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세 혁필 명인…오늘도 종각으로 출근합니다[한우물보고서]

까만 베레모에 반무테 안경, 깔끔한 남색 체크 재킷에 흰색 나이키 에어포스 운동화….
누구보다 ‘힙’하게 차려입은 그의 왼손에 들려있는 건 정부에서 100세 넘은 노인들에게만 준다는 지팡이 ‘청려장’이었다. 물론 지팡이는 ‘폼’에 가깝다. 103세 노인은 지팡이에 기대는 대신, 지팡이를 거느리며 걸었다.
“이 지팡이가 나무가 아니라 명아주라는 풀로 만든 거야. 가볍고 단단해서 조선시대부터 효자 지팡이로 불렸어. 잃어버릴까봐 내가 핸드폰 번호도 이렇게 종이에 써서 테이프로 붙여놨잖아.”

노인은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챙겨 읽고 아내와 아침을 먹는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깔끔히 씻은 뒤 보청기를 끼고 옷을 차려입는다. “오전에 크게 하는 건 없어. 나이가 먹어서 신문 읽고 한참 누워서 쉬다가, 밥 먹고 또 한참 쉬다가 나오는 거지.”
노인의 집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일주일에 닷새, 그는 집을 나서 수인분당선을 타고 왕십리역까지 간다.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고 종각역으로 향한다. 오후 2시, ‘혁필 수업’이 열리는 곳으로. 1923년생 혁필가 남상준 선생의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이다.
종각역 인근 오피스텔 12층 한쪽에 자리 잡은 6.6㎡(약 2평)가량의 작은 사무실이 그가 수강생들에게 혁필을 가르치는 곳이다. 지난 23일 찾은 이곳에는 3명의 수강생이 있었다. 요일별로 많게는 너댓명 적게는 한두 명이 그를 찾아온다. 대부분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젊은 예술가들이다.
"사실 몸도 아프고 힘들어. 근데 억지로 나와. 나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으니까. 또 이 나이엔 집에만 있으면 안 돼. 움직이기 싫어도 억지로 몸을 끌고 나와야 해."

가죽 조각에 안료를 찍어 그리는 전통 문자 그림이 ‘혁필화’다. 남 선생은 “글씨 속에 그림이 들어 있고, 그림이 곧 글씨가 되는 게 혁필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혁필화가 한국에 들어온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1800년대 상류사회에서 쓰이던 ‘비백서’라는 필체에서 파생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맥이 끊겼다가 다시 세상에 나온 건 6·25 이후 오일장에서였다.
“오일장에 신문지를 깔아두고 혁필을 그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화가 주위로 둥그렇게 모였어.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그 틈을 타서 약을 파는 거지. 그때만 해도 혁필은 관심을 끄는 용도로 쓰였어.” 1960년대부터 약 20년간 서민들 사이에서 유행했지만 체계가 없던 혁필화는 1980년대 들어 다시 자취를 감췄다.

혁필 수업은 그렇게 흘러갔다. 붓을 쥐는 법을 배우다가, 어느새 6·25 이야기가 나오고, 오일장 이야기가 이어졌다. 100년을 살아온 노인의 기억이 수업 사이사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혁필에는 공식이 없다. 봤을 때 아름다우면 잘 쓴 것이다. 다만 아름다움에도 이치는 있다. 예를 들어 새를 그릴 때는 머리의 크기와 모양이 중요하고 턱이 있어야 하며 가슴은 볼록하게 나와 있어야 한다. 종이에서 글씨가 차지하는 비율, 획의 넓이, 자간 역시 고려해야 한다. 정답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처음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름다운지 아닌지 갈린다.

수강생이 집에서 연습해온 그림을 펼치자 남 선생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렇게 쓰면 힘이 없어 보이잖아.” “붓에 힘을 줘서 돌려야 새 머리가 동그래지지.” “돌고래 배가 너무 나왔잖아. 유려하게 그려야지.”
그의 설명 대부분은 ‘이렇게’ ‘이렇게’라는 말로 귀결됐다. 분명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마실 땐 떨리던 그의 손길이 혁필 붓을 쥐었을 땐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남 선생이 붓을 쥐고 피드백을 내놓자 수강생들은 재빠르게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의 손놀림을 영상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다.


혁필의 ‘혁’은 가죽을 뜻하는데, 남 선생이 쓰는 붓의 재료는 진짜 가죽은 아니었다. 가죽은 안료를 흡수했다가 뱉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대신 찾아낸 건 구두 중창에 쓰이는 인조 스웨이드. 구두를 만들고 버린 조각을 주워다 써봤더니 글씨가 잘 써졌다. 빳빳하면서도 안료를 머금었다 내뱉는 그 성질이 딱 맞았다. 현재는 코오롱에서 생산하다 단종된 원단 ‘샤무드’로 붓을 만들어 쓰고 있다. 붓도 남 선생이 주문 제작해 직접 만든다.
혁필에 필요한 최소한의 색은 노랑·빨강·파랑·초록·보라 다섯 가지다. 보통 수성 안료를 쓴다. 노랑·빨강·파랑은 삼원색이고, 나머지는 취향에 따라 더하거나 바꾸면 된다. 붓은 색의 수만큼 갖춰야 한다. 모필과 달리 물로 빨아 다른 색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최소 일곱여덟개는 필요하다. 다만 한 번 장만한 붓은 10년은 너끈히 쓸 수 있다고 남 선생은 설명했다.

