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 미군 뺀 트럼프, 돌연 美불신 걸프국엔 ‘긴급 무기 판매’

이승호 2026. 5. 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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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패트리엇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독일 주둔 미군 5000명을 줄이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걸프 지역 동맹국엔 긴급 조항까지 발동하며 무기 판매를 속전속결로 승인했다. 이란과의 전쟁에 협조하지 않은 유럽엔 미군 감축으로 보복했지만, 미국 불신이 커진 걸프국엔 무기 제공으로 힘 실어주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이날 이스라엘,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에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국가별로 보면 카타르에 40억 달러(약 5조9000억원) 규모의 패트리엇 PAC-2·PAC-3 요격 미사일을 판매한다. 쿠웨이트는 25억 달러(약 3조 7000억원)를 들여 미 방산업체 노스롭그루먼의 차세대 ‘방공 및 미사일방어(AMD)’인 통합전투지휘시스템(IBCS)을 들이게 됐다.

이스라엘·카타르·UAE는 첨단정밀타격무기인 APKWS-II를 공급받는다. 이스라엘과 카타르에 각각 최대 10억 달러(약 1조 5000억원), UAE는 최대 1억 5000만 달러(약 2300억원) 규모가 판매된다. APKWS는 유도 기능이 없는 기존 로켓에 특정 부품을 결합해 만든 레이저 유도 로켓이다. IBCS와 APKWS엔 무기뿐 아니라 기술 데이터 및 인력 교육·훈련 장비 등도 판매 품목에 들어간다고 미 정치매체 더힐이 전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무기수출통제법(AECA)상 긴급조항을 적용해 의회 검토를 생략하고 판매를 승인했다. AECA에 따르면 미 대통령은 외국에 주요 무기를 판매하기 30일 전에 의회에 통보해야 한다. 하지만 행정부가 국가안보 이익을 위한 긴급 상황을 설명할 경우 의회 승인을 건너뛸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무기 판매에서 긴급조항을 적용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달 16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국제공항 인근이 이란의 공격으로 인한 폭발로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에미레이트 항공 소속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판매는 지난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큰 피해를 본 걸프국들을 의식한 조치란 분석이 나온다. 전쟁 동안 이란은 미군 기지가 있는 걸프 국가에 많은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벌였다. 이로 인해 걸프 지역에서만 20여명이 숨졌다.

이에 이 지역 국가들은 미국에 자국 안보를 맡기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자국 미군 기지가 전쟁 과정에서 방어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격 타깃이 됐기 때문이다. 자이돈알키나니 아랍 퍼스펙티브 연구소 소장은 알자지라에 “미국은 이란을 공격할 경우 밀어닥칠 안보, 경제적 후폭풍에 대해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제기한 경고를 무시하고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이해만 쫓았다”며 “GCC는 미국과 어느 지점에서 협력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재평가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마이애미 국제공항에 도착해 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에 미국이 전쟁 동안 이들 지역이 대규모로 소모한 방공무기를 긴급히 판매하며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실제로 미 국무부는 무기 판매의 이유로 “중동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전략적 파트너의 안보를 강화해 미국의 외교 및 국가 안보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무기 공급 시점은 불투명하다. NYT는 “방어용 요격체계 등은 대량 생산에 수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도 2020년 아브라함 협정으로 수교한 UAE 챙기기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개전 이후 UAE에 첨단 레이저 방공 시스템 아이언빔과 경량 드론 감시 체계 ‘스펙트로’를 지원했다. 운용을 지원하는 군인 수십 명도 파견했다. UAE는 이스라엘로부터 아이언돔 방공 체계 역시 지원받았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가 전했다.

지난달 4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인근에서 이스라엘의 방공무기 체계 아이언돔이 발사체를 요격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로선 이란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걸프 지역 국가들과 달리 미국과 이스라엘 입장에 동조하는 UAE와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UAE는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보다 더 많은 미사일·드론 공격을 받았지만, 중동 이웃 국가들의 소극적 태도에 실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 공격으로 경제 모델이 위협받고, 이웃 국가의 지원 부족에 좌절한 UAE는 미국과 이스라엘과 관계를 더 강화하고 있다”며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도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대한 불신 속에 자국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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