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기 싫은' 세대의 등장, 이 맥주들이 심상치 않다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 2026. 5. 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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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샘의 맥주실록] 2025년 맥주 시장 리뷰와 2026년 생존 전략

[윤한샘 기자]

2025년은 국가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힘을 쏟았던 시기였다. 하반기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무너진 공직 기강을 다시 세웠으며,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염원 속에 한 해를 갈무리했다.

그러나 내수 시장은 내란의 격랑 속에서 한없이 가라앉았다. 물가와 고금리라는 경제적 악재에 더해, 정치경제적 불확실성과 소비 심리 위축의 여파가 2025년 시장 전반에 짙게 드리웠다. 자영업, 소상공인들은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고 호소했다.

통계청 소매 판매액 지수에 따르면 2022년 0.2% 반짝 상승했던 소비는 2023년 -1.4%, 2024년 -1.0%로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2025년에는 살짝 반등할 것으로 전망되나, 체감 소비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오비맥주 등 한국을 대표하는 14개 맥주 회사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국내 맥주 시장은 트렌드와 시장 상황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맥주 시장 규모는 매출액 기준 약 3조 1000억 원대로 집계되었다.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등 국내 대형 제조사가 약 2조 6000억 원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롯데아사히, 하이네켄을 필두로 한 수입 맥주가 약 4200억 원으로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어 한울앤제주(구 제주맥주), 카브루 등 수제 맥주 시장이 약 570억 원, 기타 소규모 브루어리가 약 300억 원 규모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편, 출고가 기준 한국 맥주 시장 규모는 약 5조 원 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구체적인 매출과 손익을 추정할 수밖에 없는 소규모 맥주 카테고리를 제외하면 영업이익을 달성한 기업은 6개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8개 기업은 규모에 상관없이 적자를 기록했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맥주 등이 진열되어 있다.
ⓒ 연합뉴스
정체기에 빠진 국내 대기업 맥주

국내 맥주 시장의 80% 이상을 과점하고 있는 대형 주류 3사(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조차 이러한 거대한 파도를 피하지 못했다. 업계 1위 오비맥주의 매출은 약 1조 778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 상승했으나 영업이익은 전기보다 약 3460억 원에 그치며 200억 원가량 줄어들었다.

반면, 하이트진로는 맥주 부문에서 지속적으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매출은 전기 대비 8% 하락해 약 7580억 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전년 약 343억 원에서 무려 74.8%나 떨어진 약 86억 원에 그쳤다. 기대했던 켈리가 성장하지 못했고 테라는 카스 대비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맥주 부문은 존폐를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매출이 무려 33%나 떨어져 570억 원에 불과하다. 새로 출시한 클라우드 크러시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곰표밀맥주 OEM 또한 무산되며 공장가동률이 크게 떨어졌다. 이런 여파로 지난해 말, 롯데는 클라우드 생맥주 단종을 발표하기도 했다.

오비맥주 매출 상승은 수입 맥주였던 버드와이저, 스텔라 등을 국내 생산으로 전환하며 환율 리스크 및 유통 비용을 줄이고 공장 가동률을 늘린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영업이익 측면에서 내수 침체와 원 재료 가격 상승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음주 문화의 변화다. 수년 전부터 'MZ'세대를 주축으로 확산된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열풍은 주류 시장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즐거운 건강 관리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음주와 숙취는 기피 해야 할 요소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과거 '소맥'과 '노래방'으로 대표 되던 강압적 회식 문화가 사라지고, 점심 회식이나 문화 공연 관람 등으로 대체되면서 기성 맥주 시장의 성장은 한계에 직면했다. 이러한 소비 지형의 변화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의 소주 부문 매출에서도 고스란히 증명되고 있다.

여전히 길을 헤매는 수입 맥주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맥주박람회&드링크 서울'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수입 맥주 시장은 여전히 일본 맥주들이 주도하고 있다. 2025년 약 1056억 원의 매출을 달성한 롯데아사히주류는 전년 대비 실적이 소폭 하락했음에도 견실한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삿포로를 수입 유통하는 앰즈베버리지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매출 약 660억 원을 기록하며 2024년보다 무려 49%나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3년 전 위생 논란으로 부침을 겪었던 칭다오(비어케이)는 2025년 매출 약 410억 원, 영업이익 약 12억 원을 달성하며 마침내 반전을 이루어냈다.

반면, 한때 수입맥주 대장주였던 하이네켄은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5%나 줄면서 약 850억 원에 그쳤으며, 영업이익 또한 약 5억 8000만 원 적자를 기록했다.

수입맥주의 부진은 유흥 시장의 부진과 맞물려있다. 과거와 달리 국내 맥주 시장은 가정용 시장과 유흥용 시장이 '7대3'으로 역전되었다. 회식 문화 변화와 고물가로 외식이 줄고 '혼술' 문화가 대세가 된 탓이다.

상대적으로 수익이 높은 유흥용 시장이 줄어들면서 수입 맥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편의점 채널은 덩치를 키워줄지는 몰라도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거기에 높은 환율이 끊임없이 수입사들을 괴롭히고 있다.

