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맞은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광장서 춤춘 이유
[전세정 기자]
2025년 8월, 인도네시아의 21세 청년 아판 쿠르니아완(Affan Kurniawan)의 죽음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당시 자카르타에서는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주거 수당과 호화 생활에 분노한 시민들이 '국회 해산'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매일 아침 6시, 가족 7명의 생계를 위해 운전대를 잡았던 오젝(오토바이 택시) 온라인 기사 아판은 시위 현장 인근에서 경찰 전술 차량(Rantis)에 치여 사망했다. 현지 언론과 온라인 여론은 이 사건을 '엘리트의 탐욕 vs. 노동자의 희생'이라는 극명한 대비 구도로 바라보며, 그를 '민주주의의 순교자(Martir Demokrasi)'라 불렀다. 아판의 죽음은 정권 비판의 상징이 됐고, 이는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의 기폭제가 됐다.
1년이 지난 2026년 5월 1일, 인도네시아는 다시 노동절을 맞았다. 1년 사이 가장 큰 변화는 아판의 죽음이 단순 사고를 넘어 '인권 문제'로 재규정됐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Komnas HAM)는 2025년 시위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과잉 진압과 강압적 체포 등 광범위한 인권 침해 실태를 공개 발표했다. 이는 아판의 죽음이 개인의 불운이 아닌, 공권력의 폭력성과 노동자에 대한 안전망 부재가 겹친 구조적 결함이었음을 시사한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이러한 인권적 접근이 플랫폼 노동자들을 시위의 단순 참여자에서 주체적인 '권리 선언자'로 변화시켰다고 분석했다.
노동절을 이틀 앞둔 4월 28일, KSPI(인도네시아 노동조합연합) 의장 사이드 이크발과 FSPMI(인도네시아 금속노조) 의장 수파르노 등 노동계 지도부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을 직접 면담해 새 노동법 도입을 포함한 11개 요구안을 전달했다. 원래 KSPI(인도네시아 노동조합연합)는 국회의사당 앞 시위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약 1시간 30분에 걸친 대통령 면담 이후 모나스 행사 참여로 방향을 바꿨다. 거리의 외침이 정책 테이블 위의 의제로 격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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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5월 1일, 자카르타 모나스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올해 행사에는 노조원과 오젝 온라인 기사 등 약 20만 명이 집결했다. |
| ⓒ 인도네시아 대통령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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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5월 1일 모나스 광장에서 노동자들과 직접 악수를 나누고 있다(라이브 유튜브 캡쳐). |
| ⓒ 인도네시아 대통령실 |
둘째는 플랫폼 앱 회사가 오젝 기사들에게서 떼어가는 수수료를 기존 20%에서 8%로 낮추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는 선언이었다.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는 플랫폼 기업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지만, 그동안 수입의 20%를 수수료로 내야 했던 오젝 기사들에게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아판 쿠르니아완이 남긴 실질적인 유산이 된 셈이다. 다만, 구체적인 시행 시점과 기업별 분담 방식 등 세부 지침은 향후 고용부와 업계 간의 추가 논의를 거쳐 확정될 전망이다.
"권력에 길들여진 자리" 비판도
물론 모든 노동자가 광장의 축제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정부나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강경 노선의 KASBI(인도네시아 노동조합연맹) 등 일부 노동단체들은 모나스 행사를 "권력에 길들여진 자리"라고 비판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별도로 약 1만 명 규모의 시위를 열었다. 이들은 "기업의 아웃소싱·계약직 활용을 대폭 허용해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일자리 창출법(옴니버스법)' 전면 폐기"를 요구했다.
이번 노동절을 앞두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리고,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명절 상여금을 의무화했다. 산재보험 혜택을 농민·어민 같은 비임금 노동자에게까지 넓혔고, 오랜 숙원이었던 가사 노동자 보호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크리스 차관 스스로 "일부 정책은 여전히 단기적 성격"이라고 인정했듯, 노동 구조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교육과 산업 사이의 인력 미스매치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2025년 아판 쿠르니아완이 흘린 피는 인도네시아 사회에 '노동의 가치'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1년 뒤 광장은 대통령이 직접 내려와 노동자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오젝 기사를 위한 대통령령이 서명됐고, 해고 대응 전담반(Satgas PHK)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국회의사당 앞에서 별도 집회를 연 노동자들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노동절은 세레모니가 아니라, 평등과 사회 정의에 대한 헌신을 되새기는 날이어야 한다."
KASBI(인도네시아 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수나르노의 말이다. 광장의 악수가 실질적인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인도네시아 노동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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