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한남동에서 무너진 것은 차벽이 아니었다
[김수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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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임박한 2025년 1월 15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경호처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 수십명이 정문을 향해 내려오고 있다. |
| ⓒ 권우성 |
파란 경광등의 불빛이 촘촘히 세워진 차량 바리케이드 사이로 부서지듯 흩어졌다. 차량 반사빛에 뒤질세라 무전기의 전파가 이어몰드를 타고 경호관들을 귓속으로 파고들었지만 그 신호는 더 이상 명령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누구의 지시도 따르지 않겠다는 조용하지만 완강한 거부였다.
그들은 윤석열의 사병을 자처했으나…
새벽 5시 무렵 차벽 설치를 지시받은 수행부장도 움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성훈 차장(경호처장 직무대리)이 찾아와 "다 나가라 XXX들이. 빨라 나가서 투입해라"라고 거칠게 몰아붙였지만 그 외침은 허공에 흩어질 뿐이었다. 그것은 이미 무너진 권위의 잔해였다. 그 모든 상황은 예견된 일이었다.
1차 체포영장 집행 저지 이후 윤석열 대통령 측근 변호사들의 막무가내 저지 요구에 반발한 경호처장 박종준이 사표를 던지고, 경호처 내부 게시판에는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는 행위는 위법"이라는 명확한 판단이 공유되어 있었다. 경호관들은 자신들이 서 있어야 할 장소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윤석열의 사병'을 자처하며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곧 국가를 지키는 일"이라고 우겼지만, 현장의 경호관들에게는 공허한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정문 쪽에서 헤드라이트가 번쩍일 때마다 누군가의 한숨이 깊어질 때, 두려움보다 크게 느껴진 것은, 이제 끝이 보인다는 기대였다. '자유대한호국단 변호사 연대'(Pro Bono League)를 내세워 경호처 직원들에 대한 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고 했지만, 현장 경호관들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불안이 깊어가는 새벽녘에 경호관들은 대통령을 절대안전의 대상이 아닌 '체포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인식은 말이 아니라 저마다의 태도로 드러나고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훈련된 신체와 운동신경을 가진 집단 가운데 하나인 경호관들이 한남동에 있었다. 경호의 숙명과 헌법의 명령이 한남동 공관촌 정문 일대에서 부딪히는 상황에서 그들은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숨은 경호'를 하고 있었다. 전혀 새로운 형태인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경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다 나가라'며 폭언을 하는 현장 책임자의 목소리는 분노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에게 보내는 절규이자 내면의 붕괴에 가까웠다. 어쩌면 피로와 수치 그리고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체념이 뒤엉킨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같은 신념으로 움직여온 경호관들이었지만 '체포 대상' 앞에서 심장이 갈가리 찢겨 있었다.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대통령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당위명제는 법원의 2차 체포영장을 발부로 '윤석열 친위대'를 자백하는 문구에 지나지 않았다. 체포영장 집행자의 동선에 다가섰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의 피의자가 되어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경호관들은 숨소리마저 떨림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글픈 것은 그 떨림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조직의 불문율이었다.
공수처와 경찰의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윤석열은 여전히 다른 세상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총을 쏠 수는 없느냐"라거나 "밀고 들어오면 아작난다고 느끼게 위력순찰하라"는 발언은 현실과 단절된 권력이 마지막으로 쏟아낸 단말마의 비명에 가까웠다. 헬기가 내려오면 대공포로 쏘라고까지 했던 사람이지만 커다란 조경수로 가려진 관저에서 무표정한 어둠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매머드급 변호인단으로 유혹하며 정당한 경호업무임을 강조하더라도 그것이 경호관들을 방패막이로 삼으려 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호관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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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시도되는 2025년 1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구역에 공수처 수사관과 경찰이 진입하고 있다. |
| ⓒ 권우성 |
동트는 새벽, 65년 경호처의 유령들이 한남동 공관촌을 떠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박정희의 맹신, 전두환의 혈기, 노무현의 신뢰, 박근혜의 침묵 같은 서로 다른 시대의 잔영들 말이다. 각기 다른 감각들이 한 공간 위에 중첩되어 있지만, 대통령은 바뀌고 시스템은 변해왔다. 그러나 권력이 품은 근원적 불안만큼은 사라진 적이 없다. 그리고 그 불안을 가장 물리적으로 떠받치는 이들이 바로 경호처다. 누군가는 "우리의 임무는 대통령의 안전이다. 나머지는 정치가 해결할 일"이라고 말했지만, 한남동의 경호관들은 알고 있었다. 정치가 경호처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한남동 관저 주변의 고요한 적막이 깨진 것은 새벽 4시 무렵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정지된 화면처럼 느껴지던 순간, 관저 일대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침묵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공관촌 정문 진입을 시도하던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들은 윤석열 변호인단에 가로막혀 실랑이를 벌였고, 일부 시위대까지 뒤엉켜 몸싸움을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그 혼란 속에서 여당 정치인과 당직자들이 틈을 타 공관촌 내부로 들어섰다. 정치적 저항의 목소리만 공기를 채웠을 뿐, 경호적 대응의 긴장이나 물리적 움직임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 경찰 체포조와 형사기동대는 우회로를 통해 공관촌을 장악하고 있었다. 정문 주변에 겹겹이 세워졌던 버스와 차량들은 더 이상 벽의 기능을 하지 못한 지 오래였다. 차량 사이를 잇던 윤형 철조망은 절단기로 쉽게 제거됐고, 버스를 철제 사다리로 넘는 것도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결국 차벽과 철조망은 관저 내부 사람들에게 주는 심리적 위안에 가까웠다. 검은 전술복에 소총용 배낭을 메고 헬멧을 쓴 채 배회하던 공격대응팀 역시, 실질적 대응이라기보다 위력을 과시하기 위한 '연출'에 가까웠다. 차량에 열쇠를 꽂아둔 채 차벽을 세우라는 지침이 경호 매뉴얼에 존재할 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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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시도되는 2025년 1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구역에 공수처 수사관과 경찰이 진입하고 있다. |
