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서 노동자로 사는 사람들이 겪는 네 가지 문제점

김종진 2026. 5. 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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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서울시장에 바란다] 멈춰 선 노동존중특별시를 넘어, 미래의 노동을 기획하자

2026년 지방선거에서 뽑히는 서울시장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서울의 도시 패러다임은 2000년대 초반 청계천 복원과 교통 개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주거나 교통, 환경, 하천, 노동, 복지, 도시, 역사, 문화, 평등, 균형발전, 민주주의 등 모든 분야에서 두루 요구된다. 서울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새로운 서울의 모습을 제안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말>

[김종진]

 3월 31일 서울시선관위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비 모의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운 서울시장이 취임한다. 민선 9기 서울시정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노동정책의 재구축이다. 서울은 전국 임금노동자의 약 5분의 1이 집중된 대한민국 최대의 도시다. 2024년 4월 기준 고용률 62.0%, 실업률 3.6%라는 수치는 전국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아 언뜻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평균'의 이면에는 심각한 구조적 취약성이 겹겹이 쌓여 있다.

서울의 비정규직 비율은 38.3%로 전국 평균(38.2%)과 유사하지만, 절대 규모로는 167만 명에 달한다.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는 143.5만 명이고, 프리랜서 31.7만 명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경력단절·보유 여성은 22만 명, 청년 니트(NEET, 취업하지 않고 교육·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는 21.6만 명이나 된다. 장기실업자 비율(4.5%)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울은 비율 지표로는 '중간'이지만 절대 규모에서는 압도적으로 큰, 이른바 규모의 취약 구조를 지닌 도시다.

2015년 전국 최초로 '노동존중특별시'를 선언하고,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선도적 실험을 이어온 서울시 노동정책은, 민선 8기 4년간 사실상 체계적으로 해체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정책 기조의 변화가 아니라, 10년에 걸쳐 축적된 지방정부 노동정책의 제도적 자산을 훼손한 것이다.

노동정책 기반의 와해. 제3차 노동정책 기본계획 34개 사업 중 신규 사업은 4개에 불과했다. 노동특보와 노동전문관이 폐지되었고, 노동 관련 위원회는 형식적으로 운영되었다. 시민·노동자 참여 거버넌스는 후퇴했고, 참여예산제도 축소되었다. 노동정책 예산은 민선 7기 마지막 해인 2020년 487억 원에서, 2024년 254억 원으로 거의 절반 수준(-48%)까지 삭감되었다.

노동 인프라의 축소와 노동조건 퇴보. 노동권익센터 예산은 2021년 37억 원에서 2023년 24억 원으로 35% 삭감되었고, 사업과 인력이 동반 축소되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2024년 5월 폐원되었다. 청소년노동인권 조례가 폐지되었으며, tbs 운영 조례 개정을 통해 재단 예산 지원이 중지되었다. 서울시 생활임금은 오세훈 시장 시기 인상률 9.4%에 그쳐 17개 광역 1위 수준에서 중하위로 하락했다.

노동3권의 침해. 노동이사제는 300인 이상 기관으로 제한되어, 정수 30명에서 17명(45% 감소)으로 축소되었다. 노동단체 지원사업과 노동복지시설 지원이 삭감되었으며, 나아가 서울시의회에서는 노인일자리 최저임금 차등 적용 건의 결의(국제노동기구 협약 위반 사항)와 시내버스 필수 업무 지정 건의(노동3권 무력화)가 다루어지기도 했다.

서울 노동의 구조적 과제

첫째, 휴가·병가제도 사각지대가 심각하다. 서울 임금노동자의 59.3%가 병가 제도가 없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가 절반을 넘는 것이다. 서울시가 유급병가 시범 사업을 추진해 온 것은 의미 있으나, 민선 8기에서 산업안전 정책 전반이 정지 상태에 놓이면서 그 범위와 실효성은 더욱 제한적이 되었다.

둘째, 산업안전의 '보이지 않는 위험'이 존재한다. 서울의 산업재해율(0.36%)과 사망만인율(0.40‱)은 전국 최저 수준이다. 그러나 정신건강 위험은 28.8%로 노동자 3.5명 중 1명이 위험 수준이다. 서비스·감정노동 밀집 도시인 서울에서 정신건강 문제는 물리적 재해 못지않은 '보이지 않는 산재'다.

셋째, 노동시간의 '은폐된 양극화'다. 서울의 정규직(41.2시간)과 비정규직(32.6시간)의 주당 노동시간 격차는 8.6시간이며,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도 23만 명(5.2%)으로 2020년 대비 29% 증가했다. '짧게 일하되 가난한' 집단과 '길게 일하되 소진되는' 집단이 동시에 확대되는 양극화가 서울에서도 진행 중이다.

넷째, 디지털·인공지능(AI) 전환의 역설이다. 서울의 AI 노출 위험 상위 비율은 18.0%로 전국 1위다. 그런데 임금노동자의 교육훈련 미경험률은 71.9%로 역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전환 위험은 최고인데 준비는 최저인 역설적 상황이다. 민선 8기에서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전환, AI 노동 대응이 사실상 부재했던 것은 이 역설을 방치한 것과 다름없다.

서울시 노동정책, '복원을 넘어 미래로'
 출근길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연합=OGQ
서울시 노동정책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다. 민선 8기에서 해체된 제도적 기반을 되살리되, 그것을 넘어 변화하는 노동의 미래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책 틀을 구축해야 한다.

하나. 노동정책 제도 기반의 복원과 격상. '노동존중특별시'를 복원하되 '미래의 노동'을 재설계하는 비전을 담아야 한다. 근로감독 지방 위임에 맞춘 '노동국'으로 격상하고, 노동특보·노동전문관을 부활시켜야 한다. 노동정책 예산을 민선 7기 이상으로 회복하고, '노동일자리재단' 설립을 통한 노동정책을 재구축해야 한다. 폐지·축소된 조례와 정책을 복원하는 한편 민간 위탁을 전면 재구조화하고, 모범 사용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AI와 노동, 기후위기 등 새로운 영역의 조례를 신설해야 한다.

둘. 일자리·노동정책의 질적 전환. 인구구조 변화와 노동환경 변화에 맞추어 돌봄 경제와 돌봄노동을 확대 강화, 생활임금의 실질화, 차별시정제도 복원, 적정임금 검토 등이 필요하다. 또한 일터 권리 보호와 플랫폼노동과 프리랜서의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해소와 병가제도, 유급휴가 등 서울형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 선도 모델로서 공공기관 주 4.5일제 시범사업과 초단시간 노동자의 최소생활노동시간 보장제를 추진해야 한다.

지방정부 노동정책의 패러다임은 일자리의 '양'에서 노동의 '질'로 전환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600만 명의 취업자가 매일 일터로 향하는 도시다. 이 도시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고, 아프면 쉴 수 있고, AI 시대의 전환에 대비할 수 있으며, 일터에서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정책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서울시 노동정책의 과제다.

유럽의 진보 도시들이 보여주듯, 노동정책은 더 이상 중앙정부만의 소관이 아니다. 주거·교통·돌봄·교육·디지털 전환과 연계된 통합적 노동정책, 노동자·시민사회·전문가가 함께 설계하는 참여형 거버넌스, 그리고 지표에 기반한 과학적 정책 평가 체계, 이것이 민선 9기 서울시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사회계약'의 골격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주요 서울지역 노동통계는 일하는시민연구소에서 발행한 <이슈와쟁점>(2026.3-4)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stib.ee/1DBN 김종진은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이면서 유니온센터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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