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값 아끼려고 벌인 일인데 부모님 운동도 시키네요

손보미 2026. 5. 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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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 병아리 데려온 지 3년... 계란 자급자족 넘어 활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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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기자]

얼마 전 주말을 맞아 시골에 있는 부모님댁에 다녀왔다. 집 앞 밭에 갖가지 모종(방울토마토, 고추, 애호박 등)이 푸릇하게 심긴 모습을 보니 봄이 진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실에 가방을 두고 곧장 발길이 향한 곳은 3년째 부모님과 동거(?)중인 청계들이 있는 닭장.

막 모종심기를 끝낸 엄마는 내 옆으로 와 핸드폰 갤러리를 열어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집에 있던 나무를 아예 베어버릴까 하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닭들을 위해 밑동을 남겨두었다고 한다. 거기에 나무토막을 얼기설기 쌓아두었더니 닭들의 놀이 기구가 되었다나 뭐라나. 고양이에게 '캣타워'가 있다면 우리집 닭들은 '치킨타워'가 생긴 셈이다. 100% 수제 치킨타워!

처음 계란을 꺼내던 날
▲ 치킨타워 고양이에게 캣타워가 있다면 여긴 치킨타워가 있다.
ⓒ 손보미
그렇게 한참 닭들을 구경하다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네가 계란 꺼내볼래?"

매번 본가 다용도실에서 계란을 꺼내 프라이를 해 먹은 적은 있어도, 부모님이 택배로 보내준 청계란을 냉장고에 정리한 적은 있어도 직접 닭장에 들어가 꺼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닭이 쪼면 어떡해?"
"엄마랑 같이 들어가면 괜찮다."
▲ 알을 낳아요 깊이가 좀 있는 고무대야는 알을 낳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 손보미
설렘 반, 걱정 반. 아빠가 설치해놓은 삐그덕대는 문을 열고 닭장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뺙뺙 소리를 내며 활기차게 놀고 있는 닭들과 다르게 안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알을 낳는 부화 장소는 총 3군데, 그중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곳을 들여다보니 닭 한 마리가 미동 하나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높이가 꽤 되는 고무대야에 지푸라기를 폭신하게 깔아둔 그곳은 한 마리가 쏙 들어가는 사이즈로 알을 낳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엄마과 함께 들어가서인지 걱정처럼 부리에 쪼이지도, 날개를 요란하게 펼치지도 않았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닭들을 구경하러 몸을 돌린 그 찰나의 순간, '푸드덕' 날갯짓 소리가 나더니 부리나케 닭장 밖으로 나가는 닭의 꽁무니를 볼 수 있었다.
▲ 알을 낳았어요! 옅은 푸른색을 띠고 있는 청계란
ⓒ 손보미
닭이 떠난 자리에는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계란 두 알이 남았다.

"와! 알 낳았다, 알 낳았어."
"아까 한 마리 더 들어앉아있더니 한 개씩 낳았나 보네. 네가 한번 꺼내봐라."

귀하디 귀한 청계란이 혹여 깨질까 손바닥을 동그랗게 말아 계란 두 알을 올렸다. 방금까지 품고 있어서인지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방금 전까지 고무대야에서 알을 품던 닭은 어느새 다른 닭들과 어울려 다니며 아침에 그물망 안으로 넣어주었던 상추를 연신 쪼아 먹고 있었다. 닭장 주변을 싸리 빗자루로 슥슥 쓸던 엄마가 그 모습을 보며 한 마디 내뱉는다.

"그래도 집에 동물이 있으니까 들락날락 몸을 움직인다."
"닭들이 엄마 아빠 운동시키네."
"그러게. 개도 고양이도 아니지만 반려동물 매한가지다."

어느새 서로를 돌보는 사이

계란값을 아껴보겠다는 마음으로 동네 농장에서 청계 병아리를 데려온 건 2023년 늦가을. 그 다음해 2024년 봄, 마침내 계란 자급자족에 성공했다. 게다가 암탉이 알을 품어 부화시킨 바람에 청계 가족은 2배로 늘어났지만 복작복작한 분위기가 왠지 나쁘지 않았다.
▲ 내 방보다 넓은 닭장 정교하고 예쁘진 않아도 있을건 다있는 청계들의 집. 아빠의 100% 홈메이드 작품이다.
ⓒ 손보미
청계를 키우기 위해 병아리를 데려오던 날, 아빠는 손수 닭장을 만들었다. 각이 딱 잡히고 멋진 집이라기보다는 농사를 지을 때 쓰던 자재들을 하나하나 모아 만든 구조였다. 파이프, 그물 등으로 틀을 잡고 지붕에는 장판을 올려 비가 새지 않도록 했다.
버려진 문짝을 주워와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출입문을 만들었다. 투박했지만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춘, 구색이 제대로 갖춰진 집이었다. 닭장은 확장공사와 업그레이드를 반복했다. 닭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아빠의 철칙이었다.
▲ 나무그늘에서 쉬어요 아침마다 밖으로 나와 마음껏 뛰어노는 닭들
ⓒ 손보미
부모님은 해만 뜨면 문을 열어주었고 닭들은 집 밖으로 나와 흙 목욕을 즐기거나 무리를 지어 우다다 뛰어다니다 나무 그늘에서 쉬곤 했다. 닭 사료가 있었지만 어째 엄마가 던져주는 상추나 옥수수 알갱이를 더 맛있게 먹는 닭들을 보며 '닭도 사람이랑 똑같구나.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청계와의 동거는 어느새 3년차. 계란판에 하나씩 쌓여가는 알처럼 부모님과 닭의 관계도 조금씩 더 단단하고 돈독해지고 있었다.

"저번에 한 마리가 아파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사나흘 있더니 정신을 차렸다. 참 다행이다."
"낯선 사람 오면 도망가기 바쁜데 주인이라꼬 느그 아빠랑 나는 졸졸 쫓아다닌다."
"들어가라! 하면 알아서 집으로 들어간데이. 말을 알아듣는갑다."

닭들에 대한 이야기로 쉴새없이 쫑알쫑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부모님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특별한 일 없이 매일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부모님의 농촌 라이프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만으로 그 가치는 분명할 것이다. 반려닭아! 우리 엄마 아빠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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