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대륙 종단하는 '시간 부자' 37세 인류학자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기자말>
[이안수 기자]
세바스티안 파차카마씨는 에콰도르 출신의 37세 인류학자이다. 그는 에콰도르 가톨릭대학교에서 '안데스 사회 연구'를 전공하고 주로 역사·문화 관광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안정된 직업 대신 단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삶을 꾸리고 있다. 키추와족(Kichwa) 원주민인 그는 자전거로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각 지역의 다른 원주민들의 삶을 만나고 책과 강의실에서만 보았던 각지의 고대 유적을 직접 만나고 있다.
그는 사포텍 고대 유적 몬테 알반을 방문하기 위해 3일간 우리가 머물고 있는 호스텔에서 머물렀다. 그는 24살 때인 13년 전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 남미의 남단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까지 8개월 동안 자전거로 안데스를 종단했다. 우수아이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집으로 돌아갈 돈조차 바닥났기 때문에 고락을 같이한 자전거조차 팔아야 했다. 이로써 그는 모험에 대한 욕구가 채워졌다고 여겼다.
하지만 모험에 대한 열망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5년 후 키토에서 다시 그 불씨가 살아나 알래스카까지 중미와 북미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일과 병행하기 위해 프로젝트가 없는 기간만 여행해야 했기에 몇 개 구간으로 나누어 여행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출발을 가로막았던 코로나 팬데믹이 해제된 해인 2023년 8월 고향인 아마구아냐를 떠났다.
원주민 인류학자의 대륙 종단
콜롬비아 보고타까지 1차 구간을 수행하고 2024년 1월에 보고타에서 남아메리카 대륙의 최북단 지점인 푼타 갈리나스까지 2차 구간을 마쳤다. 이번이 파나마시티에서 멕시코시티까지의 세 번째 구간 여행이었다. 그 후 사정에 따라 적절하게 구간을 나누어 알래스카까지 가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나는 알래스카 최북단인 프루도 베이에서 아르헨티나 최남단 우수아이아까지 종단 중인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나곤 했다. 그들은 대부분 미국과 캐나다인 등의 북미 젊은이들이거나 유럽인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간혹 한국 여행자도 만난다. 그러나 아메리카 종단의 여정에 정작 중·남미에 살고 있는 사람은 잘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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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를 점검하고 있는 원주민 인류학자 세바스티안 파차카마. 자전거로 답사한 아메리카의 문명과 삶의 현실에서 그동안 Pan-American Bicycle Route를 도전한 북미·유럽 자전거 여행자들과는 다른 시각을 들을 수 있었다. |
| ⓒ 이안수 |
"그렇긴 하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욕심을 좀 줄였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도, 반려동물도 없다. 일도 정규직이 아닌,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회적 조건으로 보면 나는 더 가난한 편에 속한다. 대신 내 시간에서 더 부자이므로 유연성이 남들보다 많다."
- 그럼 자전거 여행이 전공의 현지 조사나 실지 조사도 겸한 것인가?
"물론이다. 지금까지 내 행선지는 고대 문명과 현대 문명 모두에게 중요한 지역들이다. 페루와 볼리비아 같은 남미 지역에서 많은 고고학 유적지를 방문했고, 이번 북쪽으로 향하는 여정에서는 과테말라의 티칼과 유카탄반도의 치첸이트사, 팔랑케 등을 방문했다. 오늘은 몬테 알반을 살피고 왔다. 그동안 고고학 수업에서 책과 사진으로 접했던 곳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대학 시절부터 이어온 탐구가 1차 완성되는 기쁨이 있다."
- 현재 어느 분야에서 활동하는가?
"주로 역사·문화와 관광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과 함께 지방 정부나 시 의회 같은 공공 기관들을 위해 잊힌 장소들을 되살려 관광 분야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 왜 자전거를 탐험의 도구로 택했나?
