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 받고도 "불공정"... 교실에서 사라지는 협력의 가치
[서부원 기자]
내가 가르치는 과목의 수행평가는 줄곧 모둠활동 방식이다. 주제를 던져주고 서로 토론하게 하는 것이다. 각자의 주장을 말하고, 그 주장들에 공감하고 반론하는 과정을 일일이 메모하게 한 다음, 다수가 동의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한 장의 보고서로 제출하게 한다.
수행평가는 수업 시간에 한정해 실시한다. 방식은 미리 안내되지만, 주제는 당일 공개된다. 주제를 미리 알게 되면, 사전에 준비해 와서 소정의 양식에 그냥 '옮겨 적을' 게 뻔해서다. 핵심은 아이들끼리 제시된 주제에 대해 한 시간 동안 각자의 생각을 나누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모름지기 교육이란 교과를 매개로 한 교사와 아이들 간, 아이들 간 상호작용이라고 믿고 있다. 상호작용의 고갱이는 대화와 타협, 토론이며, 주입식의 일방적인 강의는 제한적인 수단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눈'과 '귀'보다 '입'을 열게 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AI가 인간의 노동은 물론, 뇌까지 지배하게 될 거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는 시대다. 그럴수록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특정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중요하다. 대화나 토론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다. 학교생활 중 그럴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10여 년 전부터 평가든 수업이든 웬만하면 함께 지혜를 나누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계해 온 이유다. 특히 역사는 과거 선조들이 살아온 이야기일진대, 아이들의 '입'을 트이게 하는 데 제격인 교과다. 수업이 평가이고, 평가가 수업인 게 가장 좋은 교육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우격다짐으로 이러한 방식을 이어오곤 있지만, 장애물이 한둘 아니다. 우선, 이른바 '버스 타는' 아이들이 나날이 많아지고 있다. 모둠활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경우다. 돌아가며 자기의 주장을 내놓아야 하지만, "잘 모르겠다"는 말만 되뇌며 뒤로 빠지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겐 모둠활동이 번거롭기만 하다. 수업은 물론, 평가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지필평가에선 그냥 한 줄로 찍고, 수행평가 때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무기력한 아이들이 늘어만 간다. 그들만을 위한 교육 방식을 고민해 보지만, 일개 교사로서 너무나 힘든 과업이다.
그들을 소 닭 보듯 하며 애초 모둠활동에서 배제하는 나머지 아이들의 시선도 문제다. 공부에는 담을 쌓은 아이에게 관심을 쓰는 시간이 아깝다며 대놓고 말하는 그들의 강퍅한 모습이 두렵기까지 하다. 모둠을 편성할 때부터 '믿고 걸러야 할 명단'이 거론되는 풍경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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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둠활동은 아이들에게 불공정의 또 다른 이름이 되어가고 있다. |
| ⓒ AI 생성 이미지 |
아이들의 주장은 일점일획 틀린 게 없다. 다만 그들이 강조하는 '태도'와 '기여도' 등을 판단하는 기준이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토론 과정에서 무시로 튀어나오는 말들의 주제와의 관련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죄다 평가 기준에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둠활동을 곁에서 지켜보는 교사의 '주관'이 평가 과정에 개입되는 건 불가피하다. 교사의 눈으로 누가 적극 참여했는지, 누구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지, 누가 요점을 잘 정리했는지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활동을 '증명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적극성'과 '설득력', '잘'의 기준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모둠활동 내내 딴청을 피워놓고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우기는 아이들 앞에선 속수무책인 셈이다. 점수가 깎인 이유를 설득하기란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모둠활동조차 개인별 평가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입시 중심 구조의 한계
교육이 대입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내신 성적이 대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평가는 철저히 개인적으로 제한된다. 현행 대입 제도 속에서 평가는 '서열화'를 전제로 한다. 합불 방식의 절대평가조차 순서를 매기기 위해 온갖 기상천외한 방식이 고민되고 있는 줄 안다.
온존한 학벌 구조가 절대평가 체제와 상극이듯, 모둠활동 방식의 수행평가도 현행 제도와 어울리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지필평가든 수행평가든 무조건 점수와 등급 차이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변별력 확보'가 대한민국 교육의 지상 과업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여담이지만,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고1과 고2는 내신 성적이 5등급으로 평가된다. 이전의 2015 개정 교육과정 체제에서는 9등급제였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대로라면 절대평가를 시행해야 했지만, 기존의 대입 제도를 고려한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 선택이었다.
지금 고1, 고2의 교실마다 난데없는 '등급 환산표'가 게시되어 있다. 현행 5등급제와 과거 9등급제를 대조해 설명하고 있다. 절대평가 체제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시점인데도, 여전히 일선 학교는 대입과 연동된 상대평가의 질곡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자신과 비교할 사람은 옆 친구가 아니라 어제의 자신이라고, 오늘의 점수보다 내일의 그것이 나아졌다면 자신의 학업성취도가 향상된 거라고 아무리 외쳐 봐야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되레 이렇게 반문하기 일쑤다. "그렇게 여기면 누가 명문대에 보내 주나요?"
절대평가의 필요성과 딜레마
새삼 깨닫게 된다. 모둠활동 방식의 수행평가를 위한 전제 조건은 개인별 점수와 등급에 연연하지 않도록 하는 절대평가 방식의 전면 도입에 있다. 적어도 수행평가의 반영 비율을 낮추거나 등급 간 격차를 최소화하면, 교사의 '주관'이 개입됐다며 성토하는 목소리도 잦아들 거다.
물론, 이게 근본적인 대안일 순 없다. 수행평가의 반영 비율과 중요도가 낮아지는 순간, 반대로 지필평가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지필평가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수행평가를 무력화하는 일이다. 수행평가는 과정 중심의 교육을 지향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교육청에서도 서술형 지필평가와 함께 수행평가의 반영 비율을 높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교육의 본령에 부합한다는 거다. 하지만, 자녀의 성적에 대한 학부모의 민원 등 그로 인한 온갖 부작용은 일선 학교에서 '슬기롭게' 대처하라고만 한다.
수행평가를 도입한 교육적 취지를 살리되, 민원의 소지가 없도록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라는 거다. 현행 대입 제도 속에서 이게 얼마나 황당한 지시인가는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민원의 소지를 없애려면, 아예 개인별 지필평가 방식을 원용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모둠활동 방식의 내 수행평가를 두고 교육의 본령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하고 싶진 않다. 다만, 각자도생의 무한경쟁에 함몰된 가엾은 아이들에게 숨통이라도 틔워줄 요량이었는데, 또다시 공정하지 않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모둠활동을 폐지하자는 아이들까지 있다.
모두가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에 모둠에 100점을 줬는데도, 그마저 문제 삼는 한 아이의 모습에 솔직히 당황했다. 토론을 주도하고 보고서도 작성한 자신이 100점을 맞는 건 당연하지만, 모둠원 모두 100점인 건 공정하지 않다는 거다. 자기보다 '덜' 적극적이었다는 뜻이다.
모둠활동 내 '참여도'와 '기여도'를 아이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농담 삼아 그들에게 그 기준을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자못 충격적인 답변을 들었다. 등수대로 점수를 주는 게 가장 공정하다는 거였다. 여기서 등수란 지필평가의 석차를 말한다. 곧, 지필평가가 공정하다는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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