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AI 시대에 역행하는 한국의 초중등 교육 현장

2026. 5. 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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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지금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기술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라마다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AI 기술 개발에는 특별한 부존자원이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AI 개발 경쟁은 바로 우수한 인재 확보 전쟁이다.

물론 ‘AI 3대 강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도 AI 인재 확보를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대학에서 AI 대학과 대학원 신설을 추진하고 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우수한 대학을 선정하여 재정 지원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AI 대학원을 만들고 재정 지원을 한다고 바로 AI 인재가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진학하여 공부할 우수한 학생들이 필요한 것이다.

「 세계는 AI 인재 확보 전쟁 중
반면에 고교 이공계교육은 부실화
수학·과학 선택 학생 역대 최저치
수능 과목 선정부터 재검토해야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AI 공부에 적합한 학생의 풀(pool)이 점점 작아지고 있고, 그 수준도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엊그제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는 이세돌 9단을 만난 자리에서 “AI 시대에도 수학 과학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 달 전쯤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러진 전국연합학력평가는 이 현상을 잘 보여주었다. 전국의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 시험에서, 과학 탐구 과목을 선택한 학생은 16만 명에 못 미쳐 작년보다 35% 감소한 역대 최저를 기록하였다. 인공지능 개발자에게 필수적인 고급 수학 공부에 필요한 미적분·기하를 선택한 학생도 10만5000명으로 전년 대비 26% 감소한 역대 최소였다. 반면 사회탐구 과목 응시자는 50만 명을 넘겨 사상 최대였다. 이처럼 지금 많은 학생들이 AI 공부에 필요한 과학과 수학 공부를 소홀히 하고 있다. 실제로 요즘 대학에서는 이공계 학과에 들어온 학생도 수학·과학의 기초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이들을 위한 보충 수업을 늘리고 있는 형편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과학기술 전성시대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왜 학생들은 이처럼 고등학교에서 수학·과학 과목을 기피할까.

그 원인은 우리나라 수능의 독특한 점수 체계 때문이다. 잘 알려진대로 대입 전형에서 사용하는 수능 점수는 원점수가 아니라 소위 ‘표준 점수’이다. ‘표준 점수’란 시험의 난이도가 과목마다 다른 점을 보정하기 위하여, 학생이 받은 점수가 그 과목 평균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계산한 값이다. 이 방법은 들쭉날쭉한 시험의 난이도에 따른 점수 차이는 보정할 수 있지만, 그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 모집단의 수준이 점수에 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이 있다. 예를 들어 그 과목을 선택하는 모든 학생이 우수하다면 평균점 자체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개인이 받는 표준점수에서는 불리하다. 그런 이유로 과거부터 수능에서 경제, 물리, 화학 같은 과목들이 기피되었고, 문·이과 교차지원이 많이 허용된 지금 그런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사실 수능에서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는 오랜 기간 문제가 되었고, 많은 학생들이 불평하는 사항이었다. 이에 대해 지난 정부가 마련한 해결책은 2028학년도 수능부터 모든 선택과목을 없애는 것이었다. 결국 과학 II, 기하, 미적분 II 등 고등학교 고학년에서 배우는 고급 과학이나 수학은 수능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고등학교 1학년 과목인 ‘통합 과학’과 일반 선택인 ‘미적분 I’ 등만 시험 과목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교 교육의 현실상 이처럼 수능에서 제외된 과목은 학생들의 공부 대상에서 사라지고, 대신 학생들은 낮은 수준의 공통과목 내용을 반복하며 실수하지 않기에 시간과 노력을 쏟게 된다. 교육 당국이 만든 제도가 학생들의 깊은 수준의 공부를 막는 것이다. 이래서야 어떻게 남보다 뛰어난 영재가 길러지겠나. 이렇게 땜질 처방을 내기보다는 차라리 수능을 절대평가의 자격시험으로 바꾸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AI 시대의 영재는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 남과 협동하는 소통 능력, 기본적인 ICT 역량 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창의력이나 비판적 사고력도 기본적인 지식은 필요하다. 어설프게 융복합 교육을 한다면서 최소한의 전공 지식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단순히 불평을 없앤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고학년에서 배우는 심화 과목을 수능에서 전부 제외한 것은 더욱 말이 안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이다.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AI 시대에 대응한다며 수학·과학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는 거꾸로 가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니 AI 인재를 육성한다고 돈을 퍼붓는 과기부와 정부 내에서도 손발이 안 맞는 일이다. 아무리 지난 정부에서 결정한 일이더라도 시대를 거스르는 정책은 교육부와 국교위가 다시 검토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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