"내게는 아주 복잡한 질문이다. 첫 출발을 했던 13년 전과 5년 전, 그리고 현재 등 질문을 받는 시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한 많이 세상을 알고 싶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삶이 알고 싶다. 고대 사회 문화 연구를 전공한 것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알래스카에서 우수아이아까지의 루트를 시작할 때 '가능한 한 내 몸을 사용한다면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근 몇 구간, 몇 년의 여행에서, 특히 이번 시즌의 여행은 점점 더 느려지고 있다. 예컨대 과테말라에서 험준한 지형 때문만이 아니라 시골의 작은 마을에 더 오래 머물면서 단순히 보는 것 이상으로 그곳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천천히 여행하는 것의 효용을 확신하게 되었다."
- 체류지에서 제일 큰 관심사는?
"신앙과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문화적 관습의 시원이다. 나는 에콰도르의 원주민 공동체 출신이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원주민들이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지, 그리고 에콰도르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 당신이 속한 원주민 공동체는? 지금까지 관찰한 유사점과 차이점을 하나 꼽는다면?
"'키추와족(Kichwa)'이다. 안데스 지역을 중심으로한 잉카 제국의 주된 민족이자 언어 집단인 케추아(Quechua) 언어군에 속하는 키추와 언어를 사용한다. 페루에도 케추아 토착민 집단이 있는데, 관찰한 바로는 차이점보다 여전히 공통점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남미 다른 나라에서도 나를 외국인으로 보지 않았다. 페루에서는 페루 사람으로, 볼리비아에서는 볼리비아 사람으로 보았다. 남미 뿐 아니라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안타깝게도 불평등, 심각한 자원 부족, 매우 낮은 삶의 질과 관련된 것들이다."
- 원주민의 불평등을 얘기했는데 내가 매일 목도하는 것 중 가장 안타까운 점이다.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제대로 된 교육과 식생활의 결핍 속에서는 미래가 보장될 수 없다는 현실의 증거이다. 이 차별은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부터 이어져 온 문제이다. 당시 문명 간에 차별이 존재했고, 이 차별은 계속 반복되어왔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른바 '해방'이 있었지만 원주민들에게 실제 독립은 주인이 바뀌거나 패턴이 변한 것에 불과했다. 독립 전쟁 이후 첫 국가들이 탄생했을 때도 원주민들의 실상은 최소한의 변화조차 없었다."
기본적인 장비만 가지고 떠난 자전거 여행
- 13년 전 키토(Quito)에서 우수아이아(Ushuaia)까지의 여행으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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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가 목도한 원주민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차별과 빈곤이었다고 한다. 자원이 턱없이 부족해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현실이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
| ⓒ Sebastian Pachacama |
"나는 2850m의 고원에서 자랐기 때문에 고도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다. 훨씬 젊었을 때라 체력도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이번에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마주한 매우 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아서 더 큰 도전이었다. 아침 일찍 활동을 시작해 낮의 강한 햇빛을 피하는 방법으로 습관을 바꿔야 했다. 과테말라의 높은 산의 가파른 경사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 더 어려웠다. 중앙아메리카에도 산이 많다는 것을 몰랐었다."
-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들려달라.
"페루에서였다. 여느 때처럼 작은 마을에 도착해 성당을 찾았고 캠핑을 허락 받기 위해 신부님께 갔다. 당시 신부님은 마을 아이들과 함께 계셨는데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와 "선생님은 그린고(Gringo : 멕시코와 중미에서는 미국인 여행자나 이주자를, 남미에서는 미국인·유럽인을 포괄하는 외국인을 지칭하는 말)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자전거로 여행하세요?"라고 물었다. 그 아이는 자전거 여행자들은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만 봐왔던 터라 남미 사람이 자전거로 여행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주 생소했던 거다. 신부님이 내게 짧은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그러니까 나처럼 에콰도르 출신이나 남미 출신이라도 자전거로 여행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꿈도 꿀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도록 말이다."
- 가슴 아픈 얘기이다. 어떤 얘기를 해주었나?
