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상의 선율을 조율하다: 샤넬의 미학과 경건의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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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삶과 클래식 음악을 엮은 콘서트를 무대에 올리며 단순한 디자이너라는 수식어 너머에 있는 그의 본질을 마주하게 됐다.
그는 불필요한 장식음을 덜어내고 가장 순수한 선율만을 남기는 작곡가 같았으며 무대 위 연주자의 태도를 정돈해 주는 엄격한 예술감독이었다.
한 여성이 일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를 치밀하게 설계한 '하루의 연출가'였다.
그가 완성한 트위드 재킷과 진주 목걸이라는 클래식한 조합은 일상적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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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연주하는 ‘거룩한 리듬’
연주자의 시선으로
조율하는 ‘일상의 예배’

최근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삶과 클래식 음악을 엮은 콘서트를 무대에 올리며 단순한 디자이너라는 수식어 너머에 있는 그의 본질을 마주하게 됐다. 그는 불필요한 장식음을 덜어내고 가장 순수한 선율만을 남기는 작곡가 같았으며 무대 위 연주자의 태도를 정돈해 주는 엄격한 예술감독이었다. 그의 삶의 미학에서 읽어낼 수 있던 것은 화려한 사치품으로서의 가치가 아니었다. 불필요한 구속으로부터 몸과 영혼을 해방시킨 치열한 정신이었다.
당시 여성들을 고통스럽게 조여 매던 코르셋과 과도한 장식은 외형에만 치중한 탓에 본연의 움직임과 호흡을 억눌렀다. 그 억압을 걷어내고 생명력을 회복시키려는 샤넬의 개혁은 겉치레에 매몰돼 본질을 잃어버린 당대 복식사에 던진 일종의 종교개혁에 비견할 만했다. 음악적으로 말하자면 복잡한 화성을 덜어내며 명료한 쉼표를 그려 넣은 에릭 사티의 미니멀리즘 음악과 통한다. 이런 비움은 곧 해방이다. 겉치레와 형식에 매몰된 바리새인의 외식이 영혼의 숨통을 조였듯 본질을 잃은 화려함은 때로 우리의 인간다움을 제한한다. 샤넬이 선사한 자유가 단지 편안함의 문제가 아니라 본연의 자아를 되찾게 하는 선언이었듯 진리 안에서의 참된 아름다움 역시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가리는 것들을 덜어낼 때 비로소 드러난다.
피아니스트로서 늘 행하는 나만의 의례가 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는 악보를 결코 들여다보지 않는다. 오로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선율을 직접 그려가며 음악의 궤적을 쫓아가는 정적의 시간, 그것은 내게 연주 전 내면을 정돈하는 예배와 같다. 예술감독으로서 무대를 연출할 때도 예술가가 무대 위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빛나도록 흐름을 설계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어 본질이 드러나게 한다. 이런 연출가적 시각으로 보면 샤넬 역시 단순히 옷을 디자인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 여성이 일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를 치밀하게 설계한 ‘하루의 연출가’였다. 그가 완성한 트위드 재킷과 진주 목걸이라는 클래식한 조합은 일상적 연출이었다. 남성 작업복 소재인 트위드를 여성의 일상복으로 가져오고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보석 대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모조 진주를 선택한 파격은 당시로선 가장 실용적이고도 당당한 선언이었다. 복잡한 기교 없이도 울림을 주는 바흐의 선율처럼, 소란스러운 삶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삶의 박자를 잡아주는 메트로놈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고르고 외출 전 매무시를 가다듬는 일상의 반복적인 행위 또한 하나의 리듬이다. 새벽기도나 주일예배의 반복되는 거룩한 리듬이 영혼의 궤도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듯 정돈된 스타일은 무질서한 일상에 일정한 규칙과 품격을 부여한다. 누군가는 이를 단순한 자기표현일 뿐이라 하겠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일상의 거룩함을 연주하는 하나의 정중한 방식이 된다.
더 나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같은 음을 수백 번 반복하여 다듬듯 우리의 일상 또한 경건을 향해 끊임없이 연마되어야 할 하나의 연습곡과 같다. 각자가 삶의 무대에서 일상의 예배를 연출해 나가는 주체이기에 우리가 선택한 절제와 정돈은 소란한 세상 속에서 우리 영혼이 머물 자리를 내어준다. 콘서트의 마지막 음표가 사라진 뒤 감도는 긴 여운처럼 정성껏 가꾼 오늘의 태도는 누군가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로 머문다. 나의 일상은 지금 어떤 빛깔과 리듬으로 연주되고 있는가. 작은 음표 하나에도 마음을 담는 연주자처럼 일상의 사소한 매무새 하나까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정결한 울림이 되도록 오늘도 각자의 삶이라는 무대를 조율해 볼 일이다.

김소형
피아니스트·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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