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파월의 뚝심

매리너 에클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은 현대 중앙은행의 기틀을 만든 인물로 꼽힌다. 1933~48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의장을 지낸 에클스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연준을 ‘정부의 금고’에서 ‘국가의 중앙은행’으로 바꾸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의장 임기를 마친 후에도 3년을 더 이사직에 머물렀다. 연준이 해리 트루먼 정권의 저금리 유지 압박에 맞서도록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1970년대 8년간 재임한 아서 번스 의장은 에클스와 정 반대 행보를 보였다. 그는 72년 대선을 앞둔 리처드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압박을 받자 쉽게 굴종했다. 인플레이션 위험을 간과한 통화정책으로 물가 폭등과 경기 침체라는 ‘스테그플레이션’의 빌미를 제공했다. 연준의 오욕을 상징하는 인물로 회자된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원이기도 한 제롬 파월 이사를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을 때 내심 번스 역할을 기대한 듯하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파월 의장은 강골 기질을 발휘했다. 2019년 10월 7일 파월 의장은 유타주 솔트레이크의 한 극장을 찾았다. 에클스 전 의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사회 자리였다. 트럼프의 금리 인하 압박을 받던 파월 의장은 에클스 전 의장이 “중앙은행의 독립을 위해 누구보다 많이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도 파월 본인이 에클스의 길을 밟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파월 의장이 지난 30일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트럼프의) Fed에 대한 불법 공격을 우려해 이사직은 계속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임기는 2028년 1월까지다. 연준 의장직을 떠난 뒤 이사로 남는 사례는 에클스 이후 78년 만에 처음이다. 트럼프는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라며 파월을 조롱했다. 많은 이의 시선이 이달 중순 새로운 세계 경제대통령에 등극할 캐빈 워시 이사에게 쏠리고 있다. 트럼프의 총애를 받고 있는 그는 과연 제2의 파월·에클스가 될까, 제2의 번스가 될까. 파월의 뚝심이 후계자에게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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