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괴물 부모' 막을 방패 필요"...김현수 교수 글 '강타'

윤근혁 2026. 5. 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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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보호받지 못하는 전문성은 결국 도주...국가가 나서야"

[윤근혁 기자]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가 2월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오마이포럼 'AI 권력의 시대 : 인간다움과 민주주의의 미래'에서 'AI 시대, 학생·교사·학부모의 정신건강을 묻다(부제-우리는 더 연결될까 단절될까)'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소풍(현장체험학습) 구더기' 발언과 이수지씨(개그우먼)의 '유치원 선생님' 영상으로 악성 민원인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교육평론가)가 쓴 '소수의 괴물 부모를 막을 절차적 방패가 필요하다'라는 글이 교육계를 강타하고 있다. 김 교수의 제안에 상당수 교육감 후보와 교육전문가가 잇달아 동의하고 나섰다.

김현수 교수 "소풍 막은 괴물 부모는 소수인데, 우리가 휘청이고 있어"

2일, 김 교수는 페이스북에 "학교가 소풍을 포기하고 동네 소아과가 진료실 문을 닫는 한국의 풍경은 단순한 '진상 민원'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이것은 발언의 비대칭이 공적 영역을 잠식하는 구조적 현상이며, 그 끝에서 가장 약한 시민들이 먼저 중요한 권리를 잃어버리고 만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김 교수는 "'소풍 가지 말자', '승패 가리지 말자'라는 몇 명의 학부모, 즉 괴물 부모는 대부분 소수이며 다수가 아닌데, 그들의 공격에 우리가 휘청이고 있다"라면서 "한 학부모의 분노는 집중적이고 즉각적이지만, 소풍을 기다리던 서른 명 아이의 실망은 분산적이고 지연적이다. 시스템은 소수의 분노를 회피하는 쪽으로 기울고, 방어적 행정이 그렇게 자라난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공적 서비스는 점차 '고객 만족'의 언어로 재편되었고, 시민은 권리 청구자에서 서비스 소비자로 변모했다"라면서 "그 사이 돌봄과 교육에 종사하는 이들의 전문적 재량과 권위는 책임성이라는 이름 아래 끝없이 축소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처럼 강조했다.

"보호받지 못하는 전문성은 결국 도주한다."

이에 따라 김 교수는 '소수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차적 방패가 필요하다"라면서 "모든 민원을 동등한 무게로 처리하는 시스템은 결국 가장 시끄러운 자에게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영국 NHS(국영보건서비스)의 악성 민원 정책(vexatious complainant policy)이나 일본의 학교 민원 분류 체계처럼, 반복적이고 근거 없는 민원을 공식적으로 식별·분리·종결하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돌봄의 윤리를 제도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교사·의사·사회복지사를 향한 폭언과 위협은 개인 간의 사적 분쟁이 아니라 공적 시스템에 대한 공격으로 재규정되어야 한다"라면서 "더 근본적으로 '잃어버린 다수'의 목소리를 복원해야 한다. 침묵하는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소풍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집단으로 말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형식화된 학교운영위원회의 실질화, 시민이 공적 서비스를 함께 옹호하는 풀뿌리 인프라가 그것"이라고도 했다.

"다수의 뜻 지키기 위해 소수 괴물 부모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29일 오전 9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연 긴급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학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현장체험학습 문제를 해결하라”라고 요구하고 있다.
ⓒ 전교조
김 교수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소수의 괴물 부모를 막는 절차적 방패'와 관련, 교육부와 국회에 "소수의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다수 학부모와 교사의 뜻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가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라면서 "단호한 대응"을 제안했다.

김 교수의 글은 게시 14시간 만에 '좋아요'가 852개이고, 공유가 298건이다.

댓글에서 임성무 대구교육감 선거 예비후보는 "김 교수의 정확한 분석에 경의를 표한다. 절대다수의 공공성이 보호되도록 할 것"이라고 적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선거 예비후보도 "정말 소중한 통찰이자 정책에 반영되어야 할 의견"이라고 평가했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의 강영미 회장은 <오마이뉴스>에 "학교에 정말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 비이성적 민원이 들어오면 학교장과 교육청이 이를 들어주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다수의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선생님을 위한 일"이라면서 "교육 공익을 해치는 비이성적, 비상식적 소수의 민원을 거부했다고 해서 교원들이 피해받지 않는 제도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현수 교수의 글 전문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오래된 역설 중 하나는, 다수가 침묵할 때 격렬한 소수가 실질적 결정권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학교가 소풍을 포기하고 동네 소아과가 진료실 문을 닫는 한국의 풍경은 단순한 '진상 민원'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발언의 비대칭(asymmetry of voice)이 공적 영역을 잠식하는 구조적 현상이며, 그 끝에서 가장 약한 시민들이 먼저 중요한 권리를 잃어버리고 만다.
소풍 가지 말자, 승패 가리지 말자라는 몇 명의 학부모와 부작용으로 인해, 또 의사를 옷 벗기겠다는 그 몇 명의 보호자, 즉 괴물 부모와 괴물 보호자는 대부분 소수이며 다수가 아닌데, 이들의 민원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으로 인해 그들의 불만 효과가 극대화될 때까지 집단 전체가 상처받아야 하는 형태의 공격에 우리가 휘청이고 있다.

