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차오른 이란, 유가 오른 美…‘누가 오래 버티느냐’ 싸움 됐다

이근평 2026. 5. 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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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모았던 이란의 새 종전 제안마저 결국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이란의 새 종전 제안을 검토하겠다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론으로 돌아서면서다. 미국이 협상의 여지만 남긴 채 해상 봉쇄의 고삐를 더욱 강하게 죌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가와 해협을 둘러싼 양국의 치킨게임은 최고조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2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국제공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마이애미행 에어포스원 탑승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검토하겠다” 직후 SNS선 “수용 어렵다”…거부에 무게


2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에서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란의 새로운 종전 제안을 검토 중”이라며 “정확한 문구를 전달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타스님통신 등 이란 반관영 매체들은 “미국이 먼저 제시한 9개조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이란이 14개조로 구성된 합의안을 중재국인 파키스탄을 통해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기류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지난 47년간 이란이 인류와 세계에 저지른 일에 비하면 아직 충분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제안이 수용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사실상 이란의 새 제안에 대한 거부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14개조에 호르무즈 통제권…트럼프 "공습 재개 가능성도"


외신들은 이란의 14개 제안에는 ▶30일 내 일괄 타결 ▶재공격 금지 보장 ▶미군의 이란 주변 지역 철수 ▶해상봉쇄 해제 ▶동결 자산 해제 ▶배상금 지급 ▶제재 해제 ▶레바논 전선 종전 ▶호르무즈해협 관련 새 메커니즘 구축 등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이중 특히 해협의 새 매커니즘은 이란이 통행료를 징수하는 등 통항 선박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승리의 명분이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전을 의미하는 배상금 지급을 요구하는 동시에, 호르무즈해협 통행료 징수 권한 등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 사항이 대거 포함됐다. 이 때문에 공습 재개 가능성도 끊임없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습 재개와 관련 기자 질문에 “이란이 나쁜 짓을 한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답했다.


우라늄 농축권 둘러싼 '레드라인'…양측 입장차 여전


호르무즈해협 통과 선박 나포 시도하는 이란 혁명수비대 고속정. AFP=연합뉴스
양측 모두 양보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착 상태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지난 4월 말 제시한 합의안에서 “호르무즈해협 통항을 일단 재개해 종전에 합의한 뒤 핵 문제 협상을 이어가자”는 선 개방·후 협상 방식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우라늄 농축 중단에 동의하더라도 평화적 목적의 농축 권리는 인정해 달라는 요구도 포함됐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를 거절했다.

이란은 이번 제안에서도 종전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뒤 또 다시 한 달의 시한을 정해 핵 관련 합의를 진행하는 단계적 이행방안을 강조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요구하는 단계적 합의가 아닌,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함한 일괄 타결을 원하고 있다.

이란은 경제 문제 때문에 호르무즈 봉쇄부터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블룸버그통신은 원유 수출길이 막힌 이란이 원유 저장고가 빠르게 차오르는 이른바 ‘탱크 톱(Tank Top)’ 상태에 직면하자 이미 감산 조치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한 번 가동을 멈추면 영구적인 유정 불능화 위험이 있음에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뜻이다. 14개조 합의안에 경제 회복 조항이 대거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美, 금융·군사 압박 동시에


미국은 금융제재까지 동원해 이란의 해협 통제 시도를 원천 차단하려 하고 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지난 1일 “호르무즈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하기 위해 이란 정권에 통행료를 지급하는 해운사들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군사적 압박 움직임도 지속되고 있다. 미 국무부는 같은 날 이스라엘·카타르·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들에 대한 86억 달러(약 13조원) 규모의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협상 장기화를 대비해 이란 주변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확실히 점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 해병 제31원정대 소속 대원들이 아라비아해에서 해상 봉쇄 위반이 의심되는 상선 블루스타 3호에 승선해 검색 작전을 벌이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 에너지전으로


문제는 미국 역시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39달러까지 올라 전쟁 기간 최고치를 기록했고 해협 폐쇄가 이어지는 한 추가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높은 유가는 부담으로 작용할 만하다.

결국 이번 협상은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를 겨루는 에너지전 성격으로 굳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이 협상 재개를 위한 새 제안을 냈지만, 양측은 저마다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고 입장 차도 커 뚜렷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며 “협상이 빠른 해결책을 가져올 가능성은 낮다”고 관측했다.

실제 이란은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며 대미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산하 정보기구(IO)는 3일 성명에서 “트럼프의 선택지가 줄어들었다”며 “트럼프는 불가능한 군사작전 혹은 이란과의 나쁜 거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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