| ⓒ 권우성 |
어쩌면 1차 체포영장 집행을 물리적으로 저지했던 당시의 경호처는, 법질서보다 상관에 대한 충성이 심리적으로 더 크게 작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일신의 안위와 사적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에 충성해야 할 경호처 공무원을 사실상 사병화하려 했다"는 비판과 맞닿아 있다. 그러한 시도를 거부하지 못한 채 충성에 포획된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양상은 계엄 선포가 던진 충격과 조직 내부의 결속이 결합해 만들어낸 집단적 환각과도 유사하게 작동했다. "대통령을 넘기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는 식의 왜곡된 신념에 사로잡히면서, 그들은 권력의 환영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가 끝내 충성의 제단 위에 자신을 올려놓으려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한 경호처가 2차 체포영장 집행 국면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불과 12일 사이, 충성의 환각은 서서히 녹아내렸고 무저항이라는 전환으로 이어졌다.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동트는 새벽, 공관촌 정문으로 내려오던 경호관들의 복장이었다. 그들의 어깨에 둘린 야광띠는 단순한 안전장비가 아니었다. 밤새 이어진 내적 균열의 흔적이자, 스스로를 향해 보내는 확인의 신호에 가까웠다. 비록 체증요원으로 배치되었지만, 자신이 서야 할 위치는 공권력을 안내하는 자리라는 자각이 담긴 표식이었다. 그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법원의 결정에 자신을 맞추려는, 늦었지만 분명한 각성의 징후였다. 몸은 여전히 관저를 향하고 있었지만, 의식은 이미 법과 헌정의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새벽 경호관들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움직이고 있었다. 총을 들지 않음으로써 선택하고 있었고, 막아서지 않음으로써 길을 열고 있었다. 그들의 '무행동'은 방기나 무력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고도의 판단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던 몸이, 이제는 질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억제하고 있었다. 그것은 훈련으로 형성된 반사적 대응을 거스르는 일이었고, 수십 년간 체화된 직업적 본능을 스스로 꺾는 선택이었다. 이 순간, 경호는 더 이상 '대상을 지키는 기술'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경계를 선택하는 윤리'로 전환되고 있었다. 눈앞의 인물을 지키는 것과, 인물이 속한 체제를 지키는 것 사이에서 경호관들은 마침내 후자를 선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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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의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시작된 2025년 1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검찰과 수사관,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다. |
| ⓒ 유성호 |
경호처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질문, "우리는 누구를 지키는가"에 대해 그들은 처음으로 분명한 답을 몸으로 제출하고 있었다.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헌정질서. 그 질서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경호의 최종 목적이라는 사실을, 말이 아닌 침묵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날의 체포영장 집행은 단순한 사법 절차의 완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과 법, 충성과 책임 사이의 균형이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를 드러낸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경호관들은 그 분기점 위에서 물리적 힘이 아니라 선택으로 역사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어쩌면 가장 치열한 경호는 총을 드는 순간이 아니라, 총을 들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에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보다, 그 손을 끝내 멈춰 세우는 의지가 더 큰 긴장과 더 깊은 책임을 요구한다. 눈앞의 위협을 제거하는 일보다, 자신 안의 충동과 명령, 그리고 몸에 새겨진 습속을 제어하는 일이야말로 훨씬 더 높은 차원의 경호이기 때문이다. 그날 새벽, 한남동에서 이루어진 것은 체포가 아니라 귀환이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권력의 심장에 밀착되어 형성된 관성을 끊어내는 일종의 궤적 이동이었다. 제도와 원칙이라는 궤도에 들어서는 순간, 그 이동은 물리적으로는 몇 걸음에 불과하지만 의미상으로는 수십 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도약에 가까웠다.
헌법의 심장으로 돌아오는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이동. 한남동 체포영장 집행 과정은 외형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이야말로 가장 결정적인 선택이었다. 그것은 실패한 저항이 아니라 의식적인 포기였고, 무력함이 아니라 자각의 결과였다. 그날 새벽의 경호는 누군가를 막아내는 데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넘어서는 순간에 완성되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침잠한 그 침묵 속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경호처의 경호는 마침내 본래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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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체포 기원하며 밤샘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국가수사본부의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시작된 2025년 1월 15일 새벽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를 촉구하는 시민들이 은박담요를 쓴 채 중계방송되는 뉴스를 보고 있다. |
| ⓒ 이정민 |
경호관들은 보이지 않는 선을 지키고, 그 선을 넘지 않는 방식을 선택했다. 물론 그 선택은 1차 체포영장 집행 직후부터 이어진 밤샘 시위와, 은박 담요로 몸을 꽁꽁 싼 채 떨고 있는 키세스 시위대의 몸부림에 대한 묵직한 응답이기도 했다. 그날의 장면이 경호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는 오롯이 경호처가 결정할 몫이다. 충돌이 없었기 때문에 더 깊이 본질적인 전환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권력 가까이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한 걸음 물러섬으로써 오히려 국가의 중심을 지켜낸 역설적인 순간. 그 역설 속에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는 경호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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