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장엔 저연차, 베테랑은 차출… 민생 수사가 흔들린다

수사 체계 개편을 앞두고 경찰 수사가 부실 논란에 휩싸이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 남양주 스토킹 살해 부실 대응과 강남경찰서의 수사 무마 의혹, 고(故) 김창민 영화감독 사망 사건 등 민생범죄 수사에서 잇따라 허점이 노출됐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사기적 부정거래 의혹 등 대기업을 겨냥한 수사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김병기 무소속(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천헌금 수사도 수개월째 늘어지고 있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 이후 경찰은 중대범죄수사청과 함께 수사를 도맡게 되는데, 권한에 비해 역량이 미비한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 수사에 대한 단편적인 비판보다 구조적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국민일보 취재 결과 경찰 개인의 일탈이나 능력 부족뿐 아니라 수사관의 심각한 저연차화와 급증하는 사건에 치이는 현실 등이 경찰의 수사 역량과 의지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 같은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부실 수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서울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일선 경찰서 31곳의 수사 부서(형사·수사·여성청소년·교통조사과) 소속 5126명 중 경력 3년 미만 수사관이 37.4%였다. 수사 경험을 1년도 채우지 못한 수사관이 993명(19.4%), 1~2년 경력은 480명(9.4%), 2~3년 경력의 수사관이 444명(8.7%)이었다. 특히 경제·사이버 범죄 등을 담당하는 수사1·2과는 경력 3년 미만 수사관이 40.3%,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는 35.5%를 차지했다.
경찰서별로 보면 용산경찰서의 경우 수사 부서 정원의 절반 이상(54.0%)이 3년 차 미만으로 구성됐다. 관악·서초·동대문·강남·마포·강북·강서·양천·성동·방배 등 서울의 상당수 경찰서에서 3년 차 미만 수사관 비율이 40% 이상이었다.
수사관 저연차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경찰이 검찰 송치 여부를 결정해야 할 사건은 연 130만건이 넘는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75만2560건의 사건을 송치했고, 58만774건을 불송치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은 2023년 39만1206건에서 2024년 53만3544건으로 급증했고, 지난해도 증가한 것이다.
이 기간 불송치 사건이 크게 증가한 이유는 경찰의 고소·고발 반려제 폐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무부는 2023년 11월부터 경찰은 사건을 반려하지 못하고 의무적으로 접수하도록 수사 준칙을 개정했다. 한 간부급 경찰은 “음모론에 가까운 고소·고발이 들어와도 바로 손을 떼지 못하고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 입건 전 조사 종결이나 각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터무니없는 고소·고발이라도 수사관 배당과 사건 보고서 작성, 상부 결재 등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종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하 역시 불송치 처분 중 하나이므로 종결 전 검사의 검토가 필요하다.
처리해야 할 사건이 급증하면서 수사의 질은 낮아지고 있다. 불송치 건수가 늘면서 이의신청도 2023년 4만2698건에서 지난해 5만6165건으로 31.5% 증가했다. 송치 사건 가운데 검찰로부터 보완수사 요구를 받은 것은 2023년 9만9888건에서 지난해 11만623건으로 늘었다. 경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의 판단을 받는 사건도 꾸준히 증가세다. 법률 전문가 등 민간 위원이 참여하는 수심위는 경찰 수사의 적정성·적법성을 심사한다. 수사 심의 신청 건수는 2021년 2131건에서 지난해 6223건으로 약 3배 증가했다. 수심위에서 경찰에 보완·재수사를 지시한 건수도 같은 기간 8배로 급증했다.
이처럼 경찰 수사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수사 부서 기피 현상은 심화되는 모습이다. 경찰을 향한 고소·고발 증가도 수사관들의 부담을 키우는 핵심 요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일선 경찰서 31곳에서 수사관을 직권남용, 직무유기, 허위공문서작성죄 등으로 고소·고발한 건수는 2021년 621건에서 지난해 841건으로 증가세다. 지난 3월 도입된 법왜곡죄로 경찰을 고발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27일 기준 법왜곡죄 사건의 피고발인이 3272명이며 이 가운데 경찰관이 1067명이라고 밝혔다.
한 과장급 경찰은 "법왜곡죄가 아니더라도 이미 경찰 수사관들에게 들어오는 고소·고발이 부지기수"라며 "경험과 법 지식이 부족한 저연차 경찰들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잦은 야근, 승진시험 준비 기간 부족 등이 수사 부서를 기피하게 하는 요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최근 정치인과 대기업을 상대로 한 특수수사에 핵심 인력이 투입된 것도 일선 서의 업무 과부하에 영향을 끼쳤다. 한 일선 경찰관은 "베테랑 수사 인력들이 대형 사건을 수사하는 광역수사단 등으로 차출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신입 수사관이 채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임송수 이정헌 조민아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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