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그려줘" 주문 대신 이렇게, 소설가의 AI 활용법

김인철 2026. 5. 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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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라인부터 시놉시스, 프롬프트 작성까지... 내가 쓴 단편을 'AI 영화'로 만들어보다

[김인철 기자]

2005년부터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고 있다. 소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르면 상상을 넓히고 서사를 구성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필요하면 소설과 관련있는 현장을 찾는다. 소설을 쓰는 행위는 정적인듯 보이지만, 작가의 머릿속에서는 인물간의 갈등, 대사, 상황, 장면이 팝콘처럼 끊임없이 튀어 오른다. 그렇게 떠오른 이야기들에 살을 붙이면 단편이나 장편으로 이어진다.

소설가라면 한 번쯤 자신이 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를 꿈꿀 것이다. 나도 단편소설을 영상으로 구현해보고 싶었다. 영화 <박하사탕>(1999년)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도 소설가였다. 좋은 소설은 글을 통해 독자들을 웃고 울게 만들고 좋은 영화는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준다.

AI와 시나리오

내가 쓴 단편을 영상으로 만들 기회가 생겼다. 지난 3월 <성남 미디어센터>에서 'AI 시나리오와 사전 시각화 워크숍' 강좌를 열었다. 강좌를 신청하면서 목표는 하나였다. 내가 발표했던 단편 중 한 편을 골라서 시나리오로 각색하고 AI 영화로 완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의 첫날 강사의 설명을 듣는 순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I 시나리오 강좌 기록
ⓒ 김인철
총 10차시에 걸친 AI 시나리오 수업은 매우 정교하면서 배울 점들이 많았다. 시나리오 작성 기본 원리부터 AI 기획 과정의 이해, 영화 언어와 문법 기초, 비주얼 스토리텔링, 그리고 마지막 장면 컷 이미지 생성 실습까지 AI 영화 제작을 위한 과정을 다양하면서도 압축적으로 배웠다. 새로운 AI도구를 배우는 재미도 있었다. 문제는 시나리오였다. 결국 기존 작품을 각색하는 대신, 로그라인과 시놉시스를 새로 썼다.

로그라인(LOGLINE)이 뭔데?

영화나 드라마의 시작은 한 줄 로그라인이다. 로그라인은 영화, 드라마의 핵심 갈등과 설정을 1~2 문장으로 요약한 글이다. 강사는 이 로그라인 한 줄에서 영화나 드라마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로그라인 한 줄에 주인공, 목적, 장애물, 빌런, 아이러니(흥미 요소)를 포함하여 작품의 장르와 분위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새롭게 쓴 3분 분량의 시나리오 <그네>도 로그라인에 모든 걸 담아야 했다. 로그라인을 완성하기 위해서 AI와 수차례 대화를 하며 시놉시스를 수정했다. 긴 호흡의 이야기를 한두 문장 안에 담아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영화 제작자나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이야기의 핵심이기에 그만큼 고심을 해야 했다.

제목 : 그네

로그라인 : 사기죄로 수년 동안 수배 중이던 여자가, 경찰에 붙잡힌 후 공범을 잡는데 협조하는 대가로 경찰과 형량 거래를 한다. 여자는 구속되기 전 그리워하던 아들을 보기 위해 아들이 즐겨 찾는 놀이터를 찾지만 아들은 엄마를 알아보지 못한다.

처음 써본 로그라인은 어설펐다. 하지만 강사의 세밀한 피드백을 통해 쳐낼 곳은 쳐내고, 살릴 곳은 살리며 점차 날카로운 서사를 갖춰 나갔다. 함께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의 로그라인이 다듬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되었다.
시놉시스

추운 겨울 늦은 오후, 아파트 단지 놀이터 입구에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서있다. 하늘은 눈이라도 내릴 듯 흐리다. 승합차 안에는 건장한 체구의 형사 셋과 가냘픈 여자 한 명이 손에 수갑을 찬 채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창문은 습기로 인해 바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여자는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한다. 형사들은 여유로운 표정이다. 그 순간 여자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형사들도 긴장한다. 여자는 맞은편에 앉은 형사를 쳐다본다.(중략)

프롬프트 작성

한 줄 로그라인과 시놉시스를 완성하자 강사는 구글 FLOW(생성형 AI 플랫폼)와 제미나이를 활용하여 영상 전단계인 각 장면(Scene)의 이미지를 제작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여기서 핵심은 '프롬프트'였다. 프롬프트는 작가의 머릿속 상상을 AI에게 전달하는 정교한 명령어다. 단순히 "장면을 멋지게 그려줘"라고 해서는 결코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강사는 단순히 AI에게 "장면을 멋지게 그려줘"라는 프롬프트를 줘서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인물의 외면과 내면의 갈등, 카메라 앵글, 렌즈 종류, 조명의 밝기와 위치 등 프롬프트를 자세하게 써야 최적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했다고 해서 한 번에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수회에서 수십 번 시도해야 원하는 결과물이 나온다. 내 시나리오 <그네>도 그랬다. 처음 AI가 내놓은 이미지는 너무 밝고 화려했다. 하지만 프롬프트에 흐린 하늘, 차가운 회색톤을 추가하자 내가 원했던 놀이터 이미지가 나타났다.

프롬프트

다소 흐린 오후 하늘 아래 5층짜리 낡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촬영한 익스트림 롱샷, 광각의 시네마틱 프레임. 놀이터 입구에 검은색 밴이 주차되어있다. 화면 색상은 차가운 회색톤으로 불길함을 암시. 카메라는 35mm 시네마틱 필름으로 촬영.
▲ 그네 AI를 활용한 이미지. 이 이미지를 얻기 위해 프롬프트를 십여 차례 수정했다.
ⓒ 김인철
이제 영상을 만들 차례다. 먼저 그네 시나리오를 스토리보드로 만든 후 이를 활용해 각 장면별 이미지를 한 컷 완성한다. 생성형 AI 구글 플로우로 8초짜리 영상을 완성한다. 여기서도 프롬프트를 상세하게 작성해줘야 최적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 구글의 생성형 AI 플랫폼(Flow)은 이용자들에게 기본 150크레딧을 제공하고 매일 50크레딧씩 제공한다.
▲ AI 시나리오 구글 생성형 AI(Flow)를 활용해 그네 시나리오의 한 장면을 8초짜리 영상으로 만들었다. ⓒ 김인철

새로 알게 된 것들

강의를 들을수록 영화는 '종합예술'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AI를 활용하더라도 배우, 조명, 미술, 음악 등 모든 요소를 정확히 세팅해야 좋은 영상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현장에서는 촬영, 조명, 미술 스태프들이 팀을 꾸려 AI 영화나 광고를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도 놀라웠다.

AI는 이제 글쓰기를 포함한 우리 삶의 모든 방식을 바꾸고 있다. 똑똑한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모든 창작자에게 중요한 숙제가 된 셈이다. 당초 계획했던 영상 완성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대신 더 큰 결실을 보았다. 머릿속에서 팝콘처럼 터지는 아이디어들을 언제든 시각화해 줄 든든한 조력자(AI)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쓴 시나리오 <그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영상으로 완성해 볼 생각이다. 챗지피티와 제미나이를 넘어 미드저니, 이미지를 합성하는 믹스보드(Mixboard), 목소리를 만드는 수퍼톤 플레이(Supertone play) 등 다양한 AI 도구를 다룰 줄 알게 된 지금, 소설가로서 나의 상상력은 이전보다 훨씬 넓고 깊은 바다를 향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와 다음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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