올슨(Mancur Olson)이 일찍이 『집단행동의 논리』에서 지적했듯, 비용이 다수에게 분산되고 이익이 소수에게 집중될 때 소수는 조직되고 다수는 흩어진다. 악성 민원은 이 논리의 정서적 변형이다.

한 학부모의 분노는 집중적이고 즉각적이지만, 소풍을 기다리던 서른 명 아이의 실망은 분산적이고 지연적이다. 한 보호자의 위협은 진료실 하나를 정지시키지만, 그곳에 다니던 수백 명 환자의 안도와 감사는 좀처럼 행정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시스템은 합리적으로—그러나 비겁하게—소수의 분노를 회피하는 쪽으로 기울고, '방어적 행정(defensive administration)'이 그렇게 자라난다.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는 한병철이 말한 성과사회의 그림자이자 에바 일루즈가 지적한 정서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공적 서비스는 점차 '고객 만족'의 언어로 재편되었고, 시민은 권리 청구자에서 서비스 소비자로 변모했다. 그 사이 돌봄과 교육에 종사하는 이들의 전문적 재량과 권위는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는 이름 아래 끝없이 축소되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전문성은 결국 도주한다. 소아청소년과의 연쇄 폐업과 교사의 업무 기피와 조기 퇴직은 그 구조적 도주의 통계적 표현이다.

이 소수에 대한 원칙을 세우는 리더쉽과 다수를 약진하도록 돕는 사회규범이나 분위기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이들의 의도대로 되어버리고 말고, 지금 그렇게 되고 말았다.
지혜로운 해법은 세 층위에서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첫째, 절차적 방패가 필요하다. 모든 민원을 동등한 무게로 처리하는 시스템은 결국 가장 시끄러운 자에게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다. 영국 NHS의 악성 민원 정책(vexatious complainant policy)이나 일본의 학교 민원 분류 체계처럼, 반복적이고 근거 없는 민원을 공식적으로 식별·분리·종결하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시민의 발언권을 막는 것이 아니라, 발언권의 남용으로부터 발언권 그 자체를 지키는 일이다.

둘째, 돌봄의 윤리(Joan Tronto)를 제도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돌보는 자는 누가 돌볼 것인가?" 교사·의사·사회복지사를 향한 폭언과 위협은 개인 간의 사적 분쟁이 아니라 공적 시스템에 대한 공격으로 재규정되어야 한다. 교권보호법,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 사회복지사 보호 입법은 직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공공성을 떠받치는 인프라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돌봄 노동자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면서, 그들이 공격받을 때는 개인의 감정노동으로 처리해 왔다.

셋째, 더 근본적으로 '잃어버린 다수'의 목소리를 복원해야 한다. 침묵하는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소풍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침묵하는 환자들이 "동네에 소아과가 남아있기를 원합니다"라고 집단적으로 말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형식화된 학교운영위원회의 실질화, 지역 의료 공론장, 시민이 공적 서비스를 함께 옹호하는 풀뿌리 인프라가 그것이다. 다수의 침묵은 동의가 아니라 조직되지 못한 욕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호네트(Axel Honneth)는 모든 분노의 밑바닥에는 인정받지 못한 상처가 있다고 보았다.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이들의 배후에도 종종 무시당해 왔다는 깊은 좌절이 자리한다. 그 상처는 마땅히 경청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정 욕구가 모든 타인의 기본 권리를 인질로 잡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란 다수결이 아니라, 모든 목소리에 합당한 무게를 부여하는 기예다.

그 균형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잃는지 우리는 이미 보고 있다—소풍과 운동회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 진료실을 찾지 못해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가 그것이다. 사회 균형을 회복하는 일, 그것이 지금 시민과 정책결정자 앞에 놓인 과제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질문이 "요즘 아이들의 소풍과 운동회를 방해하는 민원인들에 대해 어떤 대책이 있나요"로 물었다면,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교사들의 분노를 덜 촉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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