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퇴소 후 떠안은 빚 2000만원… ‘꽃길’ 걷는 엄마 되기까지”

20대 후반의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박예빈씨는 보육원에서 퇴소한 직후 인생의 시련을 경험했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며 자립정착금을 잃고 그의 명의로 생긴 2000만원 빚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빚과 현실적인 문제는 삶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 속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였다. 투잡 쓰리잡을 병행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냈고, 개인 워크아웃 제도를 통해 빚을 정리하며 다시 삶을 붙잡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무브온페어는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박람회에서 만난 자립 지원 기관과 상담 멘토들을 통해 LH 주거지원제도와 자립정착금 활용 방법 등 실질적인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막연했던 두려움은 구체적인 계획으로 바뀌었고, 불안정했던 삶은 점차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소중한 인연을 만나 결혼과 출산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됐다. 자립준비청년에서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가족을 책임지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광개토관 ABC홀에서 열린 사단법인 자립준비청년후원회(LBTO·Love Beyond the Orphanage)가 주최하는 ‘무브온페어(MOVE ON FAIR)’가 열렸다. 박씨는 올해 ‘LBTO 자립준비청년 공모전’ 대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날 무브온페어에는 350명 이상의 자립준비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부산 광주 제주 등 지방에서 상경한 청소년들도 있었다.
올해 4회째 맞이한 무브온페어는 아동복지시설 퇴소자와 위탁가정 출신 청년들에게 주거·금융·법률·취업·심리상담·문화예술 등 자립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를 한자리에서 제공한다. 매년 1000~2000명이 사회로 나오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사실상 유일한 ‘정보 지도’인 셈이다. 올해는 사단법인 야나, (사)금융과행복네트워크, 삼성희망디딤돌 등 42개 기관이 부스를 운영했다.

이 행사를 10년 동안 가능하게 한 이야기는, 한국에서 7000마일 떨어진 미국에서 시작된다.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난 소녀는 열여섯 살에 보육원을 퇴소했다. 세 가정을 전전하며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겨우 고등학교를 마쳤다. 취업을 시도할 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고아이기 때문에 채용할 수 없다”였다. 절망 속에서도 신앙을 붙들며 버티던 그녀는 스물세 살에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다. 그 소녀가 바로 LBTO 이사장 줄리 듀발이다.
듀발 이사장은 “입양 전에는 ‘좋은 기회’라는 단어가 제 삶에 없었다. 영원한 가족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제 삶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한국계 해외입양인 킴벌리 핸슨과 함께 LBTO를 설립했다. “보호를 받다 사회로 나오는 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그리고 독립을 응원하는 따뜻한 손길입니다.” 자신이 먼저 건넌 강 반대편에 서 있을 후배들을 향해 10년째 건네는 말이다.

LBTO 미국 측 회원 150여명은 대부분 한국계 해외입양인과 그 가족들로, 일부는 이미 60~70대다. 올해 행사 비용 일부는 미국 후원자의 배우자가 익명으로 기부했다. LBTO 한국 유닛을 이끄는 오창화 이사는 2018년 이 사역에 합류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자신의 집에서 자립준비청년들과 명절을 함께하고 캠핑을 가며 그렇게 일대일 코칭을 이어갔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만난 오 이사는 인터뷰를 통해 LBTO의 10년 궤적을 돌아보며 자립준비청년들을 향한 연대를 다시금 강조했다.
LBTO의 장학 프로그램은 단순한 금전 지원이 아니다. 인터뷰로 자립준비청년들의 목표를 확인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 장학생은 이듬해 지원이 중단될 정도로 철저한 피드백을 해야 한다. 오 이사는 “올해 장학생은 23명이다. 환경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꿈의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집중하고 싶다”고 전했다.
무브온페어의 아이디어는 2021년 LBTO 내부 논의에서 나왔다. 수많은 지원 기관이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정작 자립준비청년들은 구체적인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고 2023년 첫 번째 무브온페어가 열렸다. 오 이사는 “행사는 청년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기관들이 서로를 알고 중복 지원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연결의 장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는 가정 밖 청소년 쉼터에 머무는 청소년 20명도 처음으로 함께했다. 오 이사는 “자립준비청년 뿐 아니라 가정에서 분리된 이들이라면 누구나 함께해야 한다는 공감대 가운데 이들을 초대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아동복지협회는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 30명을 직접 인솔해 행사를 찾았다. 아직 시설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사회를 미리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청소년들이 행사 후 남긴 소감에는 공통된 말이 있었다. 처음으로 환영받는 느낌을 받았고 고아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오 이사는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정보 이전에 어른이다. 애정을 갖고 잔소리해 줄 어른”이라며 LBTO가 궁극적으로 목표에 대해 “자립준비청년이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그 아이들이 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 무브온페어가 대전 등의 중부권 도시에서 열리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서울까지 올 수 없는 지방의 청년들에게도 같은 기회가 닿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는 무브온페어가 정보 박람회로 끝나지 않고, 전국 교회들이 자립준비청년 곁에 함께하는 구심점이 되길 바란다. “해외 선교도 귀하지만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자립준비청년이야말로 가장 가까운 이웃일 수 있습니다. 돈을 넘어선 관계 맺기, 함께 사는 것, 그건 교회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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