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들여 콘크리트 싹 걷어냈다…청주서 찾은 ‘야생동물 천국’ [르포]

━
웅담 채취 농장서 구조된 곰, 오소리·너구리 등 둥지
지난달 2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청주동물원. 야생동물 보호시설에서 커다란 갈기를 휘날리는 수사자 한 마리가 흙바닥에 몸을 비비고 있었다. 경남의 한 동물원에서 홀로 지내다 2023년 7월 청주동물원으로 온 ‘바람이’(22)다. 구조 당시 늑골이 드러날 정도로 깡마른 몸매 때문에 ‘갈비 사자’로 더 알려져 있다.
바람이는 청주동물원으로 온 뒤로 암사자 ‘도도’(14)와 지낸다. 무리 생활을 하는 사자의 습성을 고려한 동물원 측의 배려다. 거주 환경도 좋아졌다. 바람이가 지내는 보호시설은 넓이가 1650㎡로 기존 우리보다 20배가량 넓다. 흙을 밟을 수 있고, 나무 구조물에 올라 간단한 놀이도 가능하다. 강릉의 동물원에서 임시 보호됐던 바람이 딸 ‘구름이’도 한 사육사 부부의 도움으로 2024년 8월 청주동물원으로 왔다.
사람으로 치면 100살에 가까운 바람이는 청주동물원에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날 바람이가 물끄러미 방사장 밖을 바라보자 도도가 다가가 볼과 머리를 몇 차례 비볐다. 고양잇과 동물이 상호 친밀감과 신뢰를 표현하는 헤드번팅 행동이다.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팀장(수의사)은 “나이가 든 바람이는 관절이 좋지 않지만, 생닭과 소고기를 하루에 5㎏을 먹을 정도로 식성이 좋다”며 “구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람 손에 길러진 탓에 자기 딸인 줄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김정호 수의사 “갈 곳 없는 동물들 보호소 역할”
청주시가 운영하는 이 동물원은 2014년 환경부 서식지 외 보전기관에 선정돼 표범·늑대·붉은여우·반달가슴곰·스라소니·두루미·삵·독수리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보전·복원을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24년 환경부 거점 동물원에 지정된 데 이어 야생동물보전센터가 설립됐다. 거점 동물원은 상주 수의사가 없는 인근 권역 동물원의 동물 검진·치료 등을 수행하는 곳을 말한다. 야생동물보전센터는 수술실과 검진실을 갖춘 동물병원격 시설이다.
지난달 독수리·수리부엉이 등 대형 조류의 재활을 돕는 천연기념물 동물보존관이 문을 열면서 야생 방사 훈련장은 2곳(포유류·조류)으로 늘게 됐다. 울산에서 구조된 야생 독수리 2마리가 건강검진을 마치고 첫 훈련을 앞두고 있다. 김정호 팀장은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주인이 유기하더라도 누군가 거둘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동물원 동물은 한계가 있다”며 “공공 동물원이 갈 곳 없는 동물들을 보호하고, 다친 야생동물을 치료하는 보호소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주동물원이 동물 복지를 고려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건 2018년부터다. 그해 말 웅담(쓸개즙) 채취용 농장에서 구조한 반달가슴곰 ‘반이’ ‘달이’ ‘들이’를 데려왔다. 이들을 옮기기 전 국비 등 2억원을 들여 곰사를 대대적으로 고쳤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모두 걷어내고 내벽을 해체해 공간을 넓혔다. 바닥에 흙을 깔고, 곰들이 물놀이할 수 있는 웅덩이도 조성했다. 통나무 구조물은 직원들이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
“동물사 합치고, 넓혀” 동물 수는 500→266마리
김 팀장은 “바닥을 시멘트로 깔면 청소는 수월하겠지만, 곰은 발톱이 부러지고 관절이 망가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상당수 농장주는 반달가슴곰에게 닭이나 동태,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을 줬는데 이는 곰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지리산에 복원한 반달가슴곰을 보면 나무 열매 등 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 반이, 달이는 도토리를 가장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곰사를 시작으로 동물사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이 잇달아 이뤄졌다. 야생에서 살 수 없는 동물원 동물의 의도적 번식을 줄이기 위해 염소·표범 등 동물에 불임 수술을 했다. 대가 끊기자 개체가 줄고, 빈 우리가 생겼다. 좁은 맹금사에 있던 일부 새는 더 넓은 전주로 보내거나,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 홀로 남으면 비슷한 습성을 가진 동물과 우리를 합쳤다. 여유가 생긴 공간은 남은 동물이 더 넓게 쓸 수 있게 텄다.


━
“산속에 만든 청주동물원, 야생 동물에겐 천국”
염소 4마리와 미니돼지 ‘태돌이’는 함께 산다. 2년 전 날개를 다쳐 영구 장애를 얻은 수리부엉이, 5년 전 경남에서 구조된 참매, 야생에서 구조돼 인공 포육한 오소리·너구리 등 토종 동물이 동물복지사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130여 종 500여 마리였던 동물 수는 현재 62종, 266마리로 확 줄었다. 김정호 팀장은 “야생동물은 경계심이 강하기 때문에 평평한 곳 보다는 높은 곳에서 앞을 조망할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한다”며 “청주동물원은 산속에 만들어져 경사가 심하다. 처음엔 이게 단점이었는데 토종 야생동물을 데려와 보니 오히려 장점이 됐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빨아볼래” 백인이 초록풀 줬다…남경필 아들 첫 마약 고백 | 중앙일보
- “남녀 시신, 장례식장 따로 보내” 한날 죽은 예비부부의 비극 | 중앙일보
- 신축인데 안전 B등급 나왔다…35억 강남 그 아파트는 어디 | 중앙일보
- 이건 실화였다…‘17세 강간범’ 엄마의 155분 울분 | 중앙일보
- “사람 실종됐다” 봄 맞은 제주 발칵…이틀간 이런 신고 14건, 뭔일 | 중앙일보
- “자식들 해처 먹을까 봐 도망” 96세 부자는 전셋집에 산다 | 중앙일보
- “숨도 못 쉬겠다” 성수동 덮친 4만 인파…행사 긴급 중단, 무슨 일 | 중앙일보
- “만보 걷기? 근육 다 녹는다”…의사들 경악하는 중장년 운동법 | 중앙일보
- 청년 5명 중 1명 “차라리 쉴래요”…백수 탈출 골든타임은 1년 | 중앙일보
- “더 오른다”“피크아웃” 사이…개미들 ‘삼전닉스’ 딜레마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