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주면 아이를 낳겠느냐?" 이 질문에 깔린 당연한 전제

이의진 2026. 5. 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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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성 유산을 경험한 난임 환자 입장에서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계속되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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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진 기자]

저출산 시대, 출산을 둘러싼 질문은 점점 더 직설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질문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1억을 주면 아이를 낳을 건가요?"

직접이고 간접이고 간에 이런 질문을 들을 때면 나는 자꾸 마음에 얹힌 듯 답답했다. 누군가는 "1억 가지고 누가 요즘 세상에 애를 낳아"라고 가볍게 넘길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1억 원을 들여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기 때문이었다.
 습관성 유산을 겪는 사람들에게 임신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켜낼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 solenfeyissa on Unsplash
나는 습관성 유산을 경험한 난임 환자다. 아이를 갖는 일은 나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이, 나는 매번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다. 나의 난임 케이스는 특별히 더 힘든 경우라고 말하기도, 그렇다고 쉽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경계 어딘가에 있었지만, 분명한 건 그 과정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임신을 확인하고, 다시 잃고, 또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확률성 도박과도 같은 시간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정서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아이를 갖기 위해 기울인 시간과 감정은, 아무 일 없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부부들과는 다르게 쌓여갔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들은 난임 환자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벼랑 끝까지 몰리는지 알지 못한 채 "포기하면 온다더라", "노력해봐"라는 말을 쉽게 건넸다.

의학적으로 난임은 피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이 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임신 이후에도 유지되지 않는 경우, 나처럼 습관성 유산을 겪는 사람들에게 임신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켜낼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난임을 겪는 부부는 약 25만 쌍 이상으로 추산된다. 전체 부부 가운데 약 6~7쌍 중 1쌍이 난임을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5년 사이 난임 환자 수는 약 30% 가까이 증가했고, 연간 난임 시술 건수 역시 50만 건을 넘어섰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같은 시간을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래서일까. "1억을 주면 아이를 낳겠느냐"는 질문을 듣고, 나는 그 문장 안에 숨어 있는 전제를 먼저 떠올렸다. 마음만 먹으면, 원할 때 임신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전제. 하지만 누군가에게 임신은 선택이 아닌, 시도였고, 기다림이었고, 때로는 포기와 다시 시작을 반복해야 하는 과정임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요즘 사람들이 그 질문을 다른 의미로 던진다는 것도 안다. 각자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시대에, 아이까지 책임질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물음일 것이다. 그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가볍게 들릴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이미 여러 번의 상실을 지나온 뒤에야 마주하게 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같은 질문이라도, 모두 같은 자리에서 듣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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