향후 승부처는 탄탄한 팬덤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 충성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가 싸움보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가 지닌 서사와 철학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에 맞춰 브랜드를 선택하는 요즘 소비자의 특성을 고려할 때, 보이지 않는 이미지가 가장 강력한 판매 포인트로 자리 잡을 것이다.

수제 맥주의 씁쓸한 현실

2025년 수제맥주 시장은 매출액 기준으로 외형 상 약 570억 원 정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상은 처참하다. 수익을 낸 회사는 카브루가 유일하며 한때 이 시장을 호령 했던 대다수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와 수익성 악화에 직면해 있다.

유니콘 기업으로 선정되어 코스닥까지 상장했던 한울앤제주(구 제주맥주)는 현재 90% 감자를 하며 주식 거래가 정지된 상태이며, 세븐브로이는 법정 관리 중이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역시 얼마 전 파산을 하며 파국을 맞았다.

플래티넘은 매출 약 79억 원, 영업이익 약 1억 원을 남겼지만, 이자 비용 등으로 약 5억 3000만 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약 31억 순손실을 기록했던 2024년에 비하면 회복 추이에 있지만, 지속 가능성은 두고 봐야 한다.

한때 편의점 납품에 주력하며 화려한 날을 보냈던 수제 맥주는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진행했던 과도한 설비 투자가 발등을 찍은 결과다. 선반 한 구석을 채워줄 한두 업체를 제외하면 당분간 부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5년 전부터 지금을 예견했지만, 현실이 되니 씁쓸할 따름이다.

빈틈을 채우는 소규모 맥주 양조장들

소규모 양조장들에게도 2025년은 가혹한 한 해였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곳들이 부지기수인 가운데, 약 300억 원 규모의 작은 시장 내에서도 매출 약 10억 원 내외의 '안정권'과 5억 원 미만의 '영세권'으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매출 10억 원 이상을 유지하는 곳들은 대부분 확실한 자체 유통 채널을 가지고 있다. 자사 맥주를 직접 판매함으로써 유통 마진을 줄이고, 이를 통해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브루펍' 역시 큰 성장은 어려울지라도, 고정 수요를 기반으로 한 생존 가능성 측면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반면 유통 중심의 양조장들은 위탁생산(OEM)을 통해 가동률을 끌어올리거나, 증류주 등 전통주 같은 외연 확장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소비자는 유행에 민감한 2030 얼리어답터들이다. 비록 시장 규모는 작을지라도, 브랜드 정체성에 열광하고 꾸준한 지지를 보내는 이 핵심 타깃층이 소규모 양조장의 실질적인 버팀목이 될 것이다.

소비자의 취향을 잡아라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맥주박람회&드링크 서울'에서 부스 관계자가 맥주 시음을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맥주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거시적으로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며 주요 맥주 소비층인 20~40대 연령대 감소가 눈에 띈다. 잠재 소비층의 축소는 경쟁이 치열해짐을 의미한다. 특히 오비맥주, 하이트진로처럼 대중 맥주 시장에는 치명적인 부분이다.
미시적으로는 앞서 언급했듯 '헬시 플레저'로 대변되는 음주 문화 변화를 들 수 있다. 2~30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취하지 않는 문화'는 무알콜 맥주 시장의 성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2022년 약 200억 원 정도에 머물렀던 이 시장은 2024년에는 700억 원까지 껑충 뛰었고,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회식 감소와 혼술 문화가 주류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며 음주 자체의 빈도와 양이 줄어드는 구조적인 변화가 현재 진행 중이다.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맥주박람회&드링크 서울'에서 부스 관계자가 무알콜 맥주 시음을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초개별화 시대(hyper-personalization)' 또한 맥주 시장의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제 맥주는 대중 마케팅에서 벗어나 개인 취향을 공략하는 개별화 마케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구 구조의 변화와 소비 트렌드의 이동은 거스를 수 없는 구조적 전환이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등 기성 제조사들 역시 독과점에 안주하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사히, 삿포로, 기린 같은 일본 브랜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랜 전통과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지역적 특색과 원 재료의 다양성을 살린 맥주를 장기적으로 출시해야 이 위기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수입 맥주 회사들은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을 키워내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를 찾아 전용 잔으로 음미하는데 기꺼이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이런 소비자에게 중요한 건, 맥주를 완벽하게 서빙하는 판매자의 퀄리티다. 각자 브랜드가 지닌 뾰족함을 발견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전문 펍 또는 특정 브랜드 위주의 '타이드 펍(tied pub)'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소규모 맥주 양조장들은 D2C(Direct to Customer : 업체가 직접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 채널을 강화하고 니치 마켓(틈새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 프리미엄은 가격 장벽을 낮춘다. 브루펍이나 자체 운영 매장을 통해 자생적인 생존 기반을 구축하고, 고객과의 접점을 탄탄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시장 규모가 줄어들수록 가장 중요한 가치는 결국 정체성이다. 진열되면 마시는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는 '누가, 언제, 어디서' 내 맥주를 좋아하는지 자세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춘 전략이 필요하다. 강력한 브랜드 충성도만이 불확실한 시장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다.

2026년, 모두 건투를 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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