남 선생이 혁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70대에 접어든 무렵이었다. 어느 날 미국에 살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준아, 너 6·25 때 유행하던 혁필 기억하지? 요즘 여기에 혁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영 못 쓴다. 네가 더 잘할 것 같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서예를 배우고 동양화를 취미로 그려온 그였다. 마침 하던 사업을 모두 접고 ‘백수’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 LA, 하와이 등 7곳을 돌며 관광객들에게 혁필화를 써줬다. 2000년 비자 문제로 미국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그를 ‘유랑화가’라고 불렀다.

그가 혁필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한글과 알파벳 필체를 만든 것이다. 1980년대 자취를 감춘 혁필에는 그때까지만 해도 한문 필체밖에 없었다. 2012년 서울시의 전통문화 지원사업으로 후학 양성에 나섰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한문만 있다 보니까 거저 배우라고 해도 사람들이 안 오더라고.”
이듬해 5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서 ‘혁필 명인’으로 인증받았다. 같은 해 11월 남산한옥마을에서 혁필 전시회를 열며 한글 필체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한글에 이어 알파벳 필체까지 개발하자 대중 혁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2020년, 97세의 남 선생에게 안상수 작가가 혁필을 글꼴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를 역임한 안 작가는 그래픽 디자인 전문 업체 안그라픽스 설립자이자 ‘한글과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안상수체’를 만든 이다.
문제는 남 선생에게 허락된 시간이었다. 한글 글꼴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한글이 구현하는 최대 글자 수인 1만1172자에 대한 작업을 해야 한다. “생전에 모두 완성하실 수 있겠느냐”는 안 작가의 물음에 남 선생은 영어 필체만 작업하기로 했다. 표준적인 서구권 폰트 구성을 위해 작업해야 하는 영어 글자는 총 384개. 남 선생은 6개월에 걸쳐 이를 완성했다. 그는 “그때 한글 필체 작업을 시작했으면 끝낼 수 있었을 것 같다”며 그 결정을 아쉬워했다.

혁필을 알리기 위한 노력은 공교육 현장에까지 닿았다. 지난해 3월부터 창비교육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그의 혁필 영어 서체 ‘LUCKY’가 실렸다. 2년 전, 자료를 찾다 남 선생의 혁필을 발견한 창비교육 측이 교과서 수록 허락을 받으러 찾아왔다고 한다. 남 선생은 “아이들 교육에 쓰인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지난 30년간 그가 만든 필체는 한글 1개, 영어 5개(대문자 4개·소문자 1개)다. 연구는 지금도 계속된다. 초밥을 좋아해 일주일에 한 번은 가락시장에 초밥을 먹으러 간다는 남 선생은 간장이 그릇에 퍼지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간장 종지에 간장이 퍼지는 모양이 어떻게 보면 알파벳 C 같기도 하고, E 같기도 한 거야. 그래서 ‘간장체’를 한 번 만들면 재밌겠다 싶어서 연구 중이야.”

그의 수제자라는 북디자이너 이시연(39)씨는 “선생님의 끊임없는 탐구심이 인상 깊었다”며 “한국의 근대사를 모두 겪어온 선생님만이 가질 수 있는 지구력 같다”고 말했다. 스승이 평생을 연구해 온 ‘혁필’이 사라질까 무섭다는 이씨는 오는 6월 남 선생의 이야기를 엮은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날 수업에 처음 참석한 홍성연(27)씨는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하고 오는 8월 핀란드 헬싱키 대학원 유학을 앞두고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타이포그래피 소모임에서 혁필을 처음 접했지만, 졸업 후 취업을 하며 기회가 없었다.
유학을 앞두고 퇴사를 하면서 시간이 생겼다는 홍씨는 “글씨는 타이포그라피를 했다 보니 금방 늘 것 같지만, 새나 돌고래 같은 그림의 경우 예쁘게 그리는 법이 정해져있다보니 손에 익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남 선생은 그런 수강생들을 보며 웃었다. 그는 “이렇게 다 알려줘도 아무도 나를 못 따라올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런 말을 덧붙였다. “친구가 다 죽어서 말 상대가 없어. 여기 와서 떠들면 재밌지, 신나고.”
그는 여전히 매일 새로 하고 싶은 것이 생긴다고 했다. 지금 가장 큰 꿈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훈민정음’을 혁필화로 쓰는 퍼포먼스. 그러려면 지금보다 훨씬 큰 붓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백발노인의 눈빛은 어느 청년보다도 빛났다.

그의 호는 허운(虛雲), 허망된 구름이라는 뜻이다. 70대 이전에는 미몽(美夢), 아름다운 꿈이었다.
“젊어서는 인생이 아름다운 꿈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아니더라고. 그래서 호를 갈아버렸지. 땅에 있는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는데, 구름은 또 비가 돼서 땅으로 내려오잖아?”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술타기’ 어렵게 입증해도 집유… 재범 막으려면 엄벌해야
- 성수동 ‘포켓몬 30주년’ 행사에 수만명 몰려…경찰·소방 출동
- 의왕시 내손동 아파트 화재 감식…“가스 폭발 추정”
- 국힘, 대구 달성 이진숙 공천…‘정진석 출마’ 충남 공주 보류
- 푸틴 최측근 “핵전쟁 가능”…트럼프, 이란 개입 거절 직후 강경 발언
- 대통령 ‘과도한 요구’ 발언에 삼전 노조위원장, “우리 얘기 아냐” 딴청
- ‘뼈 때린 농담’ 남기고 떠난 찰스 3세…트럼프 “스카치 관세 폐지” 귀국 선물
- “음료 안 돼요”에 격분…버스기사 눈 찌르고 엽기 행각 벌인 60대
- 박왕열에 마약 공급한 닉네임 ‘청담’ 송환… 100억원 마약류 유통 관여
- ‘초보 정치인’ 하정우 등판하자마자 손털기 논란… “손 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