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문해력의 진짜 문제는 한자가 아닙니다

김슬옹 2026. 4. 3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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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문해력은 어원 지식이 아니라 맥락을 읽는 힘

[김슬옹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4.30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4월 28일 국무회의에서 '사흘'을 4일로 오해하는 사례를 들며 문해력 저하 문제를 지적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대통령의 문제의식 자체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다만,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 언어의 주요 단어들이 다 한문인데 그걸 가정에서 가르치나 안 가르치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는 문해력 논의에서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해, 문해력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가로서 급히 글을 쓰게 되었다.

단어를 몰라도 뜻을 이해하는 게 문해력

먼저 가장 중요한 점부터 분명히 하자. 문해력의 핵심은 단어 하나하나의 어원을 따져 외우는 능력이 결코 아니다. 문해력은 글이 놓인 맥락을 읽고, 앞뒤 흐름에서 의미를 추론하고, 행간을 헤아리고,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며, 자신의 생각으로 재구성하는 종합적 능력이다.

이를테면 "사흘 뒤에 만나자"라는 문장을 듣고 그 뜻을 정확히 모를 경우 문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앞뒤 대화의 흐름을 살핀다.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지난번엔 이틀 뒤라고 했었지" 하며 맥락에서 의미를 좁혀 간다. 그래도 모르면 사전을 찾거나 상대에게 다시 물어본다. 이것이 진짜 문해력이다.

반대로, 단어의 한자 어원을 줄줄 외우고 있어도 글 전체의 논리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면 문해력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치매'의 한자가 '어리석을 치(癡), 어리석을 매(呆)'라고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모든 어휘는 기본적으로 다의어이다. 문맥이나 맥락으로 뜻이 결정되는 것이지 특정 한자 어원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OECD가 측정하는 성인 문해력 지표 PIAAC도 어휘 시험이 아니다. 실제 텍스트 속에서 정보를 찾고, 비교하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본다. 즉 맥락 처리 능력이다.

더욱이 순우리말이든 한자어든 우리 삶 속에 녹아든 것은 다 우리말이다. 한자어를 한자와 결부시켜 차별(?)할 필요가 없다. 맥락 속에서 이해하면 그뿐이다.

문해력 향상을 위한 '진짜 처방'은 무엇인가

문해력 향상을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한자 교육 문제가 결코 아니다.

학생들이 다양한 맥락의 글이나 자료를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시간과 환경, 짧은 단편 정보가 아니라 긴 글을 끝까지 따라가는 인내력을 기르는 훈련, 읽은 것을 토론하고 자기 말로 다시 쓰게 하는 통합형 수업, 모르는 단어를 만났을 때 맥락에서 추론하고 사전으로 확인하는 습관, 비판적으로 읽고 의심하고 질문하는 사고력 교육 — 이런 것들이 직접적인 효과를 낸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교육과정 전체가 암기형, 혼자 공부하는 스타일이 많다. 수업 스타일이 바뀌는 것이 우선"이라고 답한 대목은 정확한 진단에 가깝다. 문해력은 단어 암기로 기르는 능력이 아니라 맥락 처리 경험으로 길러지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만든 뜻도 여기에 닿아 있다. 누구나 쉽게 익혀 삶의 맥락 속에서 소통하는 문자를 만들었다. 그 정신은 글자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맥락에서 읽고 쓰고 생각할 수 있게 한다는, 문해력 그 자체에 관한 철학이었다.

당장 해야 할 일은 독서 강국을 만드는 일

대통령께서 문해력 문제에 관심을 두시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효과를 낼 수 있다. 문해력의 핵심은 어원 지식이 아니라 맥락을 읽는 힘이다. 단어 하나의 출처를 따지는 능력이 아니라, 글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는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라 차원에서 당장 해야할 일은 독서강국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서야말로 맥락의 힘을 키워주는 최상의 길이기 때문이다.

2026년은 훈민정음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이 되는 해다. 이 뜻깊은 해에, 우리 문해력 논의가 세종의 정신에 맞게 — 누구나 사용 맥락에서 읽고 쓰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해 —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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