"당시 나는 모자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광장에서 엽서로 팔곤 했다. 그 사진들을 모두 꺼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사진 속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할 장소들을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흥미 있는 세계 어느 곳도 갈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내가 원주민 공동체 출신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내 이름을 구체적 예로 들었다. 내 성 파차카마( Pachacama)는 케추아어 성씨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이 성을 가진 사람들은 에콰도르보다 페루에 더 많다. 그들은 내 성을 알고 "와, 우리랑 똑같네"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서로 공감대가 형성됐고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원주민 마을에서 아들처럼 환대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그런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단순히 내 외모 때문만이 아니라 어리게 느껴졌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텐트 칠 곳을 물으면 마당을 내어주는 대신 자신들의 침대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음식을 내어주었다. 다시 길 떠날 때는 음식을 챙겨주었다. 이런 환대는 안데스 지역 뿐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매우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은 항상 여행자에게 음식을 비롯한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한다."
- 적도에서 '세계의 끝(El Fin del Mundo)'이라 불리는 남극의 관문까지 간 뒤의 감정은?
"그전에는 내가 가장 빠른 사람도, 가장 멀리 가본 사람도, 가장 오래 달린 사람도 아니었다. 그 순간 만큼은 몇 가지 한계를 넘어선 사람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작은 흥분을 느꼈다."
- 어떤 방법으로 돌아갔나.
"잠시의 흥분에서 깨어나자 마침내 그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돌아가지?'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 답이 없는 상태로 시내를 자전거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내게 다가오더니 자전거를 팔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사실 자전거를 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락을 같이한 그 자전거와 헤어지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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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토(Quito)에서 8개월 만에 도달한 우수아이아(Ushuaia). 그는 집으로 돌아갈 경비를 마련하기위해 고락을 같이한 이 자전거를 팔아야했다. |
| ⓒ Sebastian Pachacama |
"여행 전에 어느 정도 지식과 정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더 많은 준비는 길 위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만들어진다. 그러니 시작이 어려운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포기하기보다는 일단 시작하고 진행하면서 배워가는 것이 훨씬 낫다."
답 대신 질문이 더 많아진 여행
- 여행자에게 국경을 넘는 문제는 늘 신경 쓰이는 문제다. 지금까지 국경에서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나?
"니카라과에서 2번 입국을 거절 당했다. 이런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로 중앙아메리카 여행의 일부를 건너 뛰어야 했고 이 여행의 연속성이 훼손된 것이 조금 힘들었다."
- 미국과 캐나다 코스가 남았다.
"그 구간은 사실 내게는 매우 도전적인 경험이 될 것 같다. 좀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미국은 태평양 연안을 따라 올라가고 캐나다에서는 좀 더 내륙으로 들어가 볼 예정이다."
- 어떤 면에서 도전이 필요할 것 같나?
"북미 특히 미국에서는 불법 이민 문제로 인해 라틴계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낙인이 생겼다. 그게 내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다. 특히 자전거로 여행할 경우,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은 사람으로 보일 가능성이 더 커질 것 같다. 경찰이 자주 서류를 요구할 것이고 문제를 피하기 위해 계속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반면 캐나다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원주민 권리 측면에서도 가장 발전된 국가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엄격한 이민 정책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에콰도르에서 미국으로 간 합법적, 혹은 비합법적 이민자들은 대부분 원주민 출신이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 어쩔 수 없이 이민을 가야만 했다. 합법적인 방식이 안되면 불법적인 방식으로라도. 트럼프의 정책으로 그들의 상황이 훨씬 더 힘들어졌으며 추방되어 에콰도르로 돌아온 지인도 있다."
그는 자전거 여행을 통해 의문에 답을 얻고자 했지만 오히려 질문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세상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때로는 더 나빠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회복 탄력성을 믿는다. 과테말라 안티구아가 그 증거로 본다. 긴 역사 동안 지진, 화산 폭발, 산사태 등 상상하기 어려운 재난으로 파괴되었지만 또다시 일어나곤 했다.
13년에 걸친 그의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체 게바라가 의학도 시절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낡은 오토바이 라 포데로사(La Poderosa)를 타고 남미를 여행한 기록이다. 이 여정에서 체는 광산 노동자와 농민들의 열악한 현실과 사회적 불평등, 빈곤을 직접 목격했고, 훗날 혁명가로 변모하는 단초가 된다.
세바스티안 또한 자전거 위에서의 사유와 각성이 원주민 공동체에게 희망의 출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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