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연극에 상처 받을라…열살 배우의 심리 방파제

형은 세 여성을 성폭행한 범죄 용의자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형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홉 살 ‘제이슨’은 언론의 표적이 된다. 학교 선배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오는 17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그의 어머니’ 속 ‘제이슨’ 의 이야기다. 영국 극작가 에반 플레이시가 쓴 ‘그의 어머니’는 하룻밤 사이 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아들을 둔 어머니의 맹목적인 모성애,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한 사회의 끔찍한 낙인을 다룬다. 지난해 국립극단 초연 작품 중 관객 평가 1위를 차지하며 1년 만에 재연 중이다. 이런 호평과 별개로 이 작품은 연기하기에, 또 관람하기에 결코 편한 작품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 주연 배우 진서연이 “17년 연기 생활 중 영화 ‘독전’, 철인 3종 경기와 더불어 이번 작품이 인생 3대 극한 체험 중 하나”라고 했을 정도다.
영화나 드라마는 편집과 컴퓨터그래픽(CG) 등을 통해 아역을 폭력적인 장면과 분리시킬 수 있지만, 무대 공연은 다르다. 노련한 성인 배우도 힘겨워하는 작품에 출연하는 아역 배우가 무대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역의 조력자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달 30일 공연장에서 만난 김채린(31)은 이 작품에서 ‘샤프롱’ 역할을 맡고 있다. ‘샤프롱’(chaperon)은 사교계에 나가는 젊은 여성의 보호자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비롯됐다. 아역 배우 전담 매니저를 일컫는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에서 샤프롱을 뒀다. 연극에서 샤프롱 도입은 드문 경우다.
김채린은 ‘제이슨’을 연기하는 배우 최자운(10)의 무대 밖 동반자 역할을 한다. 그는 평일 기준 하교 후 오후 5시께 공연장으로 출근하는 최자운보다 40분쯤 미리 공연장에 도착한다. 당일 무대 컨디션 등을 꼼꼼히 살피기 위해서다. 이후 도착한 최자운은 김채린과 함께 대본을 맞춰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범한 어린이에서 ‘배우’로 변모한다.
공연 전 8주의 연습기간에도 최자운과 호흡을 맞춘 김채린은 단순한 보호자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아역의 컨디션과 생각을 고려해 대사나 연기 동선의 미세 조정을 제작진에 건의해 반영한다.
![‘그의 어머니’ 속 한 장면. [사진 국립극단]](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4/joongang/20260504000447772ywqr.jpg)
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한 김채린은 대학에서 뮤지컬 ‘로빈’(2020), 연극 ‘트랩’(2025) 등의 컴퍼니매니저로 참여했다. 컴퍼니매니저는 공연 제작 과정에서 연습실 및 현장을 관리하고 배우와 스태프의 소통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또 2024년에는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샤프롱을 맡기도 했다.
샤프롱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샤프롱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작품이다. 김채린은 “뮤지컬 ‘킹키부츠’의 경우 밝은 분위기인 데다 작품에서 아이들의 비중이 크지는 않다. 반면 ‘그의 어머니’는 아이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인데 아역의 비중은 크다”며 “더 빨리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습 초반부터 의도적으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쉬는 시간에는 더 적극적으로 함께 놀고, 몸을 부대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아이가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기 전에 먼저 마음을 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했다. 김채린은 “아이들은 힘들어도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가 많다”라며 “그래서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계속 살펴야 한다”라고 했다.
엄마가 소리지르는 장면 등 감정적으로 힘든 장면이 끝난 뒤엔 대기실에서 최자운을 안아주고 토닥여준다. 처음엔 최자운이 아무 말 없이 안겨만 있어 혹시 다친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런 행동이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됐다. 김채린은 “그때는 그냥 기다려주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김채린과 최자운은 지난해 초연 때도 호흡을 맞췄다. 김채린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해가는 게 느껴져 뿌듯했다”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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