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추진하는 日...찬성 여론 속 "한국에서 배웠다" 응원봉 든 반대 시위도

유성운, 정원석 2026. 5. 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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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2026년 5월 2일 하노이 국립대학교 강당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의 개헌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헌법의날(5월 3일)을 맞아 발표된 주요 언론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 여론이 일제히 우세하게 나타난 가운데,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단계적 개헌’이라는 전략을 꺼내 들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일본 헌법의날 79주년을 맞아 산케이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긴급사태조항 신설과 선거구 합구(合區) 해소를 중심으로 개헌을 우선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모든 주제를 같은 속도로 진행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중요성에서 우열은 없지만, 현실적으로 하나씩 논의를 진행한다면 선거구 합구 해소와 긴급사태조항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자민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때인 2018년부터 자위대 헌법 명기, 긴급사태조항 신설, 선거구 합구 해소, 교육 충실화를 4대 개헌 항목으로 정리해 추진해왔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날 ‘단계적 개헌’을 꺼내든 것은 민감한 자위대 명기보다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은 카드부터 꺼내며 개헌 분위기를 다져나가는 셈법으로 풀이된다.

선거구 합구(合區) 해소는 인구 감소로 선거구가 통합된 지역의 선거구를 다시 분할하는 방안이다. 일본은 현재 참의원(상원)에서 돗토리현(鳥取県)과 시마네현(島根県)이 1개 선거구, 도쿠시마현(徳島県)과 고치현(高知県)이 1개 선거구로 묶여 있다. 하지만, 해당 현민들 사이에서 ‘우리 현 출신 의원이 없다’는 반발이 커지면서, 합구 해소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이어져 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합구 해소는 특히 현실적 문제로 굉장히 서두르려 한다. 참의원 선거가 바로 내후년”이라며 참의원 선거 전 개헌 발의를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2026년 5월 3일 일본 도쿄에서 헌법기념일을 맞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행정부와 그의 개헌 및 군비 확장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자들과 시위대가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헌법 개정에는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서 각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자민당은 참의원에서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개헌을 위해선 참의원 의석 확보가 필수조건인 셈이다. 특히 대상이 된 4개 현 모두 자민당의 전통적 우세 지역으로 꼽히기 때문에 합구 해소가 자민당 의석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긴급사태조항은 대규모 재해나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 감염병 대유행 등 국가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통상의 헌법 질서를 일시적으로 정지하거나 변경해 정부에 강한 권한을 집중시키는 조항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언제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대규모 재해나 테러 등에 대비해 국가가 신속한 대응”을 이유로 들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을 거치며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전보다 확산됐다는 평이 나온다.

한편, 일본 언론들이 개헌과 관련해 벌인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찬성’이 우세한 결과들이 속속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2일 3~4월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우편설문 조사 결과 ‘개헌 찬성’이 47%로, ‘개헌 반대’(43%)를 앞섰다고 보도했다. 아사히는 아베 전 총리 때인 2016년부터 같은 여론 조사를 해왔는데, 찬성 응답률이 반대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다만 전쟁과 무력행사 영구 포기 등의 내용이 담긴 헌법 9조에 대해서는 ‘변경하지 않는 게 좋다’(63%)는 응답이 ‘변경하는 게 좋다’(30%)를 크게 앞섰다.

교도통신도 3∼4월 유권자 3000명을 상대로 개헌에 대한 우편조사를 벌인 결과 ‘필요하다’(69%)가‘필요하지 않다’(31%)보다 높게 나왔다고 이날 보도했다. 특히 헌법 9조 개정에 대해서도 ‘필요하다’(50%)가 ‘필요하지 않다’(48%)보다 소폭 우세했다. 마이니치신문도 4월 18~19일 벌인 개헌 여론조사 결과를 3일 공개했는데, ‘찬성’이 37%로 ‘반대’(30%)보다 높았다. 다만, 헌법 제9조 2항 개정에 대해선 찬성과 반대가 각각 47%, 48%로 비슷했다.

3일 도쿄에서 열린 대규모 개헌 반대 시위에 참여한 이즈미와 카마즈카씨. 정원석 특파원

한편 이날 일본 도쿄에서는 주최측 추산 5만명이 모인 대규모 개헌 반대 집회가 열렸다. 오후 1시 아리아케방재공원(有明防災公園)에서 열린 집회에선 시민단체 대표나 정치인들이 단상에 올라 긴급사태조항에 따른 정부 권한 남용 등을 우려하며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특히 이날 시위 현장엔 일본의 진보정당인 사민당이나 노조 관련 깃발 외에도 ‘고양이들의 안전한 삶을 위한 모임’, ‘전쟁 없는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엄마들 모임’ 등 다양한 깃발이 나부꼈다.

‘응원봉과 깃발을 알려준 한국의 시위대 여러분에게 경의와 애정을 전하는 모임’ 깃발을 들고 나온 회사원 오카무라 나오는 “일본 젊은 세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 축제 같은 집회로 관심을 환기할 수 있다”며 “한국의 집회 문화에 큰 감동을 느꼈다”고 깃발 제작 경위를 설명했다. 가마즈카 레나는 “지금 정권의 헌법 개정 시도에 반대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했다”며 “일본은 역사적으로 한국을 식민지화해 아픔을 줬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도쿄=유성운·정원석 특파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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