 방법도 달라 실제 정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출구 전략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형건 강원대 경제·통계학부 교수는 “경유는 최고가격제를 유지하고, 휘발유에 한해서는 서서히 인상해 국제가격과 격차를 줄이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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