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처럼 살았던 아들"... 이태원 참사 의인 아버지의 눈물

이진민 2026. 5. 2.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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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인 떠나보낸 유족...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로 힘들어해, 병원 치료 어려워했다"

[이진민 기자]

 이태원 참사 당시 희생자 구조를 도왔던 상인의 발인이 2일 오전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 이진민

"평생 저한테는 내가 가진 힘을 사회에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꿈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그런 사람이었구나. 내 자식이, 내 꿈처럼 살았던 거구나…"

아버지는 울었다. 의인의 이름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앞에서 울었다.

2일 이태원 참사 당시 희생자 구조를 도왔던 30대 청년 상인 백아무개씨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이날 오전 8시 20분,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백씨 발인식에 모인 유족들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백씨의 맑은 미소가 담긴 영정 사진은 그의 조카 손에 들렸다. 운구차에 오르기 직전, 한 유족은 무릎을 꿇고 그의 사진을 바라봤다.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뒤돌아 우는 이들도 있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희생자 구조를 도왔던 백씨는 지난달 29일 경기 포천시 왕방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열흘 전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고인의 빈소 앞에는 이태원 상인들과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참사 유가족이 보낸 근조화환이 놓여 있었다.

유족과 조문객들은 오전 8시 37분께 운구차 앞에서 묵념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닦았고, 아버지는 말없이 고인의 관을 응시했다. 멀찍이 눈물을 흘리며 고인을 배웅하는 이들도 있었다. 발인식 현장에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울먹이는 조문객들이 있었다.

고인이 남긴 말… "모든 상황이 내 책임 같다"

 이태원 참사 당시 희생자 구조를 도왔던 상인의 2022년 10월 29일 참사 당시 모습. 고인 아버지의 휴대폰에 담겨있다.
ⓒ 이진민

고인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모티브가 된 주점을 운영했다. 참사 당일 해밀톤 호텔 인근 가게에서 일하던 그는 즉시 사고 현장으로 갔다. 건장한 체구였던 고인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희생자들을 옮겼다. 참사 이후 텅 빈 이태원을 지켰지만, 2024년 가게는 끝내 폐업했다. 고인의 아픔은 깊어졌다.

고인의 아버지 백씨는 <오마이뉴스>에 "당시에 아들이 장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며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 믿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아들은 참사의 고통으로 아파했다. 백씨는 "아들이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했지만, 말하지 않아도 고통이 느껴졌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 당시 희생자 구조를 도왔던 상인이 남긴 피해 진술 기록 일부. 이태원 참사 피해자 구제 신청 과정에서 제출한 내용이다.
ⓒ 이진민

참사 이후 고인이 작성한 피해 기록에는 '모든 상황이 나 자신의 책임 같고, 충격이 가시지 않아 삶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었다'는 내용이 있다. 가게 운영을 위해 이태원 근처에서 자취하던 고인은 극단적 시도를 한 적도 있었다. 그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이태원 참사 피해자로 공식 인정돼 국가 트라우마센터 상담 지원 대상이었지만, 가족에게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백씨는 "아들이 '나를 환자 취급하냐'고 반응하며 참사 트라우마 때문에 병원에 가기 어려워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1년간 트라우마센터에 전화 상담을 통해 아들의 상황을 알렸다. 그는 "아들이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누가 증언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나라도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전화했다"고 전했다. 다만 백씨는 센터 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느꼈다.

백씨는 고인이 "항상 착하고 성실했던 아들"이었다며 "항상 각자가 가진 힘과 재능을 사회에 나눠야 한다는 꿈을 가졌었는데 돌이켜보니 내 아들이 그런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 꿈처럼 내 아들이 살아왔다. 그런 사람으로 사회에 기억됐으면 한다"고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의 어머니는 "너무 착하고 마음이 여린 아들이었다"며 "겁도 많은 아들이 (마지막 순간에) 혼자 있었다는 것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얼마나 무서웠겠냐"고 눈물을 보였다. 이어 "너무 착해서 친구나 후배들을 만나면 항상 밥을 사주곤 했고, 평소 본인이 손해를 입더라도 그냥 넘어가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대한성공회 자캐오 신부는 "지난해 고인과 대화했을 때 '참사 피해자분들과 유족분들께 죄송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돌아봤다. 그는 "트라우마를 겪는 참사 피해자는 스스로 상담시설을 찾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참사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해 피해자와 일상에서 함께하며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 당시 희생자 구조를 도왔던 상인의 발인이 2일 오전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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