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보통 금이 아닌데? 엄마의 전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조영지 2026. 5. 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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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오래된 파우치를 열었더니 금이 후두둑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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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지 기자]

평소 관찰력 좋기로 소문난, 친한 동생이 나를 스캔하며 물었다.

"언니, 오늘 왜 이렇게 고급지지?"

나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젖히고 반지 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내 오른쪽 약지엔 순금 쌍가락지가, 왼쪽 손가락엔 결혼 반지, 그리고 목엔 24k 금 목걸이가 휘감겨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 사모님 같아 보이나?"
"언니, 요즘 금값이 얼마인데 몸에 다 차고 다니는 거야. 금고에 넣어둬야지."
"이건 보통 금이 아니라서 그래."

동생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보통 금이 아니면 어떤 금인데?"

나는 먹먹한 눈으로 이 금붙이의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 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 우리 엄마 전재산 엄마의 전재산을 물려받음.
ⓒ 2026.4.27
대부분의 집은 엄마가 경제권을 쥐고 있었지만, 우리 집은 달랐다. 철없던 우리야 그렇다 쳐도, 매번 돈을 빌리듯 타 써야 했던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치사했을까. 콩나물 값부터 양말 한 켤레까지, 무언가 살 때마다 일일이 허락을 구하던 엄마의 모습. 예나 지금이나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모습 중 하나다.

그런 상황에도 엄마는 또, 남 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 그런데 뭐, 가진 게 있어야 주지. 그러니 죽을 둥 살 둥 농사일을 하는 거다. 나무에서 주렁주렁 과실이 맺히고, 땅 밑에서 물쾅물쾅 야채가 자라야, 좋아하는 사람에게 뭐 하나라도 나눠줄 수 있으니 말이다.

엄마는 주고 나면 꼭 이 말을 덧붙인다.

"이거 마트에서 사면 얼만 줄 아나?"

한 때는 이 말이 지긋해서 못 들은 척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가 왜 자꾸 자신이 주는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는지. 한평생 '내 돈'을 가져본 적 없는 엄마가 돈 대신 줄 수 있는 것의 가치를 매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엄마가 주는 것 치고 번듯하게 어디 자랑할 만한 것은 없다. 결혼 혼수로 남동생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그릇을 준다 거나, 여름철엔 흠과를 보내서 택배 상자를 열 때 반절이 썩은 복숭아를 받게 된다는 식이다. 얼마 전엔 갓 도축한 고기를 덩어리 채로 보내서 비닐을 열었다가 흥건한 피를 보고 식겁한 일도 있다.

우리 엄마가 내게 준 거라곤 한평생 이런 것들뿐이었다. 사랑이지만 허름한 것, 사랑이지만 볼품없는 것, 사랑이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

'나도 하나뿐인 딸인데 예쁜 것 좀 주지, 비싸고 좋은 것 좀 주지' 하는 원망의 마음이 철든 마음 끄트머리에 아직도 아프게 남아있다.

지난 명절, 엄마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옆방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뭔 일인가 싶어 따라갔더니 천 파우치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고 있었다. 손때가 타 거뭇하고 너덜너덜한 파우치를 까뒤집었더니 누런 것이 '후두둑' 떨어졌다.

순금 쌍가락지, 펜던트 없는 24k 줄 목걸이, 얇디얇은 금팔찌였다. 금의 명성이 안타깝게도 누런 장판 위에 초라하게 깔렸다.

"이거 한 번 껴봐라. 손가락에 맞는지"

엄마는 금가락지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인제 엄마는 필요 없으니까 니가 갖다 써라"

나는 손사래를 쳤다.

"이걸 왜? 요즘 금값이 얼마나 비싼데... 엄마가 팔아서 써."
"이거 팔아가 내 어디다 쓸꼬? 이제 이런 거 다~ 필요 없다."
"그럼, 결혼식 가거나, 어디 행사 갈 때 끼면 되지."
"이거 함 봐봐라. 이제 엄마 손가락에 드가지도 않는다."

엄마는 남의 손가락을 보듯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쫙 편 열 손가락 중 어느 하나 멀쩡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늙은 나무뿌리 같이 뭉툭하고 휘어져 있는 쭈글쭈글한 손가락... 그 위엔 누런 반창고가 칭칭 감겨있었다. 오랜 노동으로 얻은 류머티즘 관절염 탓이다.

"이런 것도 다 하고 싶은 때가 있는 기다. 늙으면 어울리지도 않는데이. 팔찌는 그래도 내가 가끔 한 번씩 하고 나중에 니 줄 테니까, 이 쌍가락지랑 목걸이는 가져가라."

곤란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엄마 앞에서 울고 싶지 않다. 그럴 때 내가 택하는 건 헛소리다.

"아, 엄마 덕에 나 부자 되겠네. 무르기 없기야. 엄마, 후회 안 하지?"
"평생에 엄마가 가진 게 이거 뿐이네. 더 주면 좋을 긴데."

손가락 마디를 주무르며 그 말을 하는 엄마가... 나는... 너무, 너무 아팠다.

이것이 바로 내가 어울리지도 않게 주렁주렁 차고 다닌 금붙이에 대한 이야기다. 무늬도 없고 광택도 죽은 금붙이. 그런데 그날 이후, 참 신기하게도 엄마가 준 목걸이와 반지를 생각하면 그렇게 든든하고 좋을 수가 없다.

내가 초라해 보일 때, 마음이 텅 빈 것 같을 때, 엄마가 준 금가락지와 금목걸이를 차고 유치하게 이렇게 외치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거, 우리 엄마가 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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