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피부과가 아토피 못 봐요?” SNL의 풍자, 현실은 더했다

“간판에 피부과라고 해서 왔는데 지금 아토피(피부염) 하나 못 봐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몸을 긁던 여성은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 피부과 전문 병원으로 가라”는 직원 안내를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환자를 마주한 의사는 “아토피는 진료과목에 없다. 죄송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SNL코리아 시즌 8’에서 미용 시술만 하고 질병 치료를 하지 않는 일부 의원을 꼬집은 장면이다. 온라인에선 쇼트 영상(짧은 영상)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며 “현실을 잘 보여준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예를 들어 30일 기준 조회 수 400만을 넘긴 영상엔 “속이 시원하다”, “심각한 문제인데 개선이 안 된다” 등의 댓글 2700여개가 달렸다.
‘건보 진료 0건’ 의원, 22년 이후 해마다 증가

의료계에선 이들 상당수가 ‘비급여’인 피부 미용이나 성형 시술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본다. 통상 질병 진료가 이뤄지면 건보 비용 청구가 발생하는데, 해당 실적이 전혀 없다는 건 사실상 일반 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서다. 실제로 건보 청구가 없는 의원의 95%는 성형외과(692곳)와 일반의 의원(1185곳)이다. 이른바 ‘돈 되는’ 비급여만 보는 기관의 증가세는 지필공(지역·필수·공공 의료) 기피 심화와도 맞물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29일 미용·성형 의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역 500m 내 ‘진료과목 피부과’를 내건 의원 30곳에 “알레르기 증상 같은 두드러기가 났는데 진료가 되나”라고 문의한 결과, 26곳(86.7%)이 진료를 거절했다. 이들은 “일반 진료는 하지 않는다”라거나 “미용 시술 전문”이라고 답했다.
진료 의사를 밝힌 곳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장이 각종 시술로 바빠 10일 뒤에나 진료가 가능하다", “전문의가 아닌데 괜찮겠냐. 차라리 전문의를 찾아보라”고 안내했다. 한 의원은 “진료는 가능하지만 간단한 약 처방만 한다”면서 방문 여부를 되묻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의 경우 성형외과 72.3%, 일반의 의원 34.6%가 건보 청구 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비단 강남이나 피부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곳곳에서 일반 진료를 하지 않는 의원이 늘면서 환자 불편도 커지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40대 학부모 정모씨는 “초등학생 아들이 넘어져 얼굴에 상처가 생겼는데, 동네에 피부과 의원은 많아도 흉터 관련 치료를 해줄 곳을 찾긴 어려웠다. 수소문 끝에 겨우 한 곳을 구했다”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 이모씨는 “아이 손가락이 골절돼 동네 정형외과 의원을 찾았지만, 곧바로 2차 병원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도수치료나 체외충격파 치료 위주로 봐 일반 질환 진료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간판만 피부과’ 제도 정비에 나섰다. 의료기관 명칭표시판에서 진료과목 표기를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는 전문의가 아니어도 ‘진료과목’ 형태로 간판에 표시할 수 있는데, 이를 제한해 환자 혼선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내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 안팎에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주 대한피부과의사회장은 “젊은 의사들이 미용·성형 시장으로 쏠리는 흐름 속에서 의대 졸업 후 2~3년 임상 수련을 거친 의사에게만 독립 진료권을 부여하는 개원 면허제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종헌 의원은 “국민이 질병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쉽게 찾지 못해 불편을 겪지 않도록 복지부가 실제 진료 가능 여부와 전문의 여부를 명